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요한복음 13:1-20
찬송가 314장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13장부터 진행되는 요한복음 후반부의 핵심은 가장 위대한 표적인 십자가를 통한 계시입니다. 전반부에 등장하는 여러 표적들을 통해 예수님께로 나아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목적은 제자들을 훈련하시기 위함이었고, 이제 후반부의 가르침과 고별 설교 역시 제자들을 양육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요한복음 13장은 후반부 전체 내용을 요약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세족식을 통한 예수님의 겸손한 사랑이야기는 이어지는 유다의 배신 이야기와 짝을 이루고 있습니다. 또한 사랑의 계명에 대한 이야기는 베드로의 부인 예고와 긴장 관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건들은 주님의 끝까지 사랑하심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으심(1-11)

(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예수님은 자신을 배신할 가룟 유다가 포함되어 있음에도, 잠시 후면 제자들이 자신을 버리고 도망할 것을 아셨음에도 사랑해 주셨고, 그들을 믿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역시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그분을 부인하거나 멀어졌던 모든 순간과 행동을 잘 아심에도 그런 우리를 향해 사랑을 베푸시며 우리에게 손 내밀어 주십니다. 주님의 사랑과는 대조적으로 주님을 배신할 제자도 있었습니다.

(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마귀는 생각 속에서 역사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 생각을 제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루터의 유명한 말처럼, 새가 머리 위를 날아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머리에 둥지를 틀게 해서는 안 됩니다. 탐심과 욕망이 생각을 사로잡을 때 사단은 우리를 이용합니다. 자칫 그 생각을 이기지 못한다면 우리의 행동으로 인해 순간 사단의 도구로 쓰임 받을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비록 자신을 배신하여 팔 제자가 섞여 있었지만, 주님은 그를 포함하여 중심으로부터 올라오는 사랑을 표현해 주시는 세족식을 거행하십니다.

(3-5)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실습은 교육에 있어서 아주 탁월한 방법입니다. 직접 보고 배우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3년 동안의 제자훈련을 거의 이러한 방법으로 진행하셨는데, 곧 모델링 교육입니다. 당시 발을 씻어주는 사람은 이방인 노예이거나, 아내 또는 자녀 중에서 남자의 발을 씻을 경우가 있었지만 남자가 씻어주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주님의 이 행동은 파격 그 자체였습니다. 이 순간 아마 주님은 당신의 머리와 발에 향유를 붓고 머리카락으로 발을 씻어 주었던 마리아를 떠올리셨을 것입니다. 주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으로 섬김의 표현을 했던 마리아처럼 이제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한 사랑으로 친히 섬김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일렬 아니면 식탁을 중심으로 디귿자 모양으로 앉아 있었을 것입니다. 순서대로 제자 한 명 한 명의 발을 친히 씻어 주셨습니다. 발을 내밀기에 너무도 당황스럽고 이해할 수 없었겠지만, 주님의 그 행동에 제자들은 거부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제자 한 사람씩 발을 만지시며 물로 씻어주시고, 이어 허리에 두른 수건으로 직접 닦아 주셨습니다. 베드로가 중간이었는지 마지막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수제자였던 베드로는 속으로 가장 당황해했던 것 같습니다.

(6-9)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베드로가 이르되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

상관이 있다는 단어의 원어적 의미는 함께 받을 유산, 함께 할 몫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아들과 함께 영원한 유업을 상속받게 됩니다. 처음에는 발 씻기를 거절했던 베드로는 이제 자신의 발뿐만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달라고 이야기합니다. 옆에 있던 제자들은 예수님 때문에 한 번 당황하고, 베드로 때문에 한 번 더 당황했을 것입니다. 그런 베드로를 향해 주님은 이미 목욕한 사람은 발만 씻으면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족식 자체는 제자들에게 섬김의 본을 보여주시며 서로 섬기는 삶을 살라는 교훈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질문에 답하실 때는 세족과 목욕을 연결하여서 세족에 회개의 의미를 포함시키십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것은 영적으로 죄를 씻어주시는 행위이자, 또한 섬김의 모습임을 동시에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열 두 제자의 발을 모두 씻으시고 다시 앉으셔서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주십니다.


