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누가복음 2:1-20
찬송가 126장 ‘천사 찬송하기를’


누가는 자신이 기록한 사건을 로마의 역사와 연관 지어 제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1-7)
(1-3)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본문에 아구스도는 로마의 황제 옥타비아누스입니다. 로마 원로원은 주전 27년 옥타비아누스에게‘아우구스투스’(존귀한 자)라는 칭호를 줍니다. 옥타비아누스의 통치 기간은 로마의 평화 시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가 권력을 장악하게 되면서 오랜 내전은 끝났고, 주후 14년에 죽게 됩니다.

로마의 호적은 군대의 징집이나 세금징수를 원활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로마 군대에 복무할 의무는 없었지만, 세금 납부를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들은 전통적인 관습에 따라 각자의 출생지로 가서 등록하였기 때문에 요셉과 마리아는 함께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천하로 다 호적하게 하라는 로마 황제의 칙령은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나온다는 예언을 이끌어 내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4-5)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베들레헴은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메시아가 태어날 곳으로 예언되었던 곳입니다. 미가 5장 2절입니다.

(미가 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요셉이 이제 갈릴리에서 다윗의 집으로 표현되는 동네로 간다면,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중심부라고 할 수 있는 예루살렘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혀 예상하지 못한 베들레헴이 등장합니다. 미가의 이 예언 자체가 대조하는 것은, 군사적 힘에 의지하여 결국 패하게 될 다윗 계열의 통치자와, 하나님께 의지하며 창대하여 땅끝까지 미치게 될 베들레헴 출신 다윗 계열의 통치자를 의미합니다. 바로 그 베들레헴 출신 다윗 계열의 통치자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을 오늘 본문은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원래 여자는 호적 할 때 함께 갈 필요가 없었지만, 요셉은 임신 중인 아내 마리아를 홀로 둘 수 없어, 함께 동행하여 베들레헴에 도착합니다.

(6-7)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해산할 날이 다 찼고, 아기가 태어나자 마리아는 아기를 싸서 구유에 누입니다. ‘구유’란 소나 말, 가축이 죽을 먹는 여물통입니다. 구유에 누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해산을 코앞에 둔 만삭의 여인에게 아무리 방을 먼저 선점하였다 하더라도, 잠시 자신의 방을 양보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누일 곳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포기하시고,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낮고 천한 이 세상에 오셨건만, 사람들은 예수님을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그것도 자기 백성인 유대인들, 다윗의 집 가문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신 것입니다. 자신의 권리만을 주장하는 사람들로 인하여 거할 곳이 없어 구유에 누인 예수님의 초라한 모습입니다. 누가는 본문을 통해서 왕 중의 왕이 가난하고 비천한 환경에서 태어나셨음을 보여줍니다. 인간으로서 섬기기 위해 태어나신 그분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두가 다 예수님의 탄생을 외면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천사들의 찬양(8-14)
(8-9)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떼를 지키더니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당시 유대 사회에서 힘없고 멸시받던 목자들에게 주의 천사가 나타나서 예수님의 탄생을 알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어떤 권세 있는 자들이나 높은 자들이 아니라 비천한 자들, 사회적 계급이 가장 낮은 자라고 할 수 있는 목자들에게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첫 소식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천사와의 조우에 이들은 당혹하였고 이내 큰 두려움에 휩싸입니다. 사람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하나님의 영광과 천사의 출현으로 이 두려움을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천사는 분명한 복음을 선포합니다.

(10-12)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라 하더니

천사들이 목자들에게 전한 소식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 곧, 복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이 우리에게 기쁜 소식이 되는 이유는 우리를 위해 ‘구주’가 탄생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비록 갓난 아기의 모습으로 초라한 구유에 누워 계시지만, 그분이 바로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건져 주실 유일하고도 완전하신 ‘구세주’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주시니라’는 표현은, 원어를 보면 ‘크리스토스 퀴리오스’입니다. 주격이 나란히 놓여진 구조입니다. 이 경우 퀴리오스는 크리스토스와 동격이 됩니다. 그분이 바로 메시아이시며, 주님이라는 의미입니다. 단지 이스라엘의 사사들 중 하나와 같은, 또 다른 어떤 구원자가 아니라 우리의 진정한 구주라는 것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갓 태어난 아기가 구유에 뉘어 있다는 것은 결코 평범한 일이 아닙니다. 이점이 바로 천사의 이야기가 사실임을 나타내는 표적이 됩니다. 천사는 목자들이 즉시로 아기 예수님을 찾아 나서기를 바라였고,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워있는 아기 예수님을 볼 때, 바로 그 아기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선언만으로는 결코 충분하지 않다는 듯,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13-14)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홀연히 수많은 천군 천사들이 나타나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가슴 벅찬 감격의 순간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먼저는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그분은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타락한 인간의 구원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계획하시고 준비하셨다가, 이제 때가 차매 자기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구원의 계획이 결실을 맺기 시작하는 예수님의 탄생을 그 누구보다도 기뻐하셨습니다. 천사들은 그런 하나님께 먼저 영광을 돌렸던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땅 위에 사람들에게 이제 평화를 선포합니다. 평화로 번역된 헬라어 ‘에이레네’는 히브리어로 ‘샬롬’입니다. 평화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때 비로소 누릴 수 있는 그리스도인의 특권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하나님이 선택하신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 안에 들어가야 함을 의미합니다. 구원이 모든 사람들에게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응답하고 돋는 해의 길을 좇는 사람들만이, 그 길이 이끄는 평화의 길로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목자들은 하나님께서 행하고 계신 그 일을 보러 가기로 결정합니다. 그들은 천사가 이야기한 것과 똑같은 구유의 한 아기를 발견합니다.


