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요한일서 3:13-24
찬송가 220장 ‘사랑하는 주님 앞에’


요한일서가 기록되고 읽혔던 시대에는 영지주의 이단이 기독교를 위협하고 있었습니다. 영지주의자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은 선하지만, 육체와 함께 육체적 욕구들은 악한 것으로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영지주의에 영향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육체적인 욕구들을 절제하는 것을 신앙적인 삶으로 오해하는 경향이있었습니다. 그들은 음식을 절제하고, 잠을 줄이고, 말을 적게하며, 성적인 욕구를 억제하는 것을 경건한 삶을 위한 방편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같은 이원론적 신앙은 예배당 안에서의 모습과 일상생활에서의 모습이 서로 다른 이중적인 삶으로 이어졌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면서 이웃을 사랑하는 삶이 없었던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요한은 사랑의 실천을 강조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죄의 종노릇하던 우리를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시는 사랑으로 건져주시고 주님의 친구 삼아 주셨습니다. 참된 경건은 육체의 욕구를 절제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전심으로 주님을 사랑하며 그 사랑으로 형제를 섬기는 방식으로 주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 13-24절을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전반부인 13-18절은 그리스도인이 형제 사랑을 실천해야 할 근거와 방법을 교훈하며 후반부인 19-24절은 형제 사랑이 어떻게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연결되는지 교훈합니다.

사랑: 구원받은 사람의 증거(13-15)

(13-15)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여도 이상히 여기지 말라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요한은 요한일서의 수신자들을 향해 ‘자녀들아’(2:1), ‘아이들아’(2:18)라는 호칭에 이어 ‘형제들아’라고 불렀습니다. 고대 지중해 사람들은 개인의 정체성을 가정과 공동체 안에서 발견하였습니다. 훌륭한 사람은 곧 가정을 잘 돌보며 지키는 사람을 의미하였으며, 자녀들은 아버지의 뜻을 따라 행동함으로 가정에서 특별하게 여기는 가치를 드러내었습니다. 이와같은 문화적 토대 위에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흐르는 형제, 자매임을 상기시켜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5장 18-19절에서 세상은 자기의 것을 사랑하기 때문에 세상이 주님께 속한 사람들을 미워하는 것이 당연한 것임을 교훈하셨습니다. 요한일서 3장 13-15절을 사랑과 미움이라는 키워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세상은 그리스도인을 미워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하였기 때문입니다. 둘째, 형제 사랑은 구원받은 사람의 표지입니다. 셋째, 형제를 미워하는 것은 살인하는 것이며 구원받지 못한 사람의 특징입니다.

요한일서의 수신자들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핍박을 받았고 순교할 수도 있는 시대를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고난은 이상한 것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13절에 ‘이상히 여기다’로 번역된 헬라어는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상히 여기다’로 번역된 헬라어를 주로 기적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묘사할 때 사용하였습니다. 요한에게 있어 이상한 일은 세상이 그리스도인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이며 성령의 공동체가 된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사랑하지 않는 모습이었습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하늘 가족의 표지이며 영생을 얻은 사람의 생활방식이기 때문입니다.

12절에서 요한은 인류 최초의 살인 사건이 ‘친족살해’였음을 상기시키며 15절에서 형제를 미워하는 것은 살인하는 것이라고 엄중히 경고하였습니다. 우리 안에 영생이 없었을 때는 형제를 미워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마태복음 5장 21절 이하에서 새 계명의 적용을 받는 그리스도인들은 형제를 미워하는 것만으로도 심판을 받게 될 것임을 경고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의 선생으로 자처하였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향해 주님께서 매섭게 책망하셨던 것은 그들이 겉으로는 율법을 준수하는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의 시커먼 속내를 아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님은 형제를 향해 분노하고 모욕적인 말을 한 것이 실제적인 살인을 저지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하셨으며 이성을 향해 음란한 생각을 품은 것은 곧 간음죄를 범한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영생을 소유한 사람의 마음에 미움이 자리할 수 없는 이유는 성도의 마음이 더 이상 죄의 지배를 받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통치를 받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죄로 인해 타락한 욕구를 따라 살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통치에 순종하며 살기 위해서는 그동안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여겼던 기본적인 감정과 욕구들을 성령 안에서 새롭게 배우고 훈련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배워야 할 감정이며 훈련 받을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 행함과 진실함으로(16-18)

(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많은 성도들이 사랑이라는 감정이 모든 사람 안에 있는 기본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새롭게 배우거나 훈련받아야 할 필요성에 대해 간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을 정의하는 세상의 방식을 살펴보면 사랑은 새롭게 배워야 할 감정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상대를 집착하고 폭력을 행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지고지순한 사랑을 기대하는 가정에서도 마땅히 있어야 할 사랑 대신에 학대와 살인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이와같은 현실을 마주할 때면 사랑은 모두에게 공통적이고 익숙한 것이 아니라 낯설고 배워야할 것처럼 느껴집니다.

요한은 형제 사랑하기를 강조하며 사랑이 무엇인지 정의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셨으며 우리를 얻기 위해서 자신을 버리셨습니다. 우리에게 사랑을 강요하거나 말뿐인 공허한 사랑으로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며, 어떻게 사랑하시는지를 십자가를 통해 증거하셨습니다. 사랑은 행동이며, 사랑은 희생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비로소 사랑이 무엇인지 깨달았습니다. 요한은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다’는 표현을 통해 자기 희생 없는 공허한 사랑을 교회 안에서 몰아내고 생명의 역사를 이루기 위한 밀알의 사랑을 교회에 심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풍성한 열매가 교회 안에 충만할 것을 기대하였던 것입니다.

