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마가복음 13:1-13
찬송가 382장 ‘너 근심 걱정 말아라’
무너질 성전(1-2절)
마가복음 13장은 마태복음 24장과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감람산(올리브산)에서 전하셨다고 하여 ‘감람산 강화(Discourse on the Mount of Olives)’라고 불립니다. 또한 그 내용이 마지막에 있을 일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작은 계시록(Little Apocalypse)’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즉 메시아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마감할 시점에 장차 겪게 될 일을 말씀하여 주심으로, 미리 대비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1차적으로는 이 말씀이 제자들에게 주시는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예수님의 오심과 다시 오심 사이를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시는 것이기도 합니다.
1-2절은 장차 무너지게 될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예수님의 예언입니다.
(1)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에 제자 중 하나가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
제자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보고서, 그 건물의 웅장함에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습니다.
이 성전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세 번째 성전입니다. 첫 성전은 솔로몬이 7년 동안 건축했기에 ‘솔로몬 성전’이라고 부르고, 두 번째는 유다 백성들이 바빌론 포로에서 돌아와서 스룹바벨의 주도로 건축하였기에 ‘스룹바벨 성전’이라고 부르며, 이 세 번째는 헤롯대왕의 주도하에 건축되었기에 ‘헤롯 성전’이라고 부릅니다.
이 성전은 예수님께서 태어나시기 전부터 지어지고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2장에는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예루살렘 성전을 정결하게 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물론 예수님의 부활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이렇게 반문했습니다. “이 성전은 46년 동안 짓고 있는데, 당신이 사흘 만에 일으킨다고요?”
이 헤롯 성전은 BC 19년에 착공되어,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보내실 때도 여전히 지어지고 있었고, 그 후로도 약 30여 년 동안 더 지어져, 63년에 완공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무려 82년 동안이나 지어졌습니다. 그리고 이 성전은 그 터가 예루살렘 전체 면적의 6분의 1에 달할 정도로 넓었고, 성전 주춧돌 하나의 크기가 가로 7.3m, 세로 1.2m나 될 정도로 웅장하였습니다. 유대의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에 의하면 흰색 돌로 지어진 성전은, 각각의 돌들이 서로 엇갈려있어서, 멀리서 보면 마치 성벽이 파도가 이는 것처럼 아름다웠다고 합니다. 또한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Tacitus)에 의하면, 성전은 황금으로 장식된 백색 대리석의 거대한 산과 같았다고 찬양했습니다.
제자들이 성전에 대해서 그 크기의 웅장함과 그 내용의 화려함에 놀라서 예수님께 질문했을 때, 예수님의 답변은 그보다 더 놀랍고 충격적이었습니다.
(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는 성전이 그렇게 웅장하고, 화려하게 보인다고 할지라도,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을 정도로 완전히 초토화가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성전 건물에 함몰되어 있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 내면의 부패함과 불경건함을 직시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이 성전은, 70년 로마의 티투스(Titus) 장군에 의해서 예루살렘이 멸망당할 때에,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을 것이라는 예수님의 예언이 문자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요세푸스의 책, <유대 전쟁사>에는 이때의 모습을 “화염이 치솟았을 때... 그 성전이 폐허가 되고 있었다. 그리고 제사장까지 학살당했다 ... 건물이 세워져 있었다고 믿을 만한 근거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파괴되었다!”라고 기록합니다.
우리는 이제 건물이 성전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내주하시는 우리 자신이 성전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속적 가치관을 따라서 우리의 삶을 웅장하게 보이는 크기만을 추구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과시하기 위해서 화려함을 따라가기만 하고, 그 내면의 정결함, 구별됨을 추구하지 않으면, 우리 인생이라는 성전은 반드시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웅장함과 화려함만을 추구하면 할수록, 나중에 “내 삶에 그 무엇 하나도 다른 것 위에 없다”라고 깊은 한숨을 쉴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겉의 웅장함이나 화려함을 추구하기보다 내면의 거룩함과 정결함을 추구하는 것이 믿음이자 인생의 지혜입니다.
