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사도행전19:1-20
찬송가 190장 ‘성령이여 강림하사'


사도행전 18장 후반부와 19장에 이름이 거명되는 아볼로는 신약 초대교회의 유명한 설교자로, 알렉산드리아 출신(행18:24)의 유대인이었습니다. 당시 아볼로의 고향인 알렉산드리아는 알렉산더 대왕이 건설한 도시로, 주민의 상당수가 유대인이었고,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 성경이 편찬된 곳이기도 합니다. 이곳은 해상과 육로가 모두 열려있는 입지조건 때문에 상업이 발달하였고, 헬라문화의 다양한 부류의 지식인들이 모여들어 당시 아테네 버금가는 문화와 학문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나중에 영지주의와 헬라철학으로부터 기독교신앙을 수호하기 위해 애썼던 알렉산드리아 신학 학파의 본고장이 되기도 했습니다. 알렉산드리아 학파가 배출해낸 인물로는 클레멘트(AD150-215년), 오리겐(185-254년), 아타나시우스(293-373년)등이 있습니다. 아볼로는 바로 이곳 출신으로 언변이 좋고 구약 성경에 능통한 자였습니다(18:24),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웠고 그 도 곧 예수에 대해 에베소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있었지만 사실 그는 예수를 부분적으로만 알았습니다. 그에게 예수의 도에 대해 정확하게 가르쳐준 사람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였습니다. 아볼로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통해 예수를 제대로 알고 난 후 고린도로 넘어갔는데, 그 때 바울이 에베소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에베소에 온 바울의 상황에 대해 1-2절이 이렇게 설명합니다.

1 -2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바울이 만난 "어떤 제자들"은 바울을 통해서 예수를 믿게된 사람들이 아니라, 아볼로를 통해서 예수를 알게된 사람들입니다. 즉 아직 브리스길라나 아굴라가 아볼로에게 온전한 복음을 가르쳐 주기 전에 아볼로를 통해서 예수를 믿게 된 제자들을 가르킵니다. 그들은 세례요한을 통해서 전해진 예수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아볼로가 이들을 제자로 키워냈습니다. 그러나 그 제자들에게 바울이 물었습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그들은 이미 부분적으로나마 예수에 대해 알고 있었고 세례요한이 베풀었던 회개의 세례를 받았지만 온전한 복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바울이 말하려고하는 온전한 복음은 무엇입니까? 빌2:6-11절입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1) 성육신입니다.
2) 십자가 대속의 죽음입니다.
3) 죽음을 이기신 부활입니다.
4) 승천과 재림으로 완성되는 심판입니다.

예수님이 나와 똑같은 인간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분이 죄악된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분이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분이 하늘로 올라가셨고 다시 오셔서 심판하실 것입니다

이 복음을 알지 못하던 제자들에게 예수를 정확히 알려주기 위해서 바울이 질문한 것입니다. 그가 보기에 그들은 아직 온전한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보이지 않았기에 그들에게 이 예수의 복음을 가르쳐주기위해 묻는 것입니다. 그들의 반응이 5-7절에 나옵니다.
그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

그들이 듣고 세례를 받으니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예수의 온전한 복음을 듣고 세례를 받았다는 말은 자신의 의지적인 결단을 통해 예수를 자신의 주인으로 모셔들였다는 의미입니다. 세례는 공적으로 자신의 믿음을 고백하는 예식이요, 주의 공동체가 그들을 영적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예식입니다. 그들이 세례를 받고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성령님은 이 제자들이 믿을 수 있도록 그전부터 이미 돕고 계셨지만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신 것은 그들이 결단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후 바울이 안수할 때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이미 성령은 그들가운데 역사하고 계셨지만 그들은 이제 비로소 성령의 세례를 받게 된 것입니다.

성령세례는 인생의 주권이 바뀌는 사건입니다.
이미 예수의 영이신 성령님은 예수님을 우리가 믿을 수 있도록 이미 도우시고 이미 우리 가까이 와 계시지만 우리가 결단하고 주앞에 나아갈 때에 비로소 우리인생의 주인으로서 역사하여 주시는 겁니다.
우리는 모두 인생의 자동차를 운전하고 있습니다. 내 마음대로 원하는 곳으로 이 자동차를 몰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예수님에 대해서 듣습니다. 그 분에 대해서 부분적으로 나마 알게됩니다. 그분이 바로 내 조수석까지 찾아오셔서 내 인생길을 코치해주시고, 나는 그분의 인도하심을 신뢰합니다. 그런데 여전히 내가 자동차를 몰고 있습니다. 이미 그분의 코치를 받고 있기는 하지만 자동차의 주인이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의 영이신 성령님이 내 인생의 자동차를 운전하시기 시작하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바로 내가 그 분께 결단하고 내 인생의 운전대를 내어드리기 시작하는 순간부터입니다. 그 때 내 인생이 더이상 나의 것이 아니고 주님의 것임을 확증시켜주시는 주님의 역사가 바로 성령세례입니다. '너는 내것이다' 확증해주시는 주님의 역사가 성령세례입니다.

