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4월 30일, 월요일
본문 : 사무엘하 10장 1절-19절

그동안 살펴보았듯이 다윗은 5장에서 이스라엘 민족의 왕으로 등극을 했으며, 이후 이스라엘 국력이 점차 인접한 국가들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다윗은 적대국에 대해서는 매우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는 반면에 자신에게 은혜를 베푼 사람이나 국가에 대해서는 신의를 지켰습니다. 바로 앞장인 9장에서 살펴보았듯이 요나단의 아들인 므비보셋에 대한 다윗의 태도로 미루어 그가 얼마나 신의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었나를 보여줍니다. 바로 이러한 맥락으로 오늘 본문을 묵상해보겠습니다.

암몬 자손의 왕의 부음소식을 들은 다윗은 곧바로 조문단을 파견합니다. 암몬왕인 나하스는 바로 사울이 왕으로 등극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어준 사람이었습니다. 사무엘상 11장에 의하면 나하스가 길르앗의 야베스를 위협하자 사울에게 구원요청을 하게 되고, 이에 사울이 군대를 이끌고 가서 암몬을 격퇴하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울을 왕으로 추대하게 됩니다. 이처럼 이스라엘과 적대적 관계에 있는 암몬 사람 나하스가 이스라엘 사람인 다윗에게 어떠한 은총을 베풀었는가에 대한 기록은 성경에 나와 있지는 않지만, 다윗이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의 눈을 피해 도망 다녔던 시절을 생각해볼 때, 다윗은 하나님께서 붙여주신 많은 사람들로부터 크고 작은 도움을 받았을 것이며 도움을 준 사람 중에는 비록 적대국의 왕이었지만 나하스도 포함되었음을 2절의 다윗의 고백을 통해 잘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의 과거를 들추어보면 그야말로 살기위해 적국의 왕 앞에서 수염에 침을 질질 흘리며 미친 사람 흉내를 내던 생각하기조차 싫었던 기억도 있는가 하면 사울의 끈질긴 추적을 피해 광야의 굴속에서 굶주리며 숨어있던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사울의 눈을 피해 도망자의 신분이었던 그때와 이스라엘의 왕의 신분으로 있는 현재와는 그의 위상은 현격하게 다릅니다. 특히나 현재의 다윗은 이웃나라들이 겁낼 정도로 막강한 국력을 자랑하는 이스라엘의 왕 신분입니다. 사람들은 특히나 성공했을 때, 과거의 어려웠을 때를 잊고 사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특히나 자신이 어려웠을 때 도움을 받았던 분들을 하루아침에 나 몰라라 외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은혜를 입으면 갚는 것이 사람의 기본 도리임에 불구하고 받은 은혜를 잊어버리고 오히려 은혜를 배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경우 우리는 “배은망덕”이란 표현을 사용합니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배은망덕이나 불효불충, 이적행위 등을 하는 인간에겐 하늘이 벼락을 친다고까지 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그것도 강력한 신흥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이 순간에도 결코 과거에 자신을 도와주었던 사람들을 잊지 않았습니다. 암몬 자손이 비록 적대국이었다 할지라도 다윗은 그가 어려웠을 때 자신을 도와주었던 나하스 왕의 은혜를 잊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의 사후에도 다윗은 나하스왕의 아들에 대해서도 아버지와 동일한 대우를 해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다윗의 이러한 호의를 곡해한 암몬족속은 다윗이 파견한 조문사절단을 향해 모욕적인 행위를 하고 쫒아버립니다. 표준새번역이 이해를 잘 할 수 있도록 해석했습니다.

그래서 하눈은 다윗의 신하들을 붙잡아서, 그들의 한쪽 수염을 깎고, 입은 옷 가운데를 도려내어, 양쪽 엉덩이가 드러나게 해서 돌려보냈다. (삼하 10:4, 표준새번역)

고등학교 시절, 두발검사를 해서 걸리면 선생님께서 바리캉으로 머리에 기찻길을 내는데, 그것도 모자를 써도 꼭 보이는 부분을 골라서 기찻길을 냄으로 창피를 당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런데 암몬족속이 다윗의 조문사절단에 대해서 한 행위는 수염의 반절을 깍고 또 하체가 드러나게 해서 돌려보내는 치욕적인 행위를 가했습니다. 이는 조문사절단만을 모욕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파송한 다윗은 물론 이스라엘 전체를 모욕하는 처사였습니다. 왜냐하면 외교사절단은 바로 그 나라를 대표하기 때문에, 외교관을 모욕했다함은 바로 그 국가 전체를 모욕하는 행위와 동일합니다.

조문사절단의 험한 소식을 들은 다윗은 이들을 위로하고 수염이 정상적으로 자랄 때까지 한적한 곳에서 쉬게 합니다. 다윗은 이같이 치욕적인 순간에도 사자와의 과거의 친분을 생각해서 참았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이 자신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을 모욕한 암몬족속에 대한 군사 행동을 한 때가 바로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다윗이 혹여나 보복할까 두려워 암몬 족속이 아람족속을 용병으로 고용했다는 소식을 들은 이후였습니다. 그것도 다윗 자신이 직접 나서지 않고, 요압의 지휘 하에 군대를 파송했으며, 이스라엘 군대 앞에서 암몬족속이 그처럼 믿었던 아람용병대는 싸우지도 않고 도망쳐버리자 부랴부랴 성읍으로 도피한 암몬을 향해 더 이상 싸우지 않고 예루살렘으로 되돌아옵니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에 살펴보겠습니다).

오히려 아람용병대의 어처구니 없는 패배를 만회하고자 했던 아람군대에 대해서는 다윗이 직접 군대를 이끌고 나가서 이들을 철저하게 굴복시킵니다.

다윗은 결코 은혜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호의에 대해서 거꾸로 모욕을 당했을지라도 그는 참을 수 있는 한은 참았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이 현재의 다윗이 된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았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의 삶을 통해 기쁠 때는 물론 어려웠던 모든 순간에도 자신을 잊지 않고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체험했던 다윗이었기에, 사람에 대해서 은혜를 넉넉히 베푸는 성숙된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향해 누누이 너희가 과거 애굽의 종이었음을 잊지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민족은 틈만 나면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우상을 섬기는 배은망덕했던 민족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결코 이스라엘을 내쳐버리시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 민족을 통해 이 세상을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지 않았습니까!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바로 우리를 향하신 사랑임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어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었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어찌 우리가 왕 같은 제사장이 될 수 있었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어찌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어찌 우리가 부모님의 자녀가 될 수 있어으며, 이웃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 수 있었겠습니까!

은혜를 저버리는 배은망덕한 사건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나고 있는 현 시점에서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를 받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가 어려웠을 때 은혜를 베푼 우리의 이웃에 대해서, 그리고 지금 어려운 처지에 있는 우리의 이웃에 대해서 무엇을 베풀며 사는 삶을 살아야 할지 오늘 말씀을 통해서 각자 느끼신 바를 실천하시는 하루가 되시기를 간구드립니다.

은혜를 베풀며 꾸어 주는 자는 잘 되나니 그 일을 정의로 행하리로다 (시편 112:5)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주신 말씀을 통해서 저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체험한 다윗이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 대한 신의를 저버리지 않는 삶을 살았듯이, 저희 모두 각자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나만을 위해 간직하는 사람이 아니라 ‘은혜의 잔이 넘치나이다’라는 고백을 하며 주신 은혜를 내 이웃을 향해 흘려보내는 삶이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기를 간구드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작성자 : 이창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