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에스라 4장 1-24절
찬송가 458장 ‘너희 마음에 슬픔이 가득할 때’


수십 년간을 보냈던 바벨론에서의 삶을 청산하고 그곳을 떠나온 사람들은 예루살렘에서 모여 감격적인 초막절 절기를 지키고, 믿음과 삶의 회복을 위해 성전건축을 감동적으로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끝까지 순조롭게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성전은 상당기간 지어지지 못하다가 약 20년 후에 완공되었습니다. 성전이 지어지지 못하도록 어떤 방해가 있었는지를 오늘 본문이 잘 설명해 줍니다. 본문 1-2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사로잡혔던 자들의 자손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한다 함을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이 듣고 스룹바벨과 족장들에게 나아와 이르되 우리도 너희와 함께 건축하게 하라 우리도 너희 같이 너희 하나님을 찾노라 앗수르왕 에살핫돈이 우리를 이리로 오게 한 날부터 우리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노라 하니

‘유다와 베냐민’은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다가 돌아온 사람들 전체를 가리킵니다. 돌아온 사람들의 다수가 유다와 베냐민 지파 사람들이었고, 그들은 예루살렘을 비롯한 남유다지역에 흩어져 살았기 때문에 그렇게 불렸습니다.
그리고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은 구체적으로 ‘사마리아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솔로몬왕 이후에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열되어 내려오다가, B.C. 722년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아시리아)에 의해 먼저 멸망당했습니다. 앗수르의 에살핫돈왕은 북이스라엘 사람들을 포로로 앗수르 땅으로 끌고 가는 대신 앗수르 지역의 ‘바벨론’, ‘구다’, ‘아와’, 그리고 ‘하맛’과 ‘스발와임’ 등지에서 사람들을 이주시켜 사마리아에 정착하게 했습니다. 그로 인해서 사마리아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혼혈이 되었고, 이방에서 온 사람들의 종교도 함께 수용하게 되어서 여호와 하나님도 섬기고 이방신들도 섬기는 혼합주의적인 신앙의 모습을 갖게 되었습니다.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예수아를 중심으로 한 사람들이 성전을 다시 지으려고 하자, 그 소식을 듣고서 사마리아사람들이 찾아와 자신들도 그 일에 동참하게 해 달라 요구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포로에서 돌아온 사람들이 감격적인 초막절 절기 지킨 것과 성전을 건축하는 일을 시작한 것에 자신들도 동참을 요청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들의 요구에 스룹바벨과 예수아를 비롯한 지도자들은 한마디로 답변했습니다. “NO!!!”
풀어서 말씀드리면, “성전을 건축하는 것이 당신들과는 관계가 없고, 오로지 우리가 할 일입니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망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국방력이 약하거나, 경제력이 모자랐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남북이 모두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바알과 아세라를 비롯한 가나안의 이방신들도 함께 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의 잘못됨에 대해서 바벨론 강가에서 강제노역을 당하며, 깊이 참회하고, 참 많이 울었었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우상숭배를 하는 일은 하지 말자고 결심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여호와 하나님과 가나안 신들을 함께 섬기는 사람들이 와서 성전건축하는 일을 함께 하자고 하니까, 거절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 때에 사마리아 사람들이 보인 반응을 4-5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이로부터 그 땅 백성이 유다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여 그 건축을 방해하되 바사 왕 고레스의 시대부터 바사 왕 다리오가 즉위할 때까지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어 그 계획을 막았으며

이 때로부터 그들은 성전 건축을 훼방하기 시작했습니다. 훼방의 방법이 3가지였는데, 유다 백성의 손을 ‘약하게’하였고, 건축을 ‘방해했’고, 뇌물로 계획을 ‘막았’습니다. ‘약하게하다’는 ‘심리적으로 불안감을 갖게 하여 낙심하게 했다’는 의미이고, ‘방해하다’는 ‘일이 진척되지 못하도록 실제적으로 저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막다’는 ‘실패하게 하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도 올바른 삶을 향해 떠나려고 하면 떠나려고 하면, 악한 세력은 언제나 우리로 하여금 약하게 만들려고 하고, 방해공작을 벌이고, 길을 막으려고 합니다.

성전 건축을 방해하는 일이 언제까지 계속되었는지 오늘 본문 마지막 절인 24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이에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성전 공사가 바사 왕 다리오 제이년까지 중단되니라

시간순서상으로 5절에서 24절로 이어지는 것이 적절합니다. 성전 건축을 방해하는 일은 ‘바사 왕 고레스 때’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 때가 고레스의 즉위 4년인 주전 536년경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성전건축이 중단된 것은 다리오왕 제2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그 때가 약 주전 520년경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감격적으로 시작된 성전 건축이 주전 536-520년까지, 약 16년 동안 기초만 놓은 채 미완성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6-23절은 성전건축과는 상관이 없고, 사실은 성벽재건과 관련이 있는 내용입니다.
6절의 아하수에로(역사적 이름으로는 ‘크세르크세스’)왕은 왕비 에스더의 남편이었던 페르시아의 왕입니다. 성전건축을 하려는 상황에서 약 60년 전도 후의 일입니다.
그리고 7절, 11절, 23절 등에는 아닥사스다왕은 느헤미야에게 성벽재건을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보내주었던 페르시아의 왕입니다. 성전건축을 하려는 상황에서 약 90년 정도 후의 일입니다.
즉 아하수에로왕과 아닥사스다왕은 성전건축보다 성벽재건과 관련이 있는 페르시아아의 왕입니다.
에스라가 이 성경을 기록하면서 성전건축을 하는데 방해받은 일을 이야기하다가 훨씬 후대에 있은 사건인 성벽재건을 하는데 방해 받은 일을 이야기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하려는데 반대자들은 언제나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 여러 시대의 이야기를 한 곳에 모아서 기록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반대자들이 아닥사스다왕에게 올린 상소가 이러합니다. 11-16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아닥사스다왕에게 올린 그 글의 초본은 이러하니 강 건너편에 있는 신하들은 왕에게 아뢰나이다 당신에게서 우리에게로 올라온 유다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이 패역하고 악한 성읍을 건축하는데 이미 그 기초를 수축하고 성곽을 건축하오니 이제 왕은 아시옵소서 만일 이 성읍을 건축하고 그 성곽을 완공하면 저 무리가 다시는 조공과 관세와 통행세를 바치지 아니하리니 결국 왕들에게 손해가 되리이다 우리가 이제 왕궁의 소금을 먹으므로 왕이 수치 당함을 차마 보지 못하여 사람을 보내어 왕에게 아뢰오니 왕은 조상들의 사기를 살펴보시면 그 사기에서 이 성읍은 패역한 성읍이라 예로부터 그 중에서 항상 반역하는 일을 행하여 왕들과 각 도에 손해가 된 것을 보시고 아실지라 이 성읍이 무너짐도 이 때문이니이다 이제 감히 왕에게 아뢰오니 이 성읍이 중건되어 성곽이 준공되면 이로 말미암아 왕의 강 건너편 영지가 없어지리이다 하였더라