재난의 징조(3-13절)
3-13절은 감람산에서 있었던 제자들의 질문과 예수님의 종말에 대한 답변의 말씀입니다.
(3) 예수께서 감람산에서 성전을 마주 대하여 앉으셨을 때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가 조용히 묻되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이 보이는 반대편 감람산에 앉아 계셨습니다. 이 장면을 머릿속으로 그려 보면, 예수님과 성전이 서로 마주 보고 있는 형태입니다. 그것은 또한 예수님께서 성전을 반대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의 본래 역할은 ‘기도하는 집’인데, 종교지도자들이 ‘강도의 소굴’로 만드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도의 집’은 연약한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곳이라는 의미입니다. 반면에 ‘강도’는 자기의 힘을 믿고 사는 사람, 자신의 욕망을 성취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짓밟는 사람입니다. ‘기도하는 집’과 ‘강도의 소굴’은 정반대의 개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지금 성전을 마주 보고 계심으로, 성전이 잘못되어 있음을 그림언어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4)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지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성전의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을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제자들에게 특히 베드로와 안드레 형제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 형제에게 몹시도 충격적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이 틀림없고, 이 성전에 하나님이 계신다면 다른 것은 다 빼앗기고, 다 무너져도 이 성전만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권위를 세우시기 위해서라도 지켜 주실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질문하는 제자들에게 가장 먼저 새겨 놓아야 할 것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5)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예수님께서는 미혹을 당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미혹을 당하게 되면 시대를 바르게 읽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바른 가치관을 갖고 살아갈 수도 없습니다. 특히 이단이나 사이비에 영적으로 미혹 당하게 되면 자신이 잘못 알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더욱 바르게 살아갈 수 없습니다.
‘미혹하다(헬. 플라나오)’의 문자적인 의미는 ‘길을 잃다’입니다.
혹시 길을 잃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길을 잃으면 참 당황스럽고 두렵습니다. 종종 우리나라 뉴스나 국제뉴스에서 산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거나 극적으로 구조된 기사를 보곤 합니다. 특히 거대한 산에서나 겨울 산에서 길을 잃으면 더욱 위험합니다.
혹 우리가 낯선 곳에서 길을 잃으면 사람들에게 묻거나 경찰의 도움을 받으면 됩니다. 설령 해외에서 길을 잃게 되었다 할지라도, 그 나라에 있는 대사관의 도움을 받으면 됩니다. 그러나 인생의 길을 잃으면 다른 사람의 도움은 아주 제한적입니다. 인생의 길은 세상의 길과 같이 몇 갈래가 아니라 셀 수도 없이 많은 길이 있기 때문이고, 나에게 조언을 해 주는 사람 역시 유한하기는 나와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인생에서 길을 잃으면, 좀 가난하게 살고, 덜 배운 채로 살면 됩니다. 꼭 많이 가지고, 더 많이 배웠다고 해서 더 행복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혼이 길을 잃으면, 영원히 미아가 됩니다. 이 땅에서는 물론 죽음 이후에도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가게 됩니다. 그래서 길을 잃는 것은 위험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영적으로 길을 잃게 만드는 것은 우리의 욕망과 세속적인 가치관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웰빙(well-being)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길을 잃어서 미혹되면 웰다잉(well-dying)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에 나오는 부자처럼 음부에서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하게 됩니다.
6절 이하의 말씀은 마지막 때에 일어나게 될 일들입니다.
(6-8)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지진이 있으며 기근이 있으리니 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마지막 때가 되면 ‘자칭 예수’라는 사람이 많이 나타나 사람들의 길을 잃게 만들 것이라고 합니다. 예루살렘이 포위당하고, 망했던 때인 66-70년 사이에 자기 스스로를 메시아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 모든 시대에, 세계 곳곳에 ‘자칭 재림주’가 등장했습니다. 이단 종파를 파헤치는 일을 하는 분의 말에 의하면, 우리나라에만 해도 ‘자칭 하나님’이 20명 정도가 있고, ‘자칭 예수’는 50명 정도가 있다고 합니다.
