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요한계시록 13장 1-18절
찬송가 357장 ‘주 믿는 사람 일어나’

요한계시록12장에 큰 용이 나온다면 13장에서는 두 짐승이 나타납니다.
13장은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 모습이 묘사되고 있는데, 이 짐승은 한 마디로 큰 용 사탄의 대리자 또는 하수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왕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신성 모독 하는 이름들이 있더라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1-2절)

용으로부터 능력과 보좌와 권세를 받고서 성도들을 박해하는 이 짐승은 하나님을 대적하며 스스로 신격화하는 사악한 세상 권세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 짐승이 나온 곳은 바다인데 성경에서 바다는 늘 요동하는 세상 나라들, 또는 용과 리워야단과 같은 괴물과 악의 본거지로 묘사됩니다. 그래서 계시록 21장에서 새 하늘 새 땅에는 바다가 없다고 합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계21:1)

이 짐승이 주로 하는 것은 하나님과 성도들을 비방하며, 악한 권세를 사용하여 성도들을 핍박하는 일입니다. 이짐승은 과장과 거짓으로 힘을 얻고 입만 열면 비방입니다. 가진 힘이 강해서 사로잡고, 칼로 죽입니다. 구원을 얻지 못한 세상의 사람들은 다 이 짐승을 칭송하며 숭배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위협적이고 막강한 힘을 가진 짐승도 누리는 권세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마흔두 달 동안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5절)

누가 능히 이와 더불어 싸울 자가 없고(4절), 하나님을 비방하고(6절), 성도들과 싸워 이기고(7절), 사로잡고 죽이는 막강한 권세를 가졌다고 하더라도 짐승의 권세의 기한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10절은 이 짐승의 적대적 활동으로 인해 사로잡히는 자와 칼로 죽임을 당하는 순교자가 불가피하게 나올 것에 대해 언급합니다. 그래서 성도는 인내와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로잡힐 자는 사로잡혀 갈 것이요 칼에 죽을 자는 마땅히 칼에 죽을 것이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10절)

12장의 하늘의 싸움에서 용이 패한 줄 알았는데 13장에는 오히려 더 세력이 막강해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12장의 승리는 13장으로, 14장으로 계속 이어져 가는 것입니다.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8절) 이 말씀이 13장이 12장과 14장의 승리를 연결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땅에 속한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해도 어린 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은 경배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구원받고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 사람들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이고 예수의 사랑을 맛보아 아는 사람들은 짐승에게 절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만유의 주인이 누구인지 아니까, 그 은혜를 아니까, 그 사랑을 아니까 성도는 고난과 핍박 가운데서 인내할 수 있고 믿음을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어린 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을 하더라 (11절)
첫 번째 짐승이 온갖 맹수의 모습으로 바다에서 나타났다면 두 번째 짐승은 땅에서 어린양과 비슷한 모습입니다. 어린양과 비슷한데 뿔이 두 개이고 용처럼 말합니다. 용은 온 천하를 꾀는 자(12:9)로 달콤한 말로 속이려 합니다. 그가 구원을 말하지만 실상 그의 말은 마귀의 말입니다. 큰 이적을 행하는데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에서 내려오게 합니다. 예수님처럼 거룩하고 경건해 보입니다. 귀에 쏙 들어오는 감언이설로 마음을 흔들어 놓습니다. 놀라운 기적을 보여줍니다. 안 넘어갈 수 있겠습니까? 가장 거룩해 보이고, 가장 성경적인 것처럼 보이고, 가장 능력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양같이 보이는 두 번째 짐승은 그 능력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미혹하여 첫째 짐승을 섬기게 하고 그 우상을 만들게 하고 그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여 우상을 숭배하게 하고 듣지 않는 사람들을 죽입니다.. 이 땅으로부터 나온 두 번째 짐승은 거짓 선지자들과 이단을 상징하며, 사악한 정치권력과 타락한 종교가 결탁하여 사람들을 미혹하며 성도들과 교회를 핍박하게 될 것을 보여줍니다. 주님의 재림이 임박할수록 이런 미혹하는 거짓 선지자들의 활동은 극대화될 것을 예수님은 경계하셨습니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마 24:24)

거짓 선지자는 짐승의 추종자들로 하여금 오른손과 이마에 짐승의 표인 666표를 받게 하고 이를 매매의 수단으로 삼게 합니다.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에게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16-17절) 매매를 못하면 어떻게 됩니까? 먹고 살 수가 없습니다. 세상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욕망이 넘실거리는 세속의 바다에서는 짐승의 방식, 짐승의 가치관을 따르지 않으면 살아갈 수 가 없다는 것입니다.

2013년 우리 교회 표어가 생각나십니까? “생각하여 보라”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6:31-33)

내게 있어야 할 것을 다 알고 계시고, 세상 끝날 까지 항상 나와 함께 하신다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사탄이 깨거나 변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자기를 따르지 않으면 이 세상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없다고 두려움을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삶의 우선순위를 드리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방해하여 두려움 속에 세속의 가치관을 좇게 만드는 사탄의 의도가 바로 666입니다. 하나님께 집중하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으로 만족하지 못하게 합니다. 666 짐승의 표는 말세에 박해와 위협 속에서 강제로 우리에게 낙인을 찍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지금 온갖 세상 논리를 동원하여 성도로 하여금 물질과 권세의 논리로 살아가게 하는 시도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세상에서 살아가지만 세상에 속한자가 아닙니다. 세상의 논리가 아니라 복음과 은혜의 논리로 사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 것입니다. 666의 거짓논리를 이겨내고, 그 영향력과 미혹을 이겨내고 하나님께 우선순위를 두고 복음과 은혜의 논리로 살아가는 교우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자비하신 하나님, 예수의 십자가 은혜를 항상 기억하고 묵상하겠습니다. 그래서 악한 권세들의 박해와 유혹이 갈수록 심해져도 어린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성도답게 굴복하지도 미혹당하지도 않게 하여 주십시오. 세상이 주는 거짓 두려움과 혜택에 물들어서 스스로 짐승의 표를 받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게 하여주시고 오로지 하나님의 채워주심을 믿고 하나님께 우선순위를 두어 하나님의 백성된 인침을 받게 해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짐승이 쓰는 방법은 무엇입니까?(5,6절)

2. 짐승의 박해와 위협가운데 성도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10절)

3. 짐승의 표 “666”을 받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라고 생각하십니까?

4. 짐승의 박해와 유혹이 점점 심해지는 세대입니다. 어린양의 피와 주님의 말씀을 항상 묵상함으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작성: 이정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