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 20일, 월요일
본문: 요한계시록 7장 1-17절 / 찬송가 209장 “이 세상 풍파 심하고”

  새벽기도 시간에 우리는 요한계시록 말씀을 계속 접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 한 명이었던 사도 요한이 그리스 에게해 쪽의 밧모섬에 갇혀 있으면서 계시 받은 하나님에 관한 것을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편지형식으로 보내었던 말씀이 요한계시록입니다. 그래서 2장과 3장에서는 일곱 교회와 직접 관련된 말씀이 먼저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4장, 5장에서는 보좌에 앉으신 심판자가 등장하며, 6장부터 18장까지는 대환란이 나타나는데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의 대재앙이 연속적으로 이어집니다.
  즉, 첫째 인을 뗀 후 재앙이 일어나고 둘째, 셋째 계속 인이 떼어질 때마다 재앙이 계속됩니다. 일곱 번째 인이 떼어지면 천사가 첫 번째 나팔을 불게 되고 그것이 곧 나팔 재앙의 시작이 됩니다. 그렇게 둘째, 셋째 나팔 소리에 따라 각각 재앙이 임하게 되고, 천사가 일곱 번째 나팔을 부는 순간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 담은 일곱 금 대접이 하나 둘 부어지기 시작합니다.

  특히 4장에서부터 사도 요한은 장차 될 일을 보기 시작하여 6장까지 11회나 ‘내가 본다’라는 말을 사용함으로 계시의 말씀을 확실하게 받아 기록하였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이 기록된 후 근 2천여 년이 지난 오늘날도 계속 미래에 장차 일어날 재앙을 예언한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우리의 현실 속에서 이미 펼쳐지고 있는 어려움일 수도 있을 겁니다.

  2천년을 지내오면서 상상하기 어려운 속도로 고도의 문명을 이루어 온 것이 사실이지만, 우리가 사는 지구의 자연환경만큼은 외형적으로 보아 여러 면에서 예전보다 점점 악화되고 있다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남미의 아마존강 지역이 메말라가고 북극의 만년빙산이 녹아나고 하늘 위 선글라스라 할 수 있는 오존층이 지역에 따라 점점 얇아져감에 따라 태풍과 홍수, 가뭄, 오염, 여러 가지 질병 등의 재앙이 고스란히 사람들에게 되돌아오고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사람 사는 곳에는 끊임없이 나라들 간의 전쟁, 국지전, 분쟁, 지역간 갈등, 대립, 다툼 등이 계속되어지고, 바로 우리들이 몸담고 있는 현실 속에서 이러한 일들을 매스컴을 통해 또 나의 하루 삶에서도 매일 비일비재하게 겪고 있는 터입니다.

  이처럼 숨 가쁘게 계속되는 대환란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오늘 본문 7장은, 6장에 이어 일곱 번째 인을 떼는 8장으로 넘어가기 직전에 잠시 천상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7장은 또 다시 ‘내가 본다’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이번에 사도 요한이 본 장면은 점점 더 강력해지는 하나님의 진노의 잔이 아니었습니다. 땅이 아니요 하늘 보좌의 모습이었으며 재앙 속에 살아남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습이었습니다. 2절, 3절 말씀입니다.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받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 하더라.”

  당시에 인을 사용하여 자신의 소유권을 보호하는 관례가 있는데, 하나님의 백성은 재앙과 파괴로부터 하나님께서 친히 철저하게 보호해주겠다는 표시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자연재해와 재앙, 전쟁의 피해로부터 육신적인 곤경에서 다 피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은 정신적으로 우리들 각자 견뎌내게 하시고 영적이고 인격적으로 지켜주시고 함께 동행해주신다는 것입니다.

