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요한복음 12:1-11
찬송가 96장 ‘예수님은 누구신가’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을 보았던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특히 죽은 후 무덤 속에 있었던 나사로가 예수님의 부르심에 손과 발과 얼굴이 천과 수건으로 감긴 채로 무덤 밖으로 나왔을 때, 그 장면을 목격한 사람들은 너무나도 경이로워 전율을 느꼈을 것입니다. 이와는 달리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모의를 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예수님께서는 베다니를 떠나 약 15km 떨어진 에브라임이라는 동네에서 잠시 머무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곧 있을 유월절에 맞춰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할 계획을 세우셨는데, 예수님을 죽으려고 했던 사람들 역시 예수님이 유월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에 오실 것을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를 보거든 신고하여 잡으라고 명령을 내려 둔 상태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새(1-8절)

1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 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

유월절 6일 전 베다니에서 일어났던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기 전 베다니로 가셨습니다.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몇 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이며 감람산 남동쪽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베다니에서 죽었던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께서 유월절에 친히 어린 양의 희생제물이 되실 예정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심은 자신이 친히 희생제물이 되시더라도 죽음을 이기시고 살아나실 것임을 암시해 주신 것입니다.

2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새 마르다는 일을 하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잔치는 예수님을 위한 잔치였습니다. 죽었던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잔치가 준비되었을 것입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대접하기 위하여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일을 하다’는 잔치 음식을 준비하는 일이나 잔치와 관계된 어떤 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을 하다’의 원어는 ‘디아코네오’로서 ‘섬기다’, ‘수종들다’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르다는 단지 잔치를 위해 일한 것이 아니라 주님을 섬기기 위해 일을 했던 것입니다. ‘디아코네오’에서 유래된 단어 중 ‘디아코노스’가 있는데 그 뜻이 집사입니다. 집사는 주님을 섬기는 직분입니다. 비단 집사가 아니더라도 주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오늘날 집사의 직분을 부여받지 않았더라도 주님을 섬긴다면 그 사람은 집사인 셈입니다. 마르다가 예수님을 섬기기 위해 일을 했던 것처럼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일하는 사람은 누구나 집사인 셈입니다. 교회 내에 어떤 직분을 받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한 바른 섬김의 자세가 중요합니다.

3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마르다는 일을 하고 있었고, 나사로는 예수님과 함께 앉아 있었고, 삼남매 중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를 가지고 예수님께로 다가갔습니다. 이 향유는 ‘나드’ 식물에서 추출한 순도가 매우 높은 향유였으며 무게는 약 340g 정도였습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한 근’은 오늘날 통용되는 무게와 다르며 원어 ‘리트란’를 번역한 것입니다. 오늘날 큰 용량의 캔 음료 정도의 무게에 해당합니다. 이 정도의 향유를 예수님의 몸에 부었습니다. 공관복음의 증거에 따르면, 한 여인이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다고 합니다. 머리에 부은 향유 약 340g은 적지 않은 양이기에 예수님의 머리에서 흘려내려 발까지 적시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아니면 마리아가 향유를 머리에 부은 후 일부를 예수님의 발에 부었을 수도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기록의 중복을 피하기 위해 공관복음 기자들과는 다른 장면이나 특별한 내용을 기록하였습니다. 당시 문화를 고려하면 발은 가장 오염되기 쉬운 신체 일부분입니다. 오늘날처럼 양말이나 신발을 신지 않았기에 발이 깨끗할 수 없었습니다. 그 발에 값비싼 향유가 머리로부터 흘러내렸든 아니며 직접 부었든 마리아가 자신의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는 것을 사도 요한이 기록하였습니다. 이는 값비싼 향유와 흙과 먼지로 오염된 발의 극적인 대조와 그 발을 머리털로 닦는 상식을 초월한 행동을 기록함으로써 마리아가 얼마나 주님을 사랑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값비싼 향유를 주님을 위해 바치는 것 자체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아무리 존경하고 은혜를 베푼 고마운 분일지라도 자신의 머리털로 발을 닦는 것은 더더욱 쉬운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보통 사람으로는 감히 행할 수 없는 일을 마리아가 하였습니다. 향유 냄새가 온 집안에 퍼지자 누가 말을 했습니다.

4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5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사도 요한이 가룟 유다가 어떤 사람인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 한 사람이지만 예수님을 잡아 넘길 사람으로 소개함은 곧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에 의해 팔리실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예수님을 팔아넘기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 일입니까? 가룟 유다가 마리아를 책망하였습니다. 값비싼 향유가 300데나리온이라는 것을 알 정도로 그 당시 나드 향유의 시세는 알만한 사람은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한 데나리온이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었으므로 300데나리온은 1년 중 안식일과 명절을 제외한 모든 날 동안 매일 일하고 한 푼도 쓰지 않아야 모을 수 있는 큰 액수였습니다. 한 달 임금도 바치기 어려운데 마리아는 노동자 1년 연봉에 해당하는 금액의 향유를 주님을 위해 바친 셈입니다. 하지만 가룟 유다는 마리아에게 헛돈을 썼다고 책망하였습니다. 가난한 자들을 위해 그 향유를 팔아 구제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말투였습니다. 실상은 그의 탐욕을 채우지 못한 분노의 말이었습니다.

