본문: 사무엘상 17장 1-27절
찬송: 357장 ‘주 믿는 사람 일어나’

사무엘상 17장은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치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목동 다윗이 전쟁으로 잔뼈가 굵은 블레셋의 거인, 골리앗을 물리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17장 전체를 한번에 살펴보기엔 내용이 너무 많기에 오늘은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기 위해 전쟁터에 나가게 되는 과정만 살펴보고 실제 전투장면은 내일 살펴볼 것입니다.

이스라엘 초대왕 사울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대한 것은 블레셋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하는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왕이었습니다. 사울은 왕이 되고 2년째 되던 해에 믹마스 전투에서 승리함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대에 부흥한 성공한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날의 경솔한 맹세 때문에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울의 실수가 한번으로 그친 게 아니라 계속 반복해서 나타났다는 사실입니다. 그 실수는 사울이 연약한 인간이었기에 범한 실수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실수였습니다.
결국 사울은 사무엘상 15장에서 결정적인 실수를 범합니다.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모든 것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고, 가장 좋은 것은 남기고 가치없고 하찮은 것들만 진멸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는 사람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누리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을 다스릴 새로운 인물 다윗에게 사무엘이 기름을 붓는 내용을 어제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내용으로 시작합니다. 지난번엔 유다 북쪽에 위치한 베냐민 땅이었다면, 이번에는 유다 남서쪽 지방을 침략했습니다. 1~3절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그들의 군대를 모으고 싸우고자 하여 유다에 속한 소고에 모여 소고와 아세가 사이의 에베스담밈에 진 치매 사울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여서 엘라 골짜기에 진 치고 블레셋 사람들을 대하여 전열을 벌였으니 블레셋 사람들은 이쪽 산에 섰고 이스라엘은 저쪽 산에 섰고 그 사이에는 골짜기가 있었더라”

전선이 형성된 곳은 유다 남서부에 있는 엘라 골짜기였습니다. 엘라골짜기는 예루살렘에서 남서쪽으로 25km 지점에 있으며, 양편에는 50m 이상의 산이 솟아있고 골짜기 너비는 400m 가량되는 지형입니다. 블레셋 군대는 유다에 속해 있는 땅, 소고를 점령했습니다. ‘가시가 많은 곳’이라 뜻을 가진 ‘소고’는 유다 산지와 블레셋 평원 사이에 위치한 요새 가운데 하나였기에, 블레셋 군대가 유다에 속한 이곳에 진을 치고 있었다는 사실은 이미 이스라엘에 대해 기선을 제압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3절에 보면, 블레셋은 이쪽 산에 섰고 이스라엘은 저쪽 산에 섰고 그 사이에 골짜기가 있다고 했는데, 여기서 두 진영 사이에 있는 ‘골짜기’는 히브리어로 ‘가이’인데, 그 의미는 ‘가파른 계곡 또는 협곡’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는 일반적인 골짜기와는 달리 좁고 급격한 경사를 이루고 있었기에 서로 마주보고 있으면서도 쉽게 전면전을 벌이지 못하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이 뿐만아니라 이스라엘 군대가 블레셋 군대를 쉽게 공격하지 못하는 이유가 4절에 나옵니다.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가 왔는데 그의 이름은 골리앗이요 가드 사람이라 그의 키는 여섯 규빗 한 뼘이요”

블레셋 진영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가 나왔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고대 근동의 전쟁 관행 중 하나인 ‘대표전’을 제안한 것입니다. 대표전이란 전사자를 최소화하면서 국가 간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양 진영의 대표 장수가 일대일로 맞붙는 전투를 말합니다. 대표전에서 진 쪽은 이긴 쪽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했습니다.
블레셋 군대의 대표 장수는 골리앗이었습니다. 골리앗은 거인들이 많은 가드 출신이었습니다. 가드 출신답게 그의 신장은 “여섯 규빗 한 뼘”이라고 했습니다. 규빗은 성인의 팔꿈치에서 손끝까지의 길이로 약 45cm입니다. 그리고 뼘은 편 손의 엄지에서 새끼 손가락까지의 길이로 약 15cm입니다. 그러므로 “여섯 규빗 한 뼘”은 약 2m 85cm입니다.
지금 기골이 장대한 골리앗이 자신을 블레셋 군대의 대표 장수로 자처하면서, 이스라엘 군대를 향해 자신과 싸울 대표 장수를 뽑아 내보내라고 호통을 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이스라엘 군대의 반응입니다. 11절과 24절입니다.

“사울과 온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의 이 말을 듣고 놀라 크게 두려워하니라”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그 앞에서 도망하여”

이스라엘 군대는 블레셋 군대와 싸울 생각은 고사하고, 골리앗 한 사람의 호통에 기가 죽어 골리앗이 더 이상 쫒아올 수 없는 안전한 지역으로 도망쳐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12절부터 등장하는 다윗은 이스라엘 군대와 달랐습니다. 골리앗 한 사람의 호통소리에 두려움을 느꼈던 이스라엘 군대와는 달리 다윗은 분노를 느꼈습니다. 똑같은 대상에 대해 두려움을 느낄 수도 있고, 분노를 느낄 수도 있습니다. 심리학자의 주장에 의하면, 똑같은 대상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두려움이냐, 분노냐 하는 것은 자신이 가진 힘에 대한 인식의 차이 때문에 나타난다고 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내가 특별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나를 기분 나쁘게 한다면 나는 어떤 반응을 보이겠습니까? 내가 상대방보다 힘이 강하다고 느끼면 분노를 느낄 것이고, 내가 상대방보다 나약한 존재라고 느끼면 두려움을 느낄 것입니다.

골리앗 앞에서 두려움을 느낀 이스라엘 군대와는 달리, 다윗은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26절입니다.

“다윗이 곁에서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이 블레셋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의 치욕을 제거하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대우를 하겠느냐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누구이기에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

골리앗이 두려워 기가 죽어 있는 이스라엘 군대를 향해 다윗은 외쳤습니다. ‘골리앗을 죽여 이스라엘의 치욕을 제거하는 사람에게 어떠한 대우를 하겠느냐’ 다윗의 외침속에는 두려움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모든 이스라엘 군인들이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데, 오직 다윗 한 사람만이 골리앗을 두려워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의 고백속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누구이기에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 다윗은 하나님을 살아계시는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었기에 다윗은 두려움 대신 분노를 느꼈습니다.

우리를 두려움에 빠뜨리는 대상이 있습니까? 만일 두려움의 대상이 있다면, 두려움의 이유는 무엇입니까? 내가 힘이 없기 때문입니까? 만일 그렇다면 나에게 살아계시는 하나님이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에게 감당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디모데후서 1장 7절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라”


기도
하나님, 늘 우리와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성공할 때나 실패할 때나, 평안할 때나 인생의 광풍이 불어 닥칠 때나, 언제나 우리와 동행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함으로 종국에는 승리한 인생 경험들이 우리 인생의 시간들 속에 더 많이 축척되게 해 주옵소서. 그렇게 쌓인 영적 근육들로 인해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것들에 놀라거나 넘어지지 않게 해 주옵소서. 오늘도 살아계시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하루가 되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이스라엘 군대가 골리앗을 두려워 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2. 다윗이 골리앗을 두려워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3. 오늘 우리를 두려움에 빠뜨리는 대상은 무엇입니까?
4.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습니까?

(작성: 이성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