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말라기 3:1-18
찬송가 290장 ‘우리는 주님을 늘 배반하나’



주의 사자를 보내심(1-6절)
유다 백성들이 바빌론 포로에서 돌아와서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하여 성전을 재건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성벽은 여전히 허물어진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전이 재건되고, 약 70년 만에 느헤미야를 중심으로 하여 성벽도 재건했습니다. 하지만 백성들의 삶과 신앙은 전혀 재건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포로에서 돌아온 지 100년도 넘게 지났지만 전혀 새로워지지 않았습니다. 그 때에 나타난 선지자가 말라기였습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당시의 제사장들이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섬기지 않으므로, 하나님의 이름에 먹칠을 하고, 제물로 드리는 짐승은 온전한 것이어야 함에도,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서 성전에서 파는 온전하지 못한 짐승도 받아주며, 하나님의 언약을 깨뜨리는 삶을 사는 것을 보고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강하게 질책했습니다.
또 당시 백성들의 삶과 신앙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자기 형제에게 거짓을 행하고, 이방신의 딸과 결혼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방신의 딸과 결혼’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가치관이 아니라 우상의 가치관을 따라서 살았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괴롭게 하고도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괴롭게 해 드렸느냐며 발뺌만 했습니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오늘 본문은 끝까지 자기 백성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을 진하게 보여줍니다. 1-6절은 주의 사자가 와서 주의 백성을 연단하시고 공의롭게 행하실 것에 대해 증거합니다.

(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두 사자’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내 사자’와 ‘언약의 사자’입니다.
‘내 사자’가 히브리어로 ‘말라키’인데, 1:1의 ‘말라키’와 동일한 표현입니다. 1:1절은 고유명사로 번역하여 소리 나는 대로 ‘말라기’라고 했고, 본문은 보통명사로 번역하여 ‘내 사자’라고 했습니다.
내 사자가 하는 일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 표현에서 ‘내 사자’로 성취된 인물이 ‘세례자 요한’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역할이 주님께서 오시는 길을 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대통령께서 한 일반 식당이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신다고 할 때에, 그냥 가서 드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전에 국가원수급의 인물이 레스토랑에서 식사가 있을 때, 그 레스토랑에 2주 전부터 매일 경호원들이 찾아와서 모든 것을 샅샅이 점검하고 준비하더라고 하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한 끼의 식사를 위해서도 그렇게 준비를 철저하게 합니다.
고대에는 지금처럼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왕의 행차를 앞두고는 수개월 전부터, 어떤 때는 수년 전부터 왕이 가실 길을 준비했습니다.

그러면 ‘언약의 사자’가 임하신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분은 ‘너희가 구하는 바’가 되시고, ‘너희가 사모하는바’가 되신다고 합니다. 이 언약의 사자가 오시면 모든 것이 해결되고 풀리게 된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 언약의 사자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이 땅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뜻합니다.

(2-3) 그가 임하시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가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하게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하게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공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바칠 것이라

언약의 사자로 오시는 메시아께서 무슨 일을 하실 지를 비유적 표현으로 묘사합니다. 금을 연단하는 사람의 불과 표백하는 사람의 잿물에 비유합니다.
광산에서 금과 은을 캐내었다고 해도 100% 금과 은만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온갖 불순물이 함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녹이면, 거기에서 금과 은만을 추출해 낼 수 있습니다.
또 옷에 얼룩이 묻으면, 물로 빨았다고 해서 얼룩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양잿물에 푹 삶아서 방망이로 두드리면, 얼룩이 빠집니다.
언약의 사자는 금과 은을 제련하듯, 자기 백성에게서 불순물을 제거하고, 잿물로 얼룩을 제거하듯, 오염된 자기 백성을 정화하신다고 하십니다.

하지만 심판할 사람들에 대해서도 말씀하십니다.
(5) 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 점치는 자에게와 간음하는 자에게와 거짓 맹세하는 자에게와 품꾼의 삯에 대하여 억울하게 하며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나그네를 억울하게 하며 나를 경외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속히 증언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점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신접한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을 더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무겁고 영적이지만, 신접한 사람의 말은 가볍고, 세속적입니다. 그래서 더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간음하는 자’는 자신의 욕망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우위에 두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쾌락을 목적삼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거짓 맹세하는 자’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자신의 목적달성을 위해서 진실을 왜곡하는 사람입니다.
‘품꾼의 삯에 대하여 억울하게 하며,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나그네를 억울하게 하는 자’는 자신의 이익이 최고의 목적으로 삼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가진 소유에 다른 사람의 몫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 모든 악한 일을 저지르는 사람의 공통점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곳에는 모든 것이 합리화가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고 하십니다.


십일조를 도둑질 함(7-12절)
7-12절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늘 지키지 않았던 십일조와 헌물 규례 위반에 대해서 지적합니다.