섬김에 대해 가르치심(12-20)

(13-14)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발을 씻어준다는 것은 그 사람의 필요를 채워주신 것이며, 그 사람에게 있어서 하찮게 여겨지는 것일지라도 기꺼이 도와주는 것을 또한 의미합니다. 지금까지 제자들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필두로 자기가 서로 높은 자리에 앉기 위해, 또한 예수님의 오른팔이 되기 위해 애쓰며 살아왔습니다. 주님을 열정적으로 사랑하고 따르기 원하는 것은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목표로 인해 옆에 있는 다른 제자 동료, 동역자들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나 혼자 열심히 주님을 믿고 따르며 최고가 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변을 돌아보며, 동료와 동역자들을 챙기고, 그가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리더의 자리에 있을 때 먼저 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제자들이 이 말씀을 깨달은 때는 성령을 받은 이후일 것입니다. 그 때 주님의 이 가르침이 생각나고 실천했을 것입니다. 초대교회에서 사도들은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먼저 섬기는 자가 되었습니다.

“세상에서는 높은 자리에 올라갈수록 대접을 받고 아랫사람을 하대하고 지시하고 명령하고 특권을 누리지만, 너희들은 앞으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고 지도자가 될 터인데, 그리고 성도들을 가르치고 선생의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럴수록 너희는 겸손하거라. 그리고 섬기는 자가 되거라. 가질 수 있는 권리, 특권을 내려 놓거라. 주장하는 자세를 가지지 말거라. 다른 사람의 필요를 바라보거라.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을 찾아서 먼저 하거라. 대접받기 원하지 말거라. 인정받기 위해 섬기지 말거라.”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와 선생이 되어 먼저 제자들을 섬겨주신 예수님처럼, 우리가 있는 곳에서 지금 섬겨야 할 대상은 누구입니까? 가정에서 어떤 섬김이 있어야 하겠습니까? 우리가 있는 학교나 직장에서 내가 섬겨야 할 모습은 무엇입니까? 교회 공동체에서, 우리 구역 안에서 내가 감당해야 할 섬김의 모습은 무엇입니까? 누군가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을 포함하여 따뜻한 격려의 말 한마디, 힘이 되는 작은 선물 하나, 그리고 그 영혼을 위해 하나님 아버지께 간절히 중보의 기도를 올려드리는 것 모두가 포함될 것입니다. 그러한 섬김이 있는 공동체가 진정한 주님의 제자공동체일 것입니다. 이어서 주님은 알고 행하는 것, 곧 섬김이 복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15-17)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복이 되는 겸손은 단순한 태도가 아니라 높은 위치에서도 낮은 자를 진정으로 섬길 수 있는 행위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에게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섬기기 위해 오셨고 우리를 위한 대속물로 자신을 주셨습니다. 이러한 주님을 본받아 많은 선교사님들이 이 땅을 찾아 섬김의 삶을 사셨습니다.

서서평, 엘리자베스 쉐핑 선교사님의 일대기는 우리에게 섬김의 본을 보여줍니다. 1912년 32세 나이에 독일계 미국인 간호사로 한국에 온 서서평은 검정고무신을 신고 한복을 입고 된장찌개를 먹으며 한국인으로, 한국인의 친구로 살았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의료혜택을 받지 못했던 전라도 궁핍한 지역의 미혼모, 고아, 한센인, 노숙인 등 가난하고 병약한 사람들을 보살폈습니다. 입양하여 키운 고아가 열 네 명, 오갈 곳 없는 과부를 가족처럼 품어 집에서 같이 지낸 사람이 서른여덟 명이었습니다.

약한 자들을 위해 많은 헌신과 섬김을 베풀다 54세 나이에 영양실조로 삶을 마감한 그녀는 자신의 몸마저 의학연구용 시신으로 기증하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었습니다. 그녀가 떠난 남루한 방에 남은 것은 낡은 옷가지 몇 개와 반쪽이 된 담요, 동전 일곱 전, 강냉이 두 홉, 그리고 그의 좌우명이 적힌 메모지 한 장이었습니다. 거기에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성공이 아니라 섬김이다’ 그녀는 우리를 섬겨 주신 주님을 본받아 그 길을 걸었으며 그 삶은 참으로 복된 삶이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걷고 있는 길은 성공을 위한 길인지 섬김의 길인지 돌아보아야겠습니다.

세족식 교훈 말미에 주님은 다시금 가룟 유다를 대상으로 메시지를 던지십니다. 시편 41편 9절에 기록된 말씀을 인용하여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주십니다. 구약시대부터 식탁 교제는 아주 친밀한 관계를 상징하는 것이었기에 식탁 교제를 한 이후에 배신을 한 행위는 특별히 더 악한 행위였습니다. 가룟 유다는 스스로 찔림이 있었겠지만, 그는 양심을 저버리고 자신의 길로 향하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은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해 주신 말씀이 성취되는 과정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예수님은 반복적으로 자신의 정체성과 주님을 믿는 것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19-20) 지금부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일러 둠은 일이 일어날 때에 내가 그인 줄 너희가 믿게 하려 함이로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은 곧 하나님을 영접한 것이고 그에게 영원한 생명이 허락됩니다. 그리고 그분과 동행하며 주님이 주시는 풍성한 생명을 경험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나아가 주님이 보여주셨던 섬김을 본받고 닮아가며, 자신의 삶에서 그리스도의 섬김을 몸소 실천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 청년 바보의사’ 안수현 형제의 이야기는 마치 예수님을 떠올리게 하는 겸손한 섬김의 삶이었던 것을 봅니다. 안수현 형제에 대해 소개하는 글이 있습니다.

