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요한계시록 21:1-8

찬송가 360장 ‘행군 나팔 소리에’

새 하늘과 새 땅(1-4절)

오늘 본문에서 요한은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새 예루살렘의 환상을 봅니다. 그와 동시에 처음 존재했던 하늘과 땅과 바다는 사라져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시끄럽고 혼잡했던 이전의 세상들은 사라진 것입니다. 또한 이 땅에서 신실한 믿음을 지켰던 성도와 끝까지 불순종했던 악인들은 영원히 분리 됩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와 성도들을 보호하시며 그들의 눈물을 씻겨주시는 반면 악인들에 대해서는 둘째 사망을 선언하십니다.

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여기서 등장하는 새하늘과 새 땅은 리모델링이 된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한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하늘과 땅으로 대변되는 모든 피조 세계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새롭게 창조되었음을 뜻합니다. 계시록 12장에서 하늘은 사단이 땅으로 떨어지기 이전에 있던 장소이며 13장에서 바다는 첫째 짐승이 올라온 악의 근원지로 묘사되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전 것이 완전히 사라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였다는 것은 사단의 거점이 완전히 사라졌고 오직 하나님의 위대한 승리만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할 수 있습니다.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을 넘어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등장합니다. 독특하게도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그 준비한 것이 있다고 합니다. ‘준비한 것’을 원문의 뉘앙스를 살려 표현하자면 ‘단장한 것’, ‘꾸민 것’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을 마치 결혼식을 준비하는 신부처럼 꾸미고 단장시켜주셨습니다. 예루살렘이 무엇입니까? 바로 이 땅의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자들의 모임인 교회입니다. 복음을 수호하기위해 치열한 전투를 치르느라 다치고 더렵혀진 교회를 깨끗하고 아름답게 공을들여 준비시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있던 사도 요한에게 큰 음성이 들립니다. 본절의 ‘보라’의 헬라어 ‘이두’는 단순한 명령이라기 보다 감탄사에 가깝습니다.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탄의 목소리로 잘 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장막입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장막은 구약에서 등장하는 성막과 성전을 의미합니다. 성막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계실 때에 머무신 곳입니다. 그리고 그 성막은 이스라엘 진영 한 가운데 설치되었습니다. 즉 성막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함께 계신다는 것과 그들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여주심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모든 것이 마무리 되는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들과 긴밀한 교제를 하게 될 것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여기서 등장하는 눈물은 단순히 억울함이나 절망에서 나오는 눈물이 아닌 주님을 향한 신실한 믿음의 대가로 흘린 눈물을 의미합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와 교회만이 이러한 눈물을 흘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믿음을 지키면서 흘린 눈물을 닦아주십니다. 그리고 그 눈물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기에 더이상 흘릴 일이 없게 됩니다. 더 나아가 그때에는 사망도 애통도 곡하는 것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고통이 존재하던 ‘처음 것’들은 다 지나갔기 때문입니다.

이 편지를 읽었을 초대교회 성도들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비록 지금은 사단이 교회를 공격하는 세상, 즉 ‘처음 것’들의 세상에서 살아가지만, 이 세상은 언젠가는 다 지나가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위로하시고 품어주시는 주님이 계시다는 그 말씀 때문에 감격이 있지 않았겠습니까. 성도에게 계시록은 두렵고 무서운 말씀이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믿음 때문에 힘들고 고난 중에 있는 성도에게 이미 보증된 승리를 보여주며 산소망을 갖게하는 은혜의 말씀입니다. 눈물로 세월을 보내시는 분이 계십니까? 처음 것들을 다 지나가게 하시고 반드시 승리의 잔치에 참여케 하실 주님을 바라보십시다. 


이기는 자와 두려워하는 자의 영원한 분리(5-8절)

5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여기서 ‘보좌에 앉으신 이’는 이 세상을 통치하시는 분이 좌정하셨음을 의미하며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왕, 즉 하나님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새 창조의 주체자이심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하시는 말씀은 거짓이 없으며 반드시 성취될 것이기에 기록에 남겨 후대의 교회와 성도들에게 전달하게 하십니다. 이 명령 덕분에 2021년을 살아가는 저와 우리 교우님들에게도 계시록의 말씀이 전달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읽고 묵상할 때 깨닫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약속이 무엇입니까? 