페르시아의 아닥사스다왕에게 상소를 올린 사람들은 자신들을 ‘신하’라고 표현하는데, 문자적인 뜻은 ‘노예’, ‘종’입니다. 즉 자신들은 아닥사스다왕의 노예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포로에서 돌아온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려고 하는데, 그들은 그 ‘예루살렘’을 ‘패역하고 악한 성읍_범죄와 반역을 일삼던 악한 도시’라고 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벽을 완성하고 나면 “저 무리는 다시는 조공과 관세와 통행세를 바치지 아니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악의적인 추측입니다. 사실 그들에게는 온전한 독립을 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조상들이 남긴 기록들을 살펴보면 알겠지만, 예루살렘은 늘 반역을 일삼던 곳이라 이곳을 멸망시켰는데, 성벽이 재건되고 나면 다시 그 일이 반복되어 이 지역을 잃게 될 것"이라고 악의적인 글을 올렸습니다. 그들은 나라가 독립을 하는 것보다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는 것이 훨씬 더 낫고, 그 영향력 아래에서 페르시아의 공무원으로 편안한 생활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방해들이 성전건축 때와 예루살렘 성벽 재건 때에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지지를 해 주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행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언제나 박수를 쳐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몸_전 인격을 의미’이 성전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무너진 내 삶의 성전을 새롭게 세우고,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려고 하면, 주변 사람들이 지지해 주지 않고, 박수를 쳐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 때에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께 우리 삶의 주파수를 맞추고 나아가십시다.

지난 주일에 받은 말씀으로 표현하면,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예수아를 비롯한 성전을 다시 건축하려는 사람들은 과거에 우상숭배에 머물러 진리를 향해 떠나지 못했던 삶을 참회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생명의 길로 떠나려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방백 르훔과 서기관 심새를 비롯하여 성전건축을 반대하려는 사람들은 목전의 이익에 눈이 멀어서 순리를 거스르며 인생을 도박처럼 탕진하고 있는 사람들과도 같습니다. 그 때로부터 지금까지 약 2,500년이 지났습니다. 지난 2,500년 동안 그리고 앞으로 주님 오실 때까지 스룹바벨과 예수아를 비롯한 성전을 지으려고 했던 사람들은 모든 그리스도인으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순리(順理)의 사람으로 기억되었고 앞으로도 기억될 것입니다. 그리고 르훔과 심새를 비롯한 성전건축을 반대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역리(逆理)의 사람으로 기억되었고, 앞으로도 그렇게 기억될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순리의 사람이 되십시다. 혹 우리가 진리의 삶을 사는 것을 곱지 않은 눈으로 쳐다보고, 오해를 받게 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마음을 정성을 다하여 심어주신 곳에서 어제를 떠나는 삶을 지속적으로 살아가면 우리 삶의 성전은 날마다 굳건하게 세워져 갈 것입니다. 오늘도 그런 은총 속에 살아가시는 한 날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기 도
하나님 아버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가, 그 곳에서 강제노역을 당함은 물론, 나라 없는 백성으로, 하나님을 제대로 섬길 수 없는 영적으로 서글픈 삶을 참 오랫동안 살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기적같은 은총으로 말미암아 다시 고국으로 돌아와 초막절 절기를 지키고, 성전까지 지어야 되겠다고 결심했지만, 반대자들을 만나서 또 난관을 봉착했음을 오늘 말씀을 통해서 봅니다.
하나님 아버지, 혹 우리더 하나님을 바르게, 제대로, 온전히 섬기고, 우리 삶을 성전으로 가꾸어가려고 할 때에 혹 우리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거나, 우리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사람을 만나게 될지라도 실망하거나 낙심하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말씀의 순리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하시고, 어제를 떠나고 병든 이기심을 떠나는 날이 됨으로 진정으로 새날로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심어주신 곳에서 진리의 꽃을 피우고 생명의 열매를 맺는 은총의 하루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오늘 본문의 말씀을 찬찬히 다시 읽고 그 내용을 정리해 보십시오.
2. 주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의 삶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거나 곱지 않은 눈으로 바라본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3. 당신이 진리의 삶을 살아가려는데 오해를 받거나 어려운 일을 겪으신 적이 있다면 그 때가 언제였습니까? 그 때에 어떻게 이겨내셨습니까?
4. 하나님께서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심어주신 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순리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무엇을 결단하시겠습니까?


(작성 : 정한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