“고려대 의대를 나온 안수현 형제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고, 환자들에게는 친절한 의사였습니다. 2,000년 의약분업 사태로 전국의 의사들이 파업을 했을 때, 그는 병원에 홀로 남아 환자들을 돌봤습니다. 다른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환자들을 두고 병원을 떠날 수 없어서였습니다. 며칠 밤을 새우고, 하루 한 끼 먹을 시간도 없이 격무에 시달렸지만, 자신의 소명 ‘코람데오(하나님 앞에서)’를 따라 병원을 지켰습니다. 돌보던 환자들의 병실을 밤마다 몰래 찾아가 조용히 낫기를 기도해 주던 그였습니다. 환자가 돌아가시면 장례식장에 찾아가 유족을 위로하던 참 이상한 의사였지요.

그는 선물을 주는 의사였습니다. 암투병을 하는 환자에게는 찬송가테이프를, 환자를 돌보는 가족들에게는 책을 선물했습니다. 환자들만 아니라 병원에 근무하는 동료 의사, 간호사, 물리치료사, 방사선기사, 환자들의 침대를 옮기는 분들, 구두 닦는 아저씨와 매점 아주머니에게까지 그 청년은 겸손하고 따뜻한 선물을 나누었습니다. 돈이 없는 조선족 할아버지의 검사비를 대납해 주고, 백혈병이 걸린 소녀에게는 집까지 찾아가 생일을 축하해 주었습니다. 하반신을 쓰지 못하는 청년을 자기 차에 태워 콘서트장까지 동행해 주는 깜짝 선물을 하기도 했고, 집에만 누워 있는 어린 환자를 찾아가 책을 읽어 주기도 했습니다.”

그런 그가 군의관으로 복무하던 중 유행성출혈열에 감염되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그를 당연히 살려 주실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뜻은 달랐습니다. 2006년 1월 5일, 그 청년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33세, 아주 짧은 생이었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은 그를 통해 예수님을 보았고, 예수님을 만나고 믿게 되었습니다. 짧은 생을 살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귀한 흔적이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 예수님을 본받아 겸손과 섬김의 삶, 사랑을 실천한 인생이었습니다.

그 길은 분명 쉬운 길은 아닐 것이며 하루아침에 우리가 이루어낼 수 있는 일도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을 바라보며 한 걸음씩 걸어간다면, 어느새 우리도 주님의 모습을 닮아 누군가의 발을 씻어주는 섬김의 삶을 살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나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을 내려놓고 중심으로 주님을 따를 때 시작될 것입니다. 오늘 하루, 그리고 앞으로 남은 우리 인생이 주님의 사랑을 받은 자로, 섬김을 받은 자로, 이제 우리도 누군가를 주님의 마음으로 섬기며 끝까지 사랑할 수 있는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말씀을 통해 우리 구원자요 주인이신 예수님을 알아갈 수 있는 은혜를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헤아려 우리 역시 끝까지 주님을 사랑하며, 주님의 사람들을 또한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섬김의 본을 보여주신 주님처럼 우리도 우리 주변의 사람들의 발을 씻어 줄 수 있는 겸손함을 주시고 이를 잘 행하여 복된 삶을 살게 해 주시옵소서. 일평생 그리고 오늘 하루 우리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을 과감히 내려 놓고 우리 중심으로 주님을 영접하여 모시고 주님과 함께 동행하며 살아가는 귀한 삶의 걸음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주님은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주님의 사랑을 깊이 경험한 때는 언제이며 앞으로 주님을 더욱 사랑하기 위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2.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친히 본을 보이심으로 모델링 교육을 하셨습니다. 부모 또는 리더의 자리에서 나는 본을 보이는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돌아봅시다.
3.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예수님이 우리도 그런 삶을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내가 섬겨야 할 사람은 누구이며 어떻게 발을 씻어주어야 할지 생각해 봅시다.
4. 오늘도 예수님을 영접하여 모시고 그분과 동행하는 삶을 살며 힘이신 하나님을 의지하기 위해 어떤 결단을 하시겠습니까?


(작성: 최정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