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예레미야 18:1-23
찬송가 28장 ‘복의 근원 강림하사’

일하시는 하나님(1-10)
유다 백성에 대한 죄와 심판에 관하여 지적하던 예레미야에게, 하나님께서는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라고 하십니다.

(1-4)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한 말씀에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라 내가 거기에서 내 말을 네게 들려 주리라 하시기로 내가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서 본즉 그가 녹로로 일을 하는데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터지매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좋은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

예레미야가 토기장이의 집에 가서 보았던 광경은 무엇일까요? 3절에 “그가 녹로로 일을 하는데” ‘녹로’ 즉 ‘돌림대’를 돌리며, 토기장이가 일을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일을 준비하는 것도 아니고, 일을 마친 것도 아니고, 또 일을 하다가 잠시 쉬고 있는 것이 아니라, 토기장이가 자신의 일을 집중 있게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깨달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항상 일을 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내 삶의 처절한 문제들을 보면서 나만 씨름하고, 나만 이를 위해 괴롭고 애쓰는 것 같지만, 나의 하나님, 우리 가정의 하나님은 지금 이 순간도 우리의 모든 것을 위해서 일하시고 있습니다.

4절에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터지매”라고 했습니다. 터진다는 것은 히브리어 ‘웨니쉬하트’로,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음’을 뜻합니다. 토기장이가 자기가 원하는 그릇이 나오지 않을 때는, 그것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다시 반죽을 하여 그릇을 새롭게 만듭니다. 세상의 모든 만물을 지으신 창조자 하나님도, 모든 만물에 대한 절대 주권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이 광경을 통해 하나님은, ‘하나님이 누구신지, 유다 백성은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알려주십니다. 토기장이가 심혈을 기울여 그릇을 빚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을 조심스레 다루시며, 더 아름답고 온전하게 빚고 계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때론 죄 속에 빠져있거나, 또한 삶의 여러 문제로 아프고 힘들 때도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우리의 심령을 어루만지시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온전한 모습으로 우리를 빚어주십시다. 하나님은 5절부터 10절에 이르기까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5-6) 그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가 하는 것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유다백성이 심판의 말씀을 듣고, 돌이켜 회개하고 순종하면 구원을 얻을 것이나, 반대로 불순종을 하면 그들은 결국 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경고합니다.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민족과 개인, 모든 것이 결국 하나님의 절대 주권 아래에 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6절에 “너희가 내 손에 있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삶에서 문제의 파도들이 몰아치면, 우리는 이를 헤쳐 나가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합니다. 그러다 끝내 그 문제의 파도에 휩쓸리거나 좌절하게 됩니다. 그러나 본문의 강조점은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붙잡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거할 때, 위로가 됩니다. 하나님의 손에 거할 때, 힘을 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손에 거하는 사람은 문제의 파도를, 마치 서핑 하듯이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으며, 문제가 더 이상 나를 주관하지 않게 합니다.

(7-10) 내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뽑거나 부수거나 멸하려 할 때에 만일 내가 말한 그 민족이 그의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하였던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 내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건설하거나 심으려 할 때에 만일 그들이 나 보기에 악한 것을 행하여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면 내가 그에게 유익하게 하리라고 한 복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리라

그리고 7절부터 10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계획한 민족이, 만약 회개하고, 악한 길에서 돌아서면, 하나님은 그 심판을 중단하신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반대로 복을 주시기로 계획한 민족이, 만약 악을 행하고 불순종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베풀기로 약속하신 복을 내리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심판을 작정하셨다가, 그 심판 대상이 회개하고 변화되어, 하나님의 뜻을 돌이키는 대표적인 예가, 바로 요나서에 나오는 니느웨입니다. 타락했던 니느웨에게 멸망의 심판을 작정하셨지만, 요나가 선포하는 심판의 경고를 듣고 회개하자, 그들에 대한 심판을 자비롭게 돌이키셨습니다. 반대로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들이 우상숭배를 할 때, 그들에게 약속하신 은혜를 돌이키시는 것을 성경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의 핵심은 하나님은 돌이키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돌이키심의 전제조건은 우리가 온전한 길로 돌아설 때입니다.

돌이킴의 은혜(11-17)
그래서 11절부터 15절에 하나님은 유다백성의 회개를 촉구합니다.

