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여호수아 14장 1-15절
찬송가 546장 ‘주님 약속하신 말씀 위에 서’

여호수아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질 수 있습니다. 1장부터 12장까지는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활동에 관한 내용이고 13장부터 마지막인 24장까지는 이스라엘이 정복한 가나안 땅의 분배에 관한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 14장은 13장의 요단 동편 땅 분배에 이어 서편 땅의 분배에 대한 내용으로 1절부터 5절까지는 그에 대한 개괄적인 부분이며 6절부터 15절 까지는 갈렙이 자신에게 약속되었던 땅을 얻게 되는 과정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먼저 1절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가나안 땅에서 받은 기업 곧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 지파의 족장들이 분배한 것이니라’

땅 분배에 관여한 사람들은 제사장 엘르아살과 여호수아, 그리고 지파의 족장들이었습니다. 제사장 엘르아살은 영적 지도자로서, 여호수아는 군사 지휘관으로서, 족장들은 각 지파의 대표자격으로 땅 분배에 참여했습니다.

공동체의 안건은 한 개인의 독단이나 독선에 의해 결정되어서는 안 됩니다. 신앙 공동체인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논의와 합의의 과정을 거쳐 안건이 실행되어야 합니다. 만일 그런 과정 없이 어떤 일들이 추진된다면 그것은 이미 공동체성을 상실한 것입니다.

머리를 맞대고 함께 마음을 모아 일을 진행해 나가는 과정이 있다는 사실 이 바로 공동체임을 증명해 줍니다. 힘들더라도 ‘더불어’ 가는 곳, 더디가더라도 ‘함께’ 가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것이 참교회의 모습입니다.

우리의 가정 또한 동일합니다. 가정 안에서도 가족간 의견을 존중하고 수렴하는 모습들이 꼭 있어야합니다. 아버지라고 어머니라고 자식이라고 각 자의 입장만 고수하며 독선적인 결정을 내리다 보면 결국 가정이라는 외적인 울타리만 남게 될 뿐 입니다.

결국 한 지붕 한 인생이 아닌 두 인생, 아니 한 지붕 각 자 인생을 살아가는 분열된 모습속에 천국의 축소판이 되어야할 가정이 지옥처럼 느껴지는 안타까운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더불어’와 ‘함께’의 모습이 존재하는 곳, 그곳이 바로 참 가정입니다.

2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들의 기업을 제비 뽑아 아홉 지파와 반 지파에게 주었으니’

‘함께’하는 땅 분배 결정이었지만 거기에는 명확한 분배 방식이 있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방법, 곧 제비뽑기 였습니다. 사실 오늘날 ‘제비뽑기라는 방식은 일면 ‘복불복’의 우연을 연상하게 하지만 이스라엘의 제비뽑기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인도하심을 구하는 신앙의 방편이었습니다. 비록 제비뽑기는 인간이 하지만 절대 주권자이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개입하실 것이라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바탕이 된 행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신앙공동체인 교회가 결정을 내릴 때 기준으로 삼아야하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입니다. 시편119편 105절 입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사람이 아무리 머리를 맞대고 마음을 모은다고 할 지라도 거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 인간 자체가 제한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분별력을 지니고는 있지만 전체를 보는 안목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그러기에 대립과 분열속에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 십상입니다.

고로 교회내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 때, 갈등과 반목을 넘어 조화로운 결정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아야만 합니다. 말씀을 통해 옳고 그름을 분별함으로 함께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는 방향을 결정해 나가야합니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교회는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선한 목적을 이루게 됩니다.

가정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온전한 그리스도인 가정으로 서 가기 위해서는 선택의 순간마다 늘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점으로 삼아야합니다. 가족간 함께 의견을 나누며 대안을 모색해 볼 수는 있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거하여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가족 누군가에는 반드시 상처가 남기 마련입니다.

교회와 가정이 하나님의 뜻에 합일되는 결정을 내리기 위한 유일한 방식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비로소 한치의 오차도 없으신 하나님안에서 그 결정은 그 어떤 갈등과 대립없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나갈 수 있습니다.

3절에서 4절입니다.
‘이는 두 지파와 반 지파의 기업은 모세가 요단 저쪽에서 주었음이요 레위 자손에게는 그들 가운데에서 기업을 주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요셉의 자손이 므낫세와 에브라임의 두 지파가 되었음이라 이 땅에서 레위 사람에게 아무 분깃도 주지 아니하고 다만 거주할 성읍들과 가축과 재산을 위한 목초지만 주었으니’

땅 분배에서 특이한 점은 첫째, 아홉 지파 반에게만 땅이 할당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 요셉 지파는 두 지파 몫을 분배 받는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레위지파는 땅을 분배 받지 못하고 주거 할 정도의 성과 가축, 가축을 기를 목장만 배분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들을 통해 우리는 다시 한 번 하나님은 공평하신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요단 동편 땅을 분할 받았던 두 지파 반에게는 요단 서편 땅이 분배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 지파에서 두 지파가 된 요셉지파 곧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에게는 그 인원에 맞도록 땅이 할당되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전담하는 레위지파를 위해 나머지 모든 지파들이 그들을 책임지도록 하시기 때문입니다. 누구하나 소외되지 않고 형편과 역할에 맞게 하나님께서 공평하게 땅을 분배하고 계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이라면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칠 수 있습니다. 고작해야 2차원밖에 고려하지 못하는 유한함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믿고 따르는 하나님은 차원을 넘어서는 차원위에 존재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각 사람의 처지와 형편에 맞도록 공평하게 상을 주시며 역할을 담당하게 하십니다.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순종해야할 이유입니다.

