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2장 1~37절


찬송가 375장 (나는 갈 길 모르니)

‘가데스 바네아’라는 장소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출애굽 역사에서 가장 기억하기 싫은 장소일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출애굽하여 호렙산을 거쳐 ‘가데스 바네아’에 도착하였습니다. 출애굽하여 ‘가데스 바네아’까지는 약 13개월이 소요되었습니다(민33:3, 민10:11). 신명기 1장 2절을 보면 호렙 산에서 ‘가데스 바네아’까지는 열 하룻길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와 비교해서 ‘가데스 바네아’에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까지 거리는 더 짧습니다. 짧게는 1주일 길게는 2주일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습니다. 하지만 ‘가데스 바네아’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계기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1:40의 표현대로 방향을 돌려 광야로 다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가나안 땅을 앞두고 방향을 광야로 돌리게 된 이유는 다름 아닌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탐군의 보고를 들은 후 행하였던 불신적인 반응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원성을 들으시고 노하셨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자들을 말씀하셨는데 여호수아와 갈렙, 그리고 아이들과 선악을 분변하지 못하던 자녀 등입니다.

오늘 본문인 신명기 2장 14절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2세대들에게 출애굽 1세대의 불신행위를 알도록 하셨습니다.

“가데스 바네아에서 떠나 세렛 시내를 건너기까지 삼십팔 년동안이라 이 때에는 그 시대의 모든 군인들이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진영 중에서 다 멸망하였나니(신2:14)”

‘가데스 바네아’에서 세렛 시내까지 거리로는 약 130km정도인데 1주일이면 족히 도달할 수 있는 거리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불신으로 ‘7일 길’이 ‘38년 길’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불신은 하나님께서 준비해 두신 복을 누릴 수 없음을 보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불신은 조급한 마음에서 왔습니다. 인내하며 기다리지 못하는 자는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짧은 고생과 기다림을 이기지 못한다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목적지까지 가는데 더 긴 시간을 허비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38년의 광야생활 동안에 출애굽 1세대의 장정, 즉 군인들은 모두 죽고 말았습니다. 단순히 전사나 자연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징계였습니다. 15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손으로 그들을 치사 진영 중에서 멸하신 고로 마침내는 다 멸망되었느니라”

원망과 불신이 가득 찬 이스라엘 성인들은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죽고 말았습니다. 아론도 죽었고 미리암도 죽었고 심지어 모세조차도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죽었습니다. 원망과 불신이 하나님의 복을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징계를 받게 됩니다. 이 땅에서 우리 인간은 언젠가는 죽겠지만 자신의 죽음이 어떤 죽음이 되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죽음을 맞이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이스라엘 출애굽 2세대들이 ‘가데스 바네아’를 떠나면서 본격적으로 가나안 입성을 위한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전쟁의 경험이 있는 1세대 장정들이 다 죽고 전쟁의 경험이 없는 2세대들만 남았는데 문제는 ‘다른 족속과 분쟁시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쟁 경험이 많은 군사들이 있다고 해서 전쟁에 승리를 보장해 주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얼마나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신뢰하느냐가 관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2세들에게 용기를 주셨습니다. 칼과 경험을 믿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차원에서 25절에 위로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오늘부터 내가 천하 만민이 너를 무서워하며 너를 두려워하게 하리니 그들이 네 명성을 듣고 떨며 너로 말미암아 근심하리라 하셨느니라”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2세대들에게 용기를 주시면서 그들의 여정을 인도하셨습니다. 그들의 진행 경로는 사해 우측을 따라 올라가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지도를 생각해 보면 북쪽에 갈릴리 호수가 있고 남쪽에는 사해가 있습니다. 갈릴리 호수와 사해 사이를 잇는 강이 있는데 이 강이 요단강입니다. 이스라엘 출애굽 2세대들은 ‘가데스 바네아’를 떠나 북동방향으로 세렛 시내 방향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세렛 시내는 사해바다 하단 오른쪽에 위치한 강이었습니다. 이 세렛 시내가 에돔과 모압을 구분하는 국경선이었습니다. 남쪽은 에돔이고 세렛 시내 북쪽은 모압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출애굽 2세대들은 사해의 오른쪽 편을 거슬러 올라가 요단강까지 가게 됩니다. 가는 길이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신명기 2장에서 크게는 중요한 세 족속을 만나게 됩니다. 그것은 에돔족속, 모압족속, 그리고 암몬족속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 족속들과의 마찰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이 세 족속들이 이스라엘과 형제 관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에돔 족속은 이스라엘의 옛 이름인 야곱의 형, 에서의 후손들입니다. 모압과 암몬족속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후손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북상하면서 이들과의 분쟁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5절에 “그들과 다투지 말라 그들의 땅은 한 발자국도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세일 산을 에서에게 기업으로 주었음이라”