(11-15) 그러므로 이제 너는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보라 내가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며 계책을 세워 너희를 치려 하노니 너희는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키며 너희의 길과 행위를 아름답게 하라 하셨다 하라 그러나 그들이 말하기를 이는 헛되니 우리는 우리의 계획대로 행하며 우리는 각기 악한 마음이 완악한 대로 행하리라 하느니라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는 누가 이러한 일을 들었는지 여러 나라 가운데 물어보라 처녀 이스라엘이 심히 가증한 일을 행하였도다 레바논의 눈이 어찌 들의 바위를 떠나겠으며 먼 곳에서 흘러내리는 찬물이 어찌 마르겠느냐 무릇 내 백성은 나를 잊고 허무한 것에게 분향하거니와 이러한 것들은 그들로 그들의 길 곧 그 옛길에서 넘어지게 하며 곁길 곧 닦지 아니한 길로 행하게 하여

그런데 여기서의 핵심절은 바로 11절의 후반 절입니다. “너희는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키며 너희의 길과 행위를 아름답게 하라 하셨다 하라”입니다. 돌이킨다는 것은 회개라고 합니다. 회개를 정의할 때, 일반적으로 죄를 뉘우치는 것을 생각하기 십상입니다. 회개가 단순히 지은 죄를 생각하고, 감정적으로 눈물 흘리며 뉘우치는 것으로 국한된다면, 이것은 회개가 아닌 단순히 <후회>일 뿐입니다. 성경에 말하는 진정한 회개란 “악한 길에서 돌이키며, 나의 길과 행위를 아름답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회개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2가지의 조건이 필요합니다. 첫째, 악한 길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죄인지 알면서도 습관적인 죄를 범하는 사람들은, 결국 죄의 중독에 빠진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두 번째로는 나의 길과 행위를 아름답게 만들어야 합니다. 본문에 나온 ‘길과 행위’는 바로 ‘태도과 행실’입니다. 사람 관계에서 갈등을 빚는 경우는, 대체로 바르지 못한 ‘태도과 행실’ 때문입니다. 바르지 못하다는 것은 내 중심적인 태도와 행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악취를 풍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 중심이 아니라, 타인중심적인 태도와 행실은 누구나 미소를 짓게 만드는 향기며, 이것이 바로 아름다운 ‘길과 행위’라는 것입니다.

(12-17) 그러나 그들이 말하기를 이는 헛되니 우리는 우리의 계획대로 행하며 우리는 각기 악한 마음이 완악한 대로 행하리라 하느니라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는 누가 이러한 일을 들었는지 여러 나라 가운데 물어보라 처녀 이스라엘이 심히 가증한 일을 행하였도다 레바논의 눈이 어찌 들의 바위를 떠나겠으며 먼 곳에서 흘러내리는 찬물이 어찌 마르겠느냐 무릇 내 백성은 나를 잊고 허무한 것에게 분향하거니와 이러한 것들은 그들로 그들의 길 곧 그 옛길에서 넘어지게 하며 곁길 곧 닦지 아니한 길로 행하게 하여 그들의 땅으로 두려움과 영원한 웃음 거리가 되게 하리니 그리로 지나는 자마다 놀라서 그의 머리를 흔들리라 내가 그들을 그들의 원수 앞에서 흩어 버리기를 동풍으로 함 같이 할 것이며 그들의 재난의 날에는 내가 그들에게 등을 보이고 얼굴을 보이지 아니하리라

악한 길에서 돌이키라는 말에, 유다 백성들은 12절에 ‘이는 헛되니’라고 응답합니다. 참으로 안타깝고 어리석지 않을 수 없습니다. ‘헛되다’의 원어 ‘노아쉬’는 ‘아무런 소망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에 소망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소망을 두지 않았을 때, 그들의 미래는 더욱 어두워지고, 궁핍한 삶을 살아가며, 결국 심판을 받아 절망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우리의 소망이 어디에 있는지를 재확인해줍니다. 기독교 사상가 파스칼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에게는 모든 비참함과 불행만이 존재할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쏟는 자(18-23)
예레미야는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를 돌이키고자,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간곡히 호소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께 회개하기는커녕, 자신들에게 책망만 하는 예레미야를 거짓 선지자로 치부하며, 그를 죽이기 위해 구덩이를 파기도 하였습니다. 실로 유다백성은 이렇게 분별이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18-20) 그들이 말하기를 오라 우리가 꾀를 내어 예레미야를 치자 제사장에게서 율법이, 지혜로운 자에게서 책략이, 선지자에게서 말씀이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니 오라 우리가 혀로 그를 치고 그의 어떤 말에도 주의하지 말자 하나이다 여호와여 나를 돌아보사 나와 더불어 다투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 보옵소서 어찌 악으로 선을 갚으리이까마는 그들이 나의 생명을 해하려고 구덩이를 팠나이다 내가 주의 분노를 그들에게서 돌이키려 하고 주의 앞에 서서 그들을 위하여 유익한 말을 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진리대로 행동하면 핍박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리대로 살면 이익보다는 손해를 보거나, 불편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신앙의 길은 어려운 것입니다. 나의 유익을 생각하면 신앙을 감당하기 어렵지만, 주님이 주신 소명을 생각하면, 그 길은 분명 은혜의 길이 될 것입니다.