이제 6절부터 15절까지는 갈렙이 모세로부터 약속 받았던 땅에 대한 분배를 요청하는 장면과 그에 대한 수락과정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갈렙은 12명의 정탐꾼 중의 한 사람으로 가나안 땅을 정탐했었습니다. 10명의 정탐꾼들은 땅 정복에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한 반면, 갈렙과 여호수아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속에 긍정적인 보고를 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불신했던 이스라엘은 40년간 광야에서 방랑하다가 가나안 땅에 진입하지 못하게 되고 광야2세대와 갈렙, 여호수아만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됩니다. 당시 믿음의 눈으로 상황을 바라보며 끝까지 순종했던 갈렙에게 하나님은 그가 정탐하며 밟았던 땅을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신다고 약속하셨었습니다. 오늘 상황은 갈렙이 이제 자신에게 약속되었던 그 땅 헤브론을 달라고 요청하는 장면입니다.

본문 10절입니다.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한 이 사십오 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하게 하셨나이다 오늘 내가 팔십오 세로되’

갈렙이 정탐을 나섰던 때의 나이는 40세였고, 지금 땅 분배를 요청하는 시점의 나이는 85세입니다. 무려 45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후였습니다. 그렇다면 갈렙으로 하여금 4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기다릴 수 있게 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겠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뢰였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믿음이 그로 하여금 그 긴 시간을 기다리며 인내할 수 있는 힘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박국 2장 3절 말씀입니다.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하나님의 말씀은 공연한 말이 아닙니다. 더딜지라도 이루어지는 때가 반드시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오늘 갈렙은 더딜지라도 반드시 그 때가 올 것임을 믿으며 인내하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그 때가 왔고 결과적으로 그 언약이 성취되는 것을 직접 경험하게 됩니다.

믿음은 기다림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반드시 이루신다는 사실을 믿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일종의 약속어음입니다. 때가 되면 어김없이 그 약속이 실현되기 때문입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못하는 일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설령 믿더라도 잘 기다리지 못하는 것,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오늘 갈렙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때가 되면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토대위에서 무려 45년이라는 긴 시간을 인내하며 기다렸습니다. 결국 그 믿음과 인내의 근간 위에서 하나님의 약속이 실현되는 것을 몸소 체험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요청되는 가장 절실한 모습이 있다면 바로 믿음과 인내입니다. 믿음과 인내라는 통로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 삶에 성취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한편으로 오늘 우리는 갈렙의 모습을 통해 믿음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45년전 갈렙은 백성들 앞에서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외쳤었습니다. 45년이 흐른 후에도 갈렙은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하며 회중앞에서 선포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믿음은 어느 곳 어느 때, 어떤 상황, 어떤 상대앞에서라도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상황과 사람으로부터 오는 두려움을 떨쳐 내며 가야할 그 길을 중단없이 걸어나갈 수 있게 됩니다.

오늘도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새로운 한 날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육의 눈으로 오늘을 대하면 오늘은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믿음의 눈으로 오늘을 대할 때 오늘은 부활하신 주님안에서 새로운 날로 재해색 되며 의미와 가치를 지니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삼아 바른 길로 함께 걸어나가시기를 당부드립니다. 처지와 형편에 맞게 우리를 인도해 가시는 공평하신 하나님이심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며 인내하시기 바랍니다 때가 되면 늘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서 하신 언약을 이루어주시는 역사를 경험하게 하신다는 기대 속에 오늘도 두려움을 기대로 바꾸어 나가시는 새 날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기도
하나님! 오늘도 ‘더불어’, ‘함께’의 삶을 살아가게 하시되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삼음으로 조화와 일치속에 평화로운 한 날을 살아가게 해 주십시오. 무엇보다도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그 어떤 상황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인내하게 해 주시고 그를 통해 신실하신 주님의 언약이 저희 삶의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생생하게 경험하는 복된 한 날 되게해 주십시오. 더 나아가 치밀하게 역사하고 계신 주님안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새날이 되게 해 주십시오 신실하신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오늘 요단 서편의 땅 분배는 누구를 통해 이루어졌습니까(1절)? 최근 함께 논의하며 결정했던 상황이 있었다면 어떤 일이었습니까? 만약 혼자 결정했다면 어떤 결과로 귀결되었으리라 짐작이 됩니까?
2. 땅을 나누는 방법은 어떤 방식이었습니까(2절)? 선택의 과정에서 요즘 내가 기준으로 삼는 것은 무엇입니까? 왜 그런 방식을 택한다고 생각하십니까
3. 오늘 갈렙은 무려 45년이라는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원동력은 무엇이었습니까(9절)?
4. 오늘 내가 붙들고 있는 약속의 말씀이 있다면 어떤 말씀입니까? 그 말씀속에서 걱정과 불안, 염려가 새로운 의미의 소망과 평강으로 변하는 은총을 경험할 수 있도록 주님께 도움의 기도를 드리십시다.

(작성: 이성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