  4절에 보면 인침 받아 구원받은 수가 144,000명이라고 합니다. 2천년 전 사도 요한의 눈에는 그저 열두 지파로 보였습니다만 이제는 세월이 많이 흘러 이스라엘 나라에는 더 이상 12지파가 남아있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구속사 시간이 어느 정도 흘러 요한은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9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이제는 그의 눈에 144,000명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온 세계 곳곳에 복음이 전파된 곳이라면 누구든 셀 수 없을 정도의 사람들이 흰 옷을 입고 있었으며 모두들 보좌에 앉으신 어린 양 예수를 찬양하고 있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각 지파별 12,000명은 전체 대표를 뜻하는 숫자 12에다 군대의 단위 1,000을 곱한 것이고 이를 다 합쳐 144,000명이 되기에, 결국 하나님의 군대요 신실한 백성들은 모두 구원받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숫자가 상징이 아닌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 144,000명을 맞추려고 애쓰고, 한국을 각 지역으로 나누어 다시 이스라엘 12지파 이름을 덧붙인 신천지 이단의 신앙태도는 매우 어리석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구적인 재앙과 피폐해짐, 그리고 우리 각자의 인생 속에 닥치는 환난 속에서 우리는 사도 요한처럼 두 가지를 바라볼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들이 속해 있는 이 땅에서의 삶에서는 고생과 어려움의 문제들이 결코 근본적으로 다 없어지지 않을 것임을 아는 것이 그 첫 번째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의 시대를 통과해야 하는 교회이기에 당하는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결코 실패한 것이 아님을 믿고 인내로 열매 맺는 우리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 두 번째로 우리는, 사도 요한처럼 몸은 여전히 밧모섬에서 생고생하고 있을지라도 보좌 위에 앉으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15-17절)

  우리의 주님께서 우리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주시는 은혜가 있을 것이기에 우리는 행복합니다. 그 말은 우리의 현재 삶이 주님을 위해 주리기도 하고 목마르기도 하고 고난받기도 하고 손해보기도 하고 눈물 흘리는 일도 많았을 때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14절 말씀처럼 오늘도 그리스도의 그 보혈에 의거하여 우리들 삶의 옷을 희게 빨아야 하겠습니다. 빨간 피가 옷을 희게 한다는 것은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존재가 된다는 뜻입니다.

  저번 주 수요일인 6월 15일에는 올해 처음 양화진에서 매미소리를 들었습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소리가 어느 나무속에서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매미 소리는 한꺼번에 울기 때문에 신경 써서 들으면 너무나 시끄럽습니다. 그럼에도 매미가 있다는 것은 여름이 다가왔다는 자연의 소리인지라 기다려집니다.

  이처럼 각박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근원적인 목마름과 기다림이 있는 삶인지 우리 스스로에게 되물어볼 수 있기 원합니다.
  마치 내게 치아가 썩어 치통이 있는데도 계속해서 좀더 강한 마약 성분의 진통제로 이 시대의 편리와 안일함 속에 취해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그래서 신경이 마취된 상태에서는 먹고 싶은 음식 다 먹을 수 있겠지만 그러나 마취가 풀리면서 이전에 아팠던 기억이 돌아오고 온몸이 힘들 정도로 치통을 겪게 되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오늘의 현장 속에서 우리가 주님의 자녀됨을 의식한 채 긴장감 있는 삶을 살아간다면, 비록 힘들게 하루하루를 살더라도 그 속에 하나님에 대한 목마름과 은혜 부어주심에 대한 소원이 더욱 넘쳐날 것입니다.
  그러할 때 자연을 통해 감지하는, 임박한 알림 나팔 소리는 우리에게는 재앙과 심판이 아니라 주님의 재림과 우리 몸의 부활을 알리는 팡파르가 될 것입니다.

  이 아침 이후 길거리에서 허영의 시장을 거닐게 될 텐데 오늘 이 하루도 진리와 영생을 쫓아가는 천로역정의 삶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기도>
주님. 오늘도 눈을 뜨자마자 하늘의 영광을 바라보는 심정으로 이 자리에 나아왔습니다. 당장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자연환경의 피폐해짐과 점점 지구가 자정능력을 상실해가는 것을 바라만 보고 있습니다. 문명은 고도로 발전하지만 여전히 사람의 심성은 점점 욕망에 사로잡히고 윤리성을 잃어버린 채 지극히 이기적으로 변해 갑니다.
  바라기는 말세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이 말씀을 행함에 있어 고난도 두려워하지 않는, 좀더 적극적인 삶을 살게 도와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사도 요한처럼 날마다 기다리며 살아가는 요한계시록의 그 소망이 오늘 이 새벽에 주님을 사모하며 나아온 우리 모두에게 보여지도록 은혜내려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작성: 박종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