바울이 물었던 그 질문을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성령을 받았는가?
나는 예수의 복음을 알고 있는가?
그분의 성육신, 대속의 십자가 죽음, 부활과, 승천, 재림.
이 예수의 복음을 알고 있습니까?
그분을 믿고 있기는 하지만, 부분적으로만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아직 요한의 세례밖에 알고 있지 못하던 그 제자들처럼 우리도 예수를 내 인생을 도우시는 분 정도로만 알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분이 나를 도우시는 것은 알지만 아직 내 인생의 자동차를 내어드리지는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여전히 어디로 갈지 불안해하며 도움의 손길만 요청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 분께 맡기십시요. 두려움과 불안감으로 더이상 움켜쥐지 말고, 예수의 영이신 성령님께 맡겨 드리십시다. 그럴때 주님이 '너는 내것이다'확증해 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세례입니다.

성령세례를 받은 자에게 주어지는 두가지 선물이 있습니다.
6-7절입니다.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모두 열 두사람쯤 되니라
성령세례를 받은 자에게 주어지는 두가지 선물은 첫번째가 방언이요, 두번째가 예언입니다. 이것은 단지 외부적인 은사로만 이해해서는 안되고 내적 은사로 까지 이어져야 한다고 이미 배웠습니다.(2015년 2월8일 주일설교 참조) 즉 방언은 소통하는 능력 즉, 공감력이요, 예언은 감화력입니다. 성령을 받은 자는 먼저 하나님과 소통하고 하나님과 공감하는 능력이 주어집니다. 타락으로 상실된 하나님과의 소통의 능력이 성령이 내안에 오심으로 회복됩니다. 주님과의 소통이 회복되고 주님의 마음을 공감하게 되면 이제 사람과의 제대로된 소통도 가능해집니다. 바벨탑에서 죄악때문에 나눠어진 인간의 언어가 성령의 세례로 말마임아 방언을 통해 다시 회복된 것입니다. 진정 사람과 사람의 소통이 가능하게 된 것은 우리와 교감하시는 성령으로 인해 상대방의 마음을 공감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게 공감력/소통력의 은사인 방언입니다.

하나님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사람은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의 사람이 됩니다. 주님과 소통하기 때문에 주님의 말씀에 귀기울이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적으로 주님의 말씀이 이 사람을 통해서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이것이 감화력, 예언의 은사입니다. 바울을 통해서 그 당시 에베소에는 주의 말씀이 힘이 있고 흥왕하여 세력을 얻게 됩니다. 이것이 당시에는 비방을 받는 표적이었던 바울을 통해서 하나님이 역사하신 방법이었습니다.

나는 성령을 받았습니까?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이 내안에 있습니까?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은 반드시 소통의 사람, 공감의 사람으로 말씀의 감화력을 지닌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이제 추석연휴를 지나는 이 기간동안 우리 자신의 영적상태를 확인하십시다. 내 인생 자동차의 주도권이 아직도 내 스스로에게 있다면 이 때를 기점으로 예수의 영이신 성령님께 넘겨드리십시다. 이 땅에서 하나님과 깊이 있게 소통하고 사람과 공감하며 사람을 감화시키는 주님의 사람으로 살아가십시다. 당시에는 비난을 받는 모순의 표적이셨던 예수님을 통해서 구원이 우리에게 미친 것처럼, 우리도 이시대에 공감력과 감화력을 지닌 주님의 표적으로 오늘 하루를 살아가십시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추석연휴를 맞아 가족을 위해 수고하고 애쓰신 모든 봉사의 손길위에 주님의 은혜가 함께 하여 주옵소서.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는냐" 물었던 바울의 질문을 우리 자신에게 해봅니다. 예수에 대한 어렴풋한 지식이 있으나 여전히 스스로 주인행세하며 살았던 우리의 인생을 이제 돌이켜 성령 하나님께 주권을 넘겨드리는 성령세례의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하여 주님의 공감력과 감화력을 지닌 주의 사람으로 오늘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위한 질문
1. 나는 어떤 제자들이 받은 요한의 세례에 머물러 있지는 않습니까?
2. 성령이 계심도 전혀 알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못한다면 나는 현재 무엇이 문제입니까?
3. 바울이 말한 온전한 복음의 내용은 무엇이었습니까?
4. 성령세례를 주기 원하시는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작성: 김신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