또 대지진, 쓰나미, 화산 폭발, 전쟁 등이 일어나면, 마지막 때가 왔다고 사람들의 불안한 마음을 선동하는 사람들이 꼭 있습니다. 또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기 전이나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될 때도 거짓 그리스도(pseudo-christ)와 적그리스도(anti-christ)가 항상 나타나곤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아직 끝은 아니니라” 그래서 끝이라고 부추기는 사람은 전부 가짜입니다. ‘주님은 밤에 도적같이 임하신다’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일상에 신실하면서 주님을 목적 삼고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9-10)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사람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너희를 회당에서 매질하겠으며 나로 말미암아 너희가 권력자들과 임금들 앞에 서리니 이는 그들에게 증거가 되려 함이라 또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니라
그래서 우리는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며 사는 사람들을 핍박하는 것은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후 끊임없이 있어 온 일입니다. 기독교가 공인되기 이전의 지하 카타콤에서 살던 초기 그리스도인들이나 북한과 같은 특별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만 박해를 받지, 오늘날은 박해가 사라졌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면 오늘날도 여전히 박해를 받습니다. 과거보다 훨씬 더 교묘한 방법으로 박해를 가합니다. 그런 때에 우리가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한 웰빙이며, 어떻게 죽는 것이 웰다잉인지를 바르게 직시해야 합니다.
5절의 ‘주의하다’와 9절의 ‘조심하다’가 같은 단어인데, 모두 ‘보다’입니다. 바르게 보는 사람이 웰빙과 웰다잉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11-13)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 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그 때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죽는 데에 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우리가 진리를 따라서 살면, 세상적으로는 이익을 보는 것보다 손해를 보는 것이 더 많을 수도 있습니다. 또 사람들에게서 바보처럼 산다고 핀잔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때에 용기를 내어야 하는 것은 그것이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 표징이자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때에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할 말과 지혜를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끝까지 견디는 사람은 구원을 받으리라”고 약속하십니다. 어떤 의미에서 신앙은 잘 견디는 것입니다. 잘 견딘 사람의 대표적인 예는 요셉입니다. 요셉이 17살에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팔려서 종살이를 했고, 또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했습니다. 요셉이 30살에 애굽의 총리가 되기까지 어떻게 지냈겠습니까? 견딘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다(105:19)”라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마지막 때의 일에 관해 증거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마지막 때는 ‘예수님께서 오신 때부터 다시 오실 때까지의 사이’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처음 외치신 것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였습니다. 그래서 그 때부터 이미 종말이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마지막 때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때를 가장 웰빙하며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삶의 자리에서 끝까지 견디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웰빙이 끝나는 날, 우리는 웰다잉할 것입니다. 오늘도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힘으로 삼으며, 말씀에 순종하는 한 날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기 도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께서 마지막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되는지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렇게 웅장하게 보이고, 화려하게 보였던 예루살렘 성전이 돌 하나도 돌 위에 있지 않게 되는 것을 목도 했고, 예루살렘이 망하게 되는 처참한 상황도 보아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이후로, 지난 2000년 동안 수없이 많은 거짓 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가 등장했고, 지금도 있습니다. 또한 천재지변이 일어날 때마다 한 세기가 저물 때마다 종말이 임박했다고 거짓 메시지를 전하는 바르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라옵나니, 우리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삶의 자리를 잘 지키며, 말씀에 순종하는 웰빙의 삶을 살다가, 웰다잉하는 은총을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코로나19가 대유행의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이 또한 지나가게 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더 성숙하게 하시고, 이 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위로하시며, 예방 백신과 치료 약이 속히 나오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하나님을 힘으로 삼는 한 날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토록 자랑스럽게 여겼던 성전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이 자랑스러워했던 것이 무너진 경험이 있습니까? 그때 어떤 깨달음을 얻으셨습니까?
2.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길을 잃지 않도록) 주의하라’라고 하셨습니다. 당신이 잘못된 말을 들었다가 인생의 길을 잃은 적이 있습니까? 그 후에 어떻게 다시 돌이킬 수 있었습니까?
3.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견디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이 지금 지켜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4. 사람의 말에 좌지우지되지 아니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힘으로 삼기 위하여 무엇을 결단하시겠습니까?
(작성 : 정한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