6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가룟 유다는 가난한 자들을 돕는다는 명목하에 모은 돈을 횡령하는 도둑이었습니다. 그의 관심은 오직 어떻게 착복할 것인가에 있었습니다. 어려운 형편에 처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기부를 받는 단체나 개인이 변질된 사례를 많이 보곤합니다. 초심이 변한 단체나 사람이 있지만, 처음부터 사익을 위해 자선단체를 설립했거나 활동을 시작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은 구제를 명목으로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사기꾼입니다. 그들의 탐욕이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들을 곤경에 빠트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돈을 맡은 사람은 단독으로 일을 처리하지 않도록 체계가 잘 세워져 있어야 합니다. 불신의 문제가 아니라 돈 맡은 사람을 보호하기 위함입니다. 교회가 아끼지 말아야 할 곳에 거룩한 낭비를 잘하기 위해서 집행하는 사람들은 철저히 정직한 마음으로 수혜자들에게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7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예수님께서는 탐욕이 가득 찬 가룟 유다의 마음을 아시고도 그를 책망하지 않으시고 마리아를 변호하시는데 중점을 두셨습니다. 마리아의 행동에 대하여 더이상 책망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의 장례를 알고 준비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하였기에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의 행동을 칭찬하셨습니다.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의역하면 마리아는 장례를 위하여 그 값비싼 향유 옥합을 간직해 왔다는 뜻입니다. 우리 역시 평소에 주님을 마리아처럼 지극히 사랑한다면 주님에 대한 사랑을 어떤 식으로든지 표현하기를 원할 것입니다. 어떤 식으로 표현하더라도 주님께서는 그 마음의 중심을 아시고 받아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를 포함한 다른 제자들에게 말씀을 이어가셨습니다.

8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 일을 소홀히 해도 좋다는 뜻으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곧 죽음 이후 부활, 승천하실 것이기에 그때가 되면 제자들은 예전처럼 예수님을 눈으로 보며 함께 할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은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죽음을 준비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때를 잘 분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하니(9-11절)

9 유대인의 큰 무리가 예수께서 여기 계신 줄을 알고 오니 이는 예수만 보기 위함이 아니요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도 보려 함이러라

유대인의 큰 무리가 잔치집에 몰려왔습니다. 그 이유는 죽은 사람을 살리신 표적의 주인공과 죽었다가 살아난 나사로를 보기 위함이었습니다. 잔치집에 몰려온 사람들은 소문으로 듣던 두 사람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사람들 역시 표적처럼 대중의 관심사를 따라 움직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 믿으려고 하고 거기에 관심을 많이 갖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이신 하나님과 주님의 보혈로 옛사람은 죽고 예수님 안에서 새사람으로 다시 살아난 사람에게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겠습니까? 영적으로 죽었던 사람이 주님의 은혜로 다시 살아난 일에 대해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주님의 몸된 교회로 몰려오지 않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교회가 옛사람이 죽지 않았고 새사람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지 않겠습니까? 세상이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표적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10 대제사장들이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하니 11 나사로 때문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음이러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자신들의 입지가 좁아졌을 뿐만 아니라 로마의 눈치를 보았기에 예수님의 표적을 통해 보아야 하는 예수님의 신성은 전혀 보지 못하고 정치적인 판단에 따라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예수님만을 죽이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예수님이 살려주신 나사로까지 제거함으로써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의 흔적을 지우려고 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행하신 표적의 흔적인 나사로가 살아있는 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많이 믿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세상의 악한 세력은 예수님의 흔적을 지우려고 합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의 은혜와 치유의 흔적이 있습니다. 불의한 세상은 우리 안에 있는 예수님의 흔적을 지우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불의와 하나님의 의는 조화를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불의의 세력은 그들의 불의를 유지하고 정당화하기 위해 의로운신 주님과 주님의 사람들을 미워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힘이신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우리 안에 있는 예수님의 구원과 은혜의 흔적을 불의한 세상에 알려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를 통해 세상이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알도록 해야 합니다. 나사로 때문에 많은 유대인이 예수님을 믿은 것처럼 오늘 하루 나로 인해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을 수 있도록 주님의 흔적, 은혜를 드러내며 살아가십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나사로를 살려주심으로 죽은 자들에 대한 부활의 소망을 갖게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주님이 죽음을 이기시는 분임을 천하에 알리시기 위하여 먼저 죽었던 나사로를 살려주시고, 마리아를 통해 주님의 장례를 준비하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때에 대한 분별의 중요성을 가르쳐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리아가 자신의 머리털로 주님을 발을 닦은 것처럼 주님의 몸된 교회를 낮은 마음으로 섬기게 하시옵소서. 나사로를 살려주셨던 것처럼 죄로 죽었던 저희를 살려주셨으니 저희가 주님으로 인해 다시 살아난 증인으로서 불의한 세상에서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주님을 전하며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위한 질문
1. 예수님께서 다시 베다니를 방문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2. 마르다가 한 일은 어떤 의미를 갖습니까?
3. 마리아가 예수님께 향유를 부었습니다. 마리아가 이런 행동을 한 이유가 무엇이며, 예수님은 그녀의 행동을 어떻게 평가하였습니까?
4. 마리아가 값비싼 향유와 자신의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은 것처럼 내가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5. 주님으로 인해 살아났던 나사로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믿었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 일로 인해 나사로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우리 역시 주님으로 인해 다시 살아났습니다. 나로 인해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을 수 있고, 아니면 나를 미워하고 해치려고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럴 때 힘이신 하나님을 어떻게 의지해야 하겠습니까?

(작성: 김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