(21-23) 그러하온즉 그들의 자녀를 기근에 내어 주시며 그들을 칼의 세력에 넘기시며 그들의 아내들은 자녀를 잃고 과부가 되며 그 장정은 죽음을 당하며 그 청년은 전장에서 칼을 맞게 하시며 주께서 군대로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게 하사 그들의 집에서 부르짖음이 들리게 하옵소서 이는 그들이 나를 잡으려고 구덩이를 팠고 내 발을 빠뜨리려고 올무를 놓았음이니이다 여호와여 그들이 나를 죽이려 하는 계략을 주께서 다 아시오니 그 악을 사하지 마옵시며 그들의 죄를 주의 목전에서 지우지 마시고 그들을 주 앞에 넘어지게 하시되 주께서 노하시는 때에 이같이 그들에게 행하옵소서 하니라

21-23절에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자신을 죽이려고 모함하는 유다 백성을 고발하며, 그들의 심판을 간구하기 시작합니다. 이전에 백성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그의 모습을 감안 할 때, 당혹스럽기 그지없습니다. 과연 우리는 이 기도의 내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예레미야는 자신의 연약함에서 빚어진 생각과 감정을 숨기려 하지 않고, 이를 하나님께 그대로 토로했던 것입니다. 이런 유사한 기도는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다닐 때, 지었던 시편 109편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다윗은 오로지 자신을 공격하는 사울에게 악한 말을 퍼부으며 저주의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응답은 저주의 대상인 사울이 아니라, 다윗에게 먼저 하셨습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하나님께서는 그의 답답한 심정이 담긴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분노와 두려움을 해결해주신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감정을 하나님께만 쏟아놓을 때, 그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그의 분노와 감정을 제거하여 주시고, 비어진 심령에 위로와 은혜로 채우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사울을 2번이나 죽일 기회가 있었지만, 그는 결코 죽이지 않았습니다. 이미 그 마음 속 깊이 숨겨져 있는 복수의 칼날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감정을 사람에게 쏟으면 문제가 됩니다. 그러나 그 감정을 하나님께 쏟으면 은혜로 변화 됩니다. 혹시 주님께 나아갈 때, 우리의 마음 속 깊숙이 있는 타인에 대한 분노, 미움, 원망 등을 숨기고 선별적으로 기도하지는 않으십니까? 만일 그렇다면,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감정을 아시는 분이고, 우리의 불편한 감정을 하나님께로 쏟아버리길 원하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쏟아놓을 때, 우리가 모든 것을 아뢸 때, 하나님은 우리들의 상처와 아픔으로 얼룩진 마음을 위로와 은혜의 손길로 어루만져 주시고, 웅크리고 있는 죄악의 칼날들을 없애어, 죄의 지배력에서 벗어나, 은혜의 통치 안에 살아가면서 의의 무기로 가꾸는 삶으로 변화시켜 주시는 은혜를 맛보게 하실 것입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기 도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손으로 저희를 붙잡으시고, 언제나 어디서나, 쉬지 않으시고, 우리를 위해 지금 이 순간도 일해주시니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저희는 하나님의 손 보다는 세상의 손을 잡으려 했으며, 생수의 강인 주님을 저희 마음에 채우기 보다는 세상의 것들로 채우려는 죄 된 모습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이키고, 아름다운 태도와 행실로 살아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도우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혹여나 우리 안에 있는 벗겨야 할 죄악의 감정들이 있다면 주님께로 쏟고, 은혜의 길로 살아가는 변화의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하나님이 내 삶에서 깊숙이 일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깨달은 적이 있습니까?
2. 하나님의 손이 아닌, 세상의 손에 이끌린 적이 있다면 생각해봅시다.
3. 삶에서 진정한 회개를 위해 돌이켜야 할 부분이 무엇이고, 노력해야 할 태도와 행실은 무엇인가요?
4. 내가 하나님께 쏟아야 할 감정은 무엇인지 생각해봅시다.

(작성 : 백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