9절에는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모압을 괴롭히지 말라 그와 싸우지도 말라 그 땅을 내가 네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롯 자손에게 아르를 기업으로 주었음이라”

19절에는 “암몬 족속에게 가까이 이르거든 그들을 괴롭히지 말고 그들과 다투지도 말라 암몬 족속의 땅은 내가 네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롯 자손에게 기업으로 주었음이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택하셔서 이끄시지만 아브라함의 후손, 이삭의 후손, 나아가 이스라엘의 후손들이 복받고 잘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중요한 점은 하나님께서 이미 주셨던 땅, 즉 약속하신 것은 끝까지 지키시는 분이심을 보게 됩니다. 에서와 롯에게 각각 하셨던 약속이 이스라엘의 대이동으로 변경되거나 파기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세 족속들과 화평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인간은 일가, 친척, 형제끼리도 이해관계로 얽매이면 싸우며 이익을 쟁취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본적으로 서로 화해하며 화평하기를 원하십니다. 인간은 끊임없는 분쟁의 삶 속에 살아갑니다. 부부가 사랑하여 결혼하여 자식을 낳지만 그 자식들끼리 항상 평화만 있습니까? 오히려 분쟁과 다툼이 더 많이 있지 않나요? 부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여 갈등하며 살아갈 때가 더 많이 있지 않습니까? 갈등으로 인간의 죄성이 증폭되면 분쟁과 다툼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서로 이해하고 베풀고 양보하기를 원하십니다.

양보하며 화평하기를 원하지만 상대가 이를 거부할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합니까? 인내하며 때를 기다릴 필요가 있습니다. 문제를 내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대처해야 합니다. 그 방법이 어떤 것인지를 몰라도 상관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대적자를 처리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신명기 2장 후반부를 보면 세 족속과 달리, 헤스본 왕 시혼과는 전쟁이 있었습니다. 모세는 시혼 왕과 평화를 원하며 통행을 허락받기 위해 사자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헤스본 왕 시혼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쟁을 하게 되는데 이스라엘이 승리하게 됩니다. 헤스본 왕 시혼의 통행불허는 하나님의 섭리에서 기인되었습니다.

30절에 “헤스본 왕 시혼이 우리가 통과하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네 손에 넘기시려고 그의 성품을 완강하게 하셨고 그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음이 오늘날과 같으니라”

신명기 2장에 나타난 이스라엘이 사해 우측지역을 북상하면서 만났던 세 족속과 헤스본 사람들을 보면서 하나님께서는 역사의 주권자이심을 보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때론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였고 때론 불가피한 전쟁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 속에서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중요한 점은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변개치 않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에서와 롯에게 이미 주었던 땅을 빼앗아 이스라엘에게 주지 않으셨고 또한 이스라엘의 불신과 원망이 있었지만 그들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언약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개인의 인생에 개입하셔서 인도해 주십니다. 우리는 오직 신실하신 하나님만 바라보며 내 인생의 길을 하나님께 맡기고 갈 때 하나님께서 나의 인생을 이끌어 가심을 잊지말아야 합니다. 오늘 하루의 발걸음 속에서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구원을 이루시고자 역사를 주관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인생의 역경 속에서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오직 인내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보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이 땅에서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이 서로 화평하며 살아가게 하옵시고 대적자들에게 조차도 평화를 제안하며 모든 것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