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요한일서 4장 1-23절
찬송가 315장 ‘내 주 되신 주를 참 사랑하고’

긴 세월을 살아온 노(老) 사도로서 사도 요한은 애정 어린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들아’라고 반복적으로 말하며 요한일서 4장에서 영 분별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1절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영을 다 믿지 말라는 것은 곧 믿지 못할 영이 있다는 것으로써 하나님께 속하지 않는 영이 있기에 주의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 속하지 않는 영에 사로잡힌 자로서 거짓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본문의 ‘거짓 선지자’와 동일한 헬라어를 사용하는 베드로후서 2장 1절에는 ‘거짓 선생’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요한서신을 기록했던 1세기 말에는 구약시대에 활동했던 선지자들처럼 신탁(神託)을 전하는 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는 선지자의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밧모섬에서 사도 요한에 의해서 성경에 기록될 계시가 완성된 시점을 고려해 본다면, 선지자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거나 가르침은 거짓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거짓된 것을 예언하거나 거짓된 것을 가르치는 자들을 주의해야 하는데 그들을 어떻게 분별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2절입니다.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3절 상반절에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으로 오신 성육신을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한 자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성육신 시인여부가 곧 하나님의 영에 속했는지 또는 아닌지의 분별 기준이자, 오늘날 이단의 분별 기준이 됩니다. 예수님을 시인하지 않는 영이란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성육신을 부인하는 영이기에 사도 요한은 이들을 적그리스도의 영이라고 말씀합니다. 적그리스도는 문자적으로 ‘안티크리스토스’를 번역한 단어로써 오늘날 ‘반대한다’는 개념의 외래어 ‘안티’의 접두어가 ‘그리스도’에 붙어 있는 단어입니다.

적그리스도의 영은 6절에 언급된 미혹의 영이며, 진리의 영을 반대하는 영입니다.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 그리스도의 영과 적그리스도의 영, 하나님께 속한 영과 하나님께 속하지 않는 영을 분별할 수 있는 또 다른 기준은 ‘누구의 말을 듣느냐’입니다. 세상의 말을 하고 세상의 말을 듣느냐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한 사도들과 복음 전도자들의 말을 듣느냐입니다. 세상의 말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부인하고 예수님의 성육신을 부인하는 말을 포함해서 세속적 가치관에서 나오는 모든 말입니다. 세상의 말을 듣고 세상의 말을 따라 몸과 마음이 움직이는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에 감동이 되어 행동하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세상의 말에 집중하지 않으면서 자신을 지킬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자가 되어야지만 미혹의 영에 사로잡힌 자가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자라 말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말을 듣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데 사도 요한은 구체적으로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7절, 8절입니다.

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여기서 말하는 사랑이란 세상에서 말하는 사랑이 아닌 자기희생이 따르는 아가페로써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라는 말씀은 요한복음 13장 34-35절에 있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며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아는 사람입니다. 사랑을 하되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일방적인 사랑이 아닌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것은 서로가 서로를 위해 자기희생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사랑은 9절에 자기의 독생자를 보내시어 우리 인간을 살리려 하신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독생자를 화목제물로 희생하게 하신 사랑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11절). 내가 사랑을 많이 받지 못해서 불행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먼저 자기희생적인 사랑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먼저 아내를 위하여 먼저 남편을 위하여 먼저 자식을 위하여 먼저 부모를 위하여 먼저 형제 자매를 위하여 희생해 보십시오. 그러면 그들도 달라질 것입니다. 가정에 기쁨과 행복이 찾아올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어떤 결과가 있겠습니까? 12절입니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성령 하나님께서 거하심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시인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심을 알고 있습니다. 이를 13절부터 15절에서 잘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12절에서 하나님께서 거하신다는 것은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선행조건에 따른 결과가 아니라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이미 함께 하셨던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완성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온전히 이루어지는 것, 즉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완성되면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됩니다. 17절입니다.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여기서 담대함이란 원어적 의미는 ‘숨김없이 말하다’입니다. 심판 날에 하나님 앞에서 숨김없이 말하는 담대함은 어떨 때에 가능하겠습니까? 세상의 말을 듣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이 땅에서 살아갈 때에 자기희생적 사랑을 했을 때이지 않겠습니까? 담대함의 반대말은 두려움입니다. 두려움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못할 때에 발생합니다. 18절입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두려움은 하나님의 사랑을 외면했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두려움은 하나님의 명령인 서로 사랑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서로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가족과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거짓말하는 자입니다. 20절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가족과 이웃을 사랑하는 자가 되어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가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진리의 영이신 하나님의 영을 알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세상에 속하여 세상의 말을 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속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이시고, 말씀 가운데 거하시며, 말씀으로 말씀하심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내 가족과 이웃을 사랑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영에 의해 살아가는 자, 하나님께 속한 자라고 말할 수 없음을 잊지 않게 하옵시고 서로 사랑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이루게 하시고 두려움을 내쫓게 하시고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진 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거짓 선지자(또는 거짓 선생)는 어떤 영에 사로잡힌 자입니까?(3절, 6절 참고)
2. 거짓 선지자(또는 거짓 선생)를 어떻게 분별할 수 있습니까?(1~6절 참고)
3.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할 근거는 무엇입니까?(9-11절과 요13:34-35참고)
4. 우리가 서로 사랑하게 될 때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12-19절 참고)
5.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형제(사람)에 대한 사랑은 어떤 연관성이 있습니까?(20-21절 참고) 그리고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떤 영에 영향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작성: 김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