목자들의 방문(15-20)
(15-18)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전하니

목자들은 자신들에게 일어난 일이 주께서 알리신 것이라고 말하며, 또 그것이 그들에게 반응을 요구한다는 것을 이해하였습니다. 본문 15절을 헬라어 원어로 보면 강조를 나타내는 접속사 ‘데’가 사용됩니다. 천사를 통해서 자신들에게 알려 주신 것을 “우리가 꼭 보자!”고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천사가 그들에게 가라고 명령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구세주를 보기 위하여 빨리 달려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속히 반응하는 사람,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즉각적으로 순종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는 것입니다.

목자들은 마리아와 요셉, 그리고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 예수님을 만났고, 천사가 자신들에게 말해준 것을 다 전하였습니다. 목자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였고, 놀라운 복음의 첫 증인이 된 것입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목자들의 이야기에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18-19) 듣는 자가 다 목자들이 그들에게 말한 것들을 놀랍게 여기되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니라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선포될 때, 이런 증언을 듣는 사람들은 놀라게 됩니다. 이들이 놀란 이유는 그리스도이며 주님이신 분이 비천한 환경에서 태어나셨다는 것, 그리고 이 엄청난 소식을 겨우 목자들이 전해주었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이들이 보인 놀라움이라는 반응은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믿음과 환희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달랐습니다. 18절에서 언급된 사람들과는 대조를 보이면서, 마리아는 지금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하였습니다. ‘생각하니라’로 번역된 헬라어 원문은 ‘쉬네테레이’입니다. 미완료 과거 형태인‘쉬네테레이’는 마리아가 이 사건들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숙고하였음을 나타냅니다. 18절에서 목자들이 전해 준 것을 들었던 사람들이 보인 반응과, 19절에서 언급되는 마리아의 반응은 분명한 대조를 보입니다. 오늘날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접하는 우리 또한 그저 놀라움의 사로잡혀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이 아니라, 마리아와 같이 마음에 새기어 깊이 생각함 가운데 늘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삶 속에서 읊조리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20) 목자들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천사를 통해 주어진 하나님의 메시지는 그대로 이루어졌고, 그 광경을 눈으로 목도한 목자들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에 대해서 영광 돌리며 찬송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 사건에 동참하게 된 것을 명예롭게 생각하며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성육신)은 가장 존귀한 분이, 얼마나 낮아지셨는지를 보여줍니다. 가장 높으신 분이 얼마나 겸손하게 이 세상에 오셨는지를, 또한 하나님의 놀라운 구속의 역사를 오늘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 역시 자기를 부인하며 낮아짐과 섬김의 모습을 통하여 주님의 모습을 닮아가는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저희를 긍휼히 여기사 예수님을 통한 놀라운 구원의 계획을 실현해 주시어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역사하심을 눈으로 보면서도 믿지 못하여 그저 놀랍게 여기기만 한 사람들의 모습 앞에 저희의 모습을 돌아봅니다.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믿음과 환희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였던 부끄러운 모습을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코로나19로 인하여 신음하고 있는 모든 이들을 불쌍히 여기사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내려 주시옵소서. 마리아와 같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어 늘 우리의 삶 속에서 힘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읊조리며 살아가기를 다짐합니다. 자기를 부인하며 낮아짐과 섬김의 모습을 통하여 주님의 모습을 닮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위한 질문
1. 아기 예수님을 구유에 누일 수밖에 없었던 요셉과 마리아의 마음 생각해 봅시다.
2. 하나님의 천사를 대면한 목자들은 무서워하였으나, 이내 행동으로 옮깁니다. 말씀으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대면할 때 나는 어떤 마음이 들었습니까? 생각으로 끝나지는 않았습니까?
3. 왜 아기 예수님의 나심이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인지 정리해 봅시다
4. 아기 예수님의 나심이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이고,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인지 숙고해 봅시다.


(작성: 김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