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루었도다’라고 말씀하실 때에 앞서 1-5절까지 두루 얽혀 있는 예언의 성취가 절정을 이룹니다. 이는 마치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위대한 구원사역을 다 이루신 뒤에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연상하게 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임을 선언하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절대 통치권을 갖고 구원과 심판의 역사를 이뤄가실 분이심을 의미합니다. 사실 이와 유사한 표현이 21장 6절뿐만 아니라 계시록 1장 8절에 등장하였습니다. 이러한 문장 배치는 사도 요한이 우연의 일치로 기록한 것이 아닌, 계시록 전체의 역사들이 하나님의 절대 주권아래 있음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절대 주권자이신 하나님께서 그 힘과 능력으로 무엇을 하신다고 하십니까?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십니다. 생명수 샘물은 다시 말해 영생의 복을 주신다는 것인데 흥미롭게도 이 복을 아무에게나 주는 것이 아니라 목마른 자에게 주십니다. 이 말을 뒤집으면 목말라하지 않는 자에게는 영생의 복을 주시지 않겠다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낮고 낮은 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스스로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은 십자가의 은혜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누가 목 말라 합니까? 자신이 얼마나 추악한 죄인인 줄 알고 하나님을 향한 영혼의 갈급함을 느끼는 사람만이 십자가의 은혜에 목말라 합니다. 그러므로 나 자신이 용서받은 죄인이라는 사실을 늘 기억하며 겸손하게 주님의 은혜에 참여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7-8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두 부류의 사람이 극명하게 대조되어 나타납니다. 지금까지 나열한 수많은 복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은 이기는 자입니다. 그 이기는 자는 이 땅에서 신실한 믿음으로 끝까지 승리한 성도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신앙의 여정 중에는 수많은 고난과 눈물이 있지만 그 끝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놀라운 신분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는 그분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는 이토록 긴밀하고도 친밀한 관계를 갖게 됩니다.

반면에 8절에서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단순히 비신자 전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언약 공동체 안에 속해 있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두려워하고 박해에 직면했을 때 타협한 자들을 가리킵니다. 이 사람들은 공간적으로는 교회 안에 있지만 세상과의 거룩한 전투는 회피하고 악과 맞서지 못하는 비겁한 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성경기자는 ‘두려워하는’ 뒤에 ‘믿지 아니하는’을 붙여 공허한 믿음을 가진 자들임을 말했던 것입니다.  또한 그 뒤로 믿지 아니하는 죄악 뿐만 아니라 교회를 위협했던 여러 불순종의 죄악들이 나열됩니다.  특별히 가장 마지막에 언급된 ‘거짓말 하는 자’는 당시 상황을 고려해볼 때 거짓 교리를 전파하던 이단 세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타협 행위나 거짓 교리로 말미암아 기독교의 신앙고백을 배반하는 자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악인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져 둘째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영원한 생명이신 하나님과의 분리에서 오는 영원한 사망의 고통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영원한 형벌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완전히 격리 된 곳에서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이 말씀이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교회를 다닌다고해서 이기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며 예배당에 앉아 있다고 해서 그것이 구원받은 성도임을 보증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얼마든지 속일 수 있습니다. 심지어 나 자신 마저도 내가 믿음을 가진 사람인 줄로 속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심판 때에 우리 주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혹시 믿는다고 하면서도 삶 속에서는 비신자와 다를바 없는 실천적 무신론자의 삶을 살고 있지 않은지 스스로 점검해보십시다. 사람을 두려워하기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날마다 타협없는 치열한 믿음의 전투를 임하는, 그래서 정말 성경이 말씀하는 ‘이기는 자’가 되는 그 여정길로 우리 교우님들을 초대합니다. 바라기는 오늘 하루, 주님이 기뻐하시는 이기는 자의 삶을 함께 살아내시는 우리 모든 교우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 도

이 세상의 처음과 끝이 되신 아버지 하나님.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는 약속의 말씀을 알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몸은 아직 처음 하늘과 처음 땅에서 살아가지만 이제 눈을 들어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우리를 준비하게 하실 주님을 바라봅니다. 당장은 믿음을 지키기 위해 고난과 눈믈이 있겠지만 우리와 함께하실 주님을 의지하오니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이기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도 우리와 동행하여 주실 줄 믿사오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내가 붙잡고 있는 것들 중에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기 위해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이 있습니까?

2.이스라엘 백성은 성막의 존재를 통해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인지했습니다. 내 삶에 하나님을 인식하기 위해 필요한 성막과 같은 요소는 무엇입니까?

3.나로 하여금 8절에 등장하는 ‘두려워하는 자’가 되게 했던 상황이나 요소는 무엇이 있습니까?

4.알파와 오메가 되신 하나님 앞에서  ‘이기는 자’가 되기 위해 어떤 결단을 하시겠습니까?

(작성 : 김호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