(17-18)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시작되었고 그 사랑이 교회를 움직이는 동력이 되며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교회의 본분입니다. 교회라는 공동체만큼 ‘사랑’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고 ‘사랑’의 가치를 귀하게 생각하는 곳이 있을까요? 그런데 요한은 편지의 수신자들을 향해 형제를 사랑할 것을 강조합니다. ‘말과 혀’로만 하는 사랑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할 것을 강하게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은 구체적으로 ‘이 세상의 제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채워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이 세상의 재물’이라는 표현을 통해 하나님께 속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재물’은 ‘이 땅’에 속한 것임을 깨닫게 합니다.

돈은 이 땅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막강한 권세를 행사하지만,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아무런 힘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속했을 때는 돈을 사랑하고 재물을 섬기는 것에 부끄러움이 없었지만, 주님께서 우리를 친구삼아 주시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주셨음에도 우리가 여전히 돈을 사랑하고 있다면 그것은 부끄러운 것입니다. 주님은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음을 경고하시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마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돈은 인격적인 성질의 것이 아니지만 성경은 ‘돈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 경고하고 있습니다(딤전6:10, 딤후3:2, 히13:5). 돈을 사랑하는 사람은 돈의 지배를 받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 사랑으로 형제를 사랑합니다. 돈은 형제를 향한 사랑의 수단이며 도구일 뿐입니다. 이 세상은 황금이 신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형제를 위해 자신의 물질을 나눌 수 있다면 물질과 함께 시간도 재능도 그 어떤 희생도 가능하게 됩니다. 즉, 형제를 향한 사랑은 말 뿐인 공허한 사랑이 아니라 자신의 것을 내어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어야 합니다.

사랑이 말해주는 것들(19-24)

(19)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니

그리스도인이 세상 속에서 구별됨을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말과 행동의 절제나 겸양의 태도나 금욕의 모습이 아니라 자신의 재물을 형제를 위해 기꺼이 나누는 생활방식입니다. 세상은 피와 땀과 소망인 돈을 흘려보내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이상히 여길 것이며 물질을 흘려보내는 그리스도인은 비로소 자신의 소속이 세상이 아니라 진리임을 알고 믿음에 굳게 서게 될 것입니다.

(20-21) 이는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위선과 위장으로 사람들을 속일 수는 있어도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선생 노릇하는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신 것도 그들의 겉과 속이 다름을 아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생명력이 없는 사랑의 삶을 살면서도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책망하실 것입니다. 요한은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할 것을 강하게 권면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삶으로 하나님 앞에서 담대하게 살아갈 것을 요청합니다. 죄가 있는 사람은 그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기 전까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 앞에서 떠는 삶을 살 것입니다. 사랑이 없는 그리스도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것은 바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22-24)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형제 사랑으로 증명된 믿음을 소유한 그리스도인은 무엇이든 간구하는 것을 받는 복을 누리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 무엇을 주시든지 그것으로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형제의 필요를 채우며 연약한 형제를 돕는 일에 사용할 것이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돌아보면 처음에는 ‘주님’이라고 시작하지만 이어지는 기도의 목적어는 언제나 ‘나’임을 발견합니다. 주님께서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해 주시기를 바라고 주님께서 나의 필요를 채워주시기를 간구하는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와같은 기도를 들으실 때 어떤 생각이 드실까요? 돈을 채워주면 그것으로 형제의 삶을 위로하며 건강을 붙들어 주면 그것으로 형제를 위해 봉사하고 높은 지위로 올려주면 그것으로 낮은 곳을 섬기는 삶을 사는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무엇이든 응답하실 것입니다.

우리를 친구 삼아주신 주님과 동행하는 비결은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말뿐인 사랑으로 우리를 권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자신을 내어주시는 사랑으로 아무런 생명력이 없는 마른 나뭇가지와 같은 우리의 인생을 생명나무 되시는 주님께 접붙여 주셨습니다.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계명을 실천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증거하는 것은 우리의 입술이 아니라 우리의 삶입니다. 세상은 자기 자신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나르시시즘(narcissism) 우상숭배와 돈을 사랑하는 맘모니즘(mammonism)에 빠져있습니다. 주님께서 친구삼아 주신 우리는 행함과 진실함으로 형제를 사랑하는 삶을 통해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 뿐 아니라 세상에 생명을 싹틔우는 삶을 시작하길 원합니다. 힘들어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끝까지 지치지 않고 사랑할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부어주시며 믿음으로 용기낼 수 있도록 힘 주실 것을 믿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측량할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영생을 얻었음에도 말 뿐인 공허한 사랑의 삶을 살았던 우리를 돌아보게 하시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세상이 우리를 이상히 여기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 들이고 오히려 우리의 삶에 사랑이 없음을 이상히 여기며 사랑이 메마른 우리의 마음이 더 황폐해지지 않도록 성령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물 붓듯 부어주시옵소서. 죄의 종 노릇하던 우리를 무한하신 사랑으로 친구삼아 주신 주님을 사랑함으로 형제를 사랑하고 기꺼이 삶을 나누는 삶을 통해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세상이 그리스도인을 이상히 여기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세상의 시선을 그동안 어떻게 받아들였으며 앞으로는 어떻게 여기시겠습니까?
2.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 주님의 사랑으로써 ‘사랑’을 알았다는 표현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주님의 사랑을 알기 전에 생각했던 ‘사랑’과 주님의 사랑을 알고 난 이후의 ‘사랑’은 어떻게 변화되었습니까?
3.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기 위해 무엇을 결단하시겠습니까?
4. 우리를 친구 삼아주신 주님의 동기는 무엇입니까? 원수 되었던 우리를 친구 삼아주신 사랑을 받았음에도 제한적인 사랑을 하고 있었던 삶에서 어떻게 돌이키시겠습니까?
5.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삶이라는 사실을 삶 속에 어떻게 적용하시겠습니까?


(작성: 최현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