(7)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조상들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는도다

하나님의 말씀과 유다 백성들의 반응이 첨예하게 대립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돌아오라”라고 말씀하시고, 유다 백성들은 “우리가 떠난 적이 없는데 어떻게 돌아갑니까?”라고 반문합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포로가 되기 전에는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예배)를 그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을 떠난 적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신앙과 삶은 하나님의 규례(말씀)을 떠난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떠남은 ‘급성 떠남’이 아니라 ‘만성 떠남’이었습니다. 그래서 떠나 있어도 떠나 있었던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도 제대로 드리지 않았습니다.
(8-9)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유다를 지탱하는 두 영적인 기둥은 선지자와 제사장이었습니다. 선지자직이 하나님의 특별한 간섭하심이라면, 제사장직은 일상적인 간섭하심이었습니다. 제사 제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이 교감을 했습니다. 그 중간에 매개체 역할을 하는 사람이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사장들이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그 결과로 제사 제도가 무너지게 된 것입니다.
첫 십일조는 아브라함이 사병 318명으로 그돌라오멜과 함께 한 왕들의 연합군을 물리치고 롯을 구하고 돌아오면서, 바쳤습니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을 이긴 것입니다. 그래서 승리가 자신의 능력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고백하며 드렸습니다. 야곱도 밧단아람으로 도망가다가 하나님을 만나고, 자신을 무사히 돌아오게 하시면, 10분의 1을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힘으로는 무사히 돌아올 수 없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자신을 책임져 주셔야 온전하게 돌아오는 것이 가능하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십일조와 헌물, 헌금을 드림은 내가 살아가는 힘이 나로 말미암지 않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습니다의 고백입니다. 그래서 유다 백성들이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지 않음은, 자신들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살지 않고, 자신들의 능력으로 살겠다는 고집과도 같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 했다고 말씀하십니다.

(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하나님께서 재물이 탐나시고, 짐승과 곡식이 탐나셔서 십일조와 헌물을 바치라고 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을 바침이 그들에게 더 큰 복이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토지소산에 결실이 있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탐스럽게 열림은 하나님께서 메뚜기를 막아주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막아 주시 않으시면 아무 것도 결실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 누리고 있는 것은 모두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중심으로 인정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과 누리는 것의 청지기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를 대적함과 경외함(13-18절)
13-18절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불평한 죄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 내리는 복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13-14)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완악한 말로 나를 대적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만군의 여호와 앞에서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

‘도둑이 도리어 몽둥이를 든다’라는 뜻의 ‘적반하장(賊反荷杖)’이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유다 백성들은 하지 말아야 될 말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시게 했습니다. 처음에는 심령이 살아 있어서 그것을 아주 부끄럽게 여겼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양심이 굳어서 우리가 언제 그랬느냐며 화를 냅니다.
화단이 가장 망쳐진 상태는 땅이 완전히 굳어 있어서, 아무 것도 심을 수 없는 것입니다. 양심이 굳어지는 것은 하나님을 외면하고 있고, 하나님께 외면당하고 있는 것의 증거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막이 내립니다.
(16-18)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나는 내가 정한 날에 그들을 나의 특별한 소유로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 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그 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을 분별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

하나님께 반항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로 삼아주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고대의 왕들은 자신이 가장 아끼는 보물을 한 곳에 모아 놓고, 마음이 힘들 때 거기에 들어가서 그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을 그런 보물과 같은 존재로 삼아주시겠다고 하십니다.

말라기는 구약성경의 마지막 책입니다. 이 이후로 400년 동안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보내어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에서 우리가 확인하게 되는 거대한 두 물줄기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을 중심으로 존중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은총은 누리려는 이율배반적인 인간의 물줄기와 또 하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백성에게 인애와 긍휼을 베푸시고, 때로는 회초리를 들어서라도 바로 세우시려고 하시는 사랑이 가득한 하나님의 물줄기입니다. 이 두 물줄기가 거칠게 흘러 내려왔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물줄기가 더 크고 강하기에 세속적인 인간의 물줄기를 덮습니다. 그래서 ‘언약의 사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그 은총의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오늘 하루도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주님 안에서 함께 지어져가며, 하나님께로 돌아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시며 사시는 한 날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기 도
하나님 아버지!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을 괴롭게 하고도 괴롭게 하지 않았다고 몽니를 부리고, 하나님을 떠나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다고 고집을 부리며,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고서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모르쇠로 일관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내 사자’를 보내 주실 것이고, ‘언약의 사자’가 임하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해 주셔서 금과 은을 제련하듯이 정화하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수전노 영감과 같으신 분이 아니라,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주시는 분이신 것을 확인했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그 하나님께로 돌아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도 그 은총 속에 살아감으로 우리가 더욱 새로워지는 한 날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하나님께서는 ‘내 사자’와 ‘언약의 사자’를 보내신다고 하셨습니다. 당신이 언약의 사자(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 만난 ‘내 사자(세례자 요한)’와 같은 분들은 누구였습니까? 그들은 어떤 역할을 해 주셨습니까?
2.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에게 돌아오라고 할 때에, 그들은 “우리가 (떠난 적이 없는데) 어떻게 돌아갑니까?”라고 반문했습니다. 당신의 삶에서 표면적으로는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는데, 실제로는 떠나 있었던 때는 언제였습니까? 그 때 어떻게 돌아가게 되었습니까?
3. 당신의 지난 삶에서 당신이 살았던 삶보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더 많이 주신 복은 무엇입니까?
4. 오늘도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며, 주님 안에서 함께 지어져가는 삶을 살기 위해 무엇을 결단하시겠습니까?


(작성 : 정한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