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출애굽기 32장 1-14절
찬송가 285장 ‘주의 말씀 받은 그날’

출애굽기 32장 1-14절은 모세가 산 올라간 이후 시간이 지연되자, 불안해진 백성들이 아론과 함께 금송아지를 만든 사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1절)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백성이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백성들의 허무맹랑한 요청에 아론은 다음과 같이 답합니다.

(2절) “아론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의 아내와 자녀의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내게로 가져오라”

모세가 돌아오지 않아 불안과 초조함에 빠져 있던 상황에서 백성들이 불안감을 호소하자 아론은 금을 모아 송아지 형상을 만들어 눈에 보이는 우상을 만들게 합니다. 아론은 눈에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형상화하여 눈에 보이는 하나님의 이미지를 만든 것입니다. 이는 분명 십계명에서 절대로 하지 말라 명하신 하나님의 명령에 반대되는 일입니다.

(출20:4-5절)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 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론의 주도하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그 앞에 제단을 쌓고, 그 다음날을 여호와의 절일로 지정합니다. 그리고 다음날 백성들은 일찍 일어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고 다 같이 축제를 벌입니다.

(7-8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려가라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부패하였도다
그들이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길을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그것을 예배하며 그것에게 제물을 드리며 말하기를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 하였도다”

불안 속에 있던 백성들의 요청으로 아론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어 위로하려 했습니다. 성일을 정하고, 제사를 드리고 백성들과 축제를 버리며 위로합니다. 동시에 모세는 산에 올라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있습니다. 모세는 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모릅니다. 그러나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동시에 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모세에게 알려주신 것입니다.

“금송아지를 만들어 그것에게 예배하고 금송아지가 너희의 신이라”

더 끔찍한 사실은, 그 주동을 다른 이도 아닌 아론이 스스로 제사장이 되어 우상숭배를 주도했습니다. 얼마나 놀랄 일이었겠습니까?

이어 분노하신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9-10절)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뻣뻣한 백성이로다
그런즉 내가 하는 대로 두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여기서 주목할 필요가 있는 표현이 있다면, 7절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내 백성’이라고 부르시던 하나님께서 ‘네 백성’이라 부르셨습니다. 더 이상 ‘나의 백성’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9절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 백성’이라 부르십니다. 3인칭 화 시켜 버린 것입니다. 거리를 두신 표현입니다. 더 이상 나의 백성이 아니라는 표현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 “목이 뻣뻣한 백성이로다”라고 하십니다. 이는 주인의 말을 듣지 않고 고집 피우는 동물에게 쓰는 표현입니다. 고집으로 인해 불통하게 된 하나님과 이스라엘백성의 관계를 너무나도 분명하게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에게 “내가 하는 대로 두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겠다” 말씀하셨습니다. “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하겠다” 말씀 하셨습니다. 더 이상 이 고집불통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분명한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러자 모세는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11-13절) “모세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애굽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가 자기의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는 악한 의도로 인도해 내었다고 말하게 하시려 하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그들을 위하여 주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의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정리해보면,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살리기 위해 하나님께 3가지 사실을 확인 시켜 드리며, 중보 하는 마음으로 간구합니다.
첫째,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하신 ’주의 백성‘입니다.
둘째,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선한 의도로 출애굽한 ’주의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애굽 사람들에게 비웃음거리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셋째로, 이스라엘 백성은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자손‘입니다.
이 모두 하나님께서 행하신 사실이었습니다. 그로인해 ’나의 백성‘에서 ’너의 백성‘으로, ’너의 백성‘에서 ’이 백성‘으로 멀어져 버리고 깨져버린 관계에서, 모세의 중보기도로 인해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셨습니다.

(14절)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오늘 본문을 통해 1가지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를 만든 것에 왜 그토록 분노하셨던 것일까?”

이는 십계명중 제 2계명을 어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① 너를 위해 새긴 우상도 만들지 말고
② 피존물 중 그 어떤 것도 형상을 만들지 말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출애굽기 20:5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스스로를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라고 소개하셨습니다. 성경에 약 4차례 나오는 이 표현은 모두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보다 앞선 무언가가 있을 때 하나님의 성품을 소개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여호수아24:19-20)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여호와를 능히 섬기지 못할 것은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시오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 너희의 잘못과 죄들을 사하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만일 너희가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 신들을 섬기면 너희에게 복을 내리신 후에라도 돌이켜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시고 너희를 멸하시리라 하니”


여호수아가 약속의 땅에 들어와 모든 지파를 ‘세겜’에 모으고 마지막으로 한 설교였습니다. 하나님을 거룩하신 분으로 질투하시는 분으로 소개한 것입니다. 여기서 ‘질투하다’는 의미는 깊은 관심과 뜨거운 열정을 표현 한 것입니다. 불의한 질투가 아닙니다. 한번 사랑하시면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열정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진지하게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를 위해 새긴 우상’은 무엇인가?
‘무엇이 우리의 금송아지’인가?

한번 사랑하시면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 그 사랑을 식게 하는 ‘나의 금송아지’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물어야 합니다.

불완전한 인간은 예외 없이 모두 나만의 금송아지를 붙들고 살아가고자 합니다.
그러나 잊지맙시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나의 금송아지’를 단호히 부서 버리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욕망과 미신의 미몽’에서 벗어나 모세처럼 존귀한 인생, 말씀으로 다듬어져 가는 인생으로 살아가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금송아지 붙들고 살아가는 이들을 위해’ 중보 하는 인생으로 살아가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불안과 욕망만을 호소하는 기도에서 도리어 그들을 위해 중보 하는 모세와 같은 인생을 살아가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로 하여금 모세처럼 여전히 나의 ‘금송아지’를 ‘하나님’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그들을 위해 ‘중보기도’하게 하실 것을 믿고,
오늘 하루도 ‘말씀의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다짐하는 100주년기념교회 교우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질투하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우리의 마음은 여전히 나를 향해만 있습니다.
우리의 시선은, 우리의 발걸음은, 우리의 두 손은 모두 욕망과 미신의 미몽으로만 향하고 있습니다.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오늘날 대한민국도 한국교회도 하나님께서는 질투하시기 까지 사랑하시는데 자신의 금송아지가 하나님인 것처럼 믿고 예배하고 살아가느라 하나님의 진노가 코앞까지 와있음도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구하고 바라옵기는, 대한민국 국정에서도, 미국 대통령 선거를 통해서도 밝혀졌듯이,
감춰졌던 ‘욕망과 미신의 미몽들을’ 드러나게 하신 것이 절망과 파멸의 시초가 아니라,
말씀의 사람으로, 말씀의 나라로 세우시기 위한 질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임을 믿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사도바울처럼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택하신 ‘나의 그릇’이라 하신 사명으로 인해 끝까지 말씀에 순종하였던 것처럼,
금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님으로 여기고 예배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기도했던 모세처럼, 어떤 풍파가 닥친다 하여도, 사명의 자리를 지키고 기도하는 100주년기념교회 모든 교우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아론은 어떠한 마음으로 금송아지를 만들었던 것일까요?
2. 하나님으로부터 금송아지를 만든 이스라엘 백성의 진멸 선고를 들은 모세는 어떠한 마음이 들었을까요?
3. 모세가 그토록 목이 뻣뻣한 백성들을 위해 중보기도할 수 있었던 동기는 무엇이었을까요?
4. 오늘날 나의 금송아지는 무엇일까요? 나의 보이는 금송아지와 보이지 않는 금송아지가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작성: 박창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