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요한복음 18:1-14
찬송가 461장 ‘십자가를 질 수 있나'

요한복음 17장에서 제자들과 앞으로 믿게될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신 예수님은 기도를 마치시고 나서 예루살렘 동편에 위치한 기드론 시내를 건너 가셨습니다. 18장 1절입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건너편으로 나가시니 그 곳에 동산이 있는데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시니라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나아가신 동산은 겟세마네 동산으로(마26:36,막14:32) 예수님과 제자들이 자주 기도하러 가던 곳이었습니다. 성전 경비병들과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의 하수인들이 예수의 제자였던 가롯 유다를 앞세워 그곳으로 들이 닥칩니다. 그 상황을 3절이 설명합니다. 유다가 군대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서 얻은 아랫사람들을 데리고 등과 횃불과 무기를 가지고 그리로 오는지라
군사들의 무리가 자기를 찾으러 온 것은 그것이 자신을 십자가에 처형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이 시작이었습니다. 이어서 수모와 모욕, 재판 그리고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예수님은 다 알고 계셨습니다.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질 것을 이미 아신 예수님의 행동을 오늘 본문 4절이 이렇게 기록합니다. 예수께서 그 당할 일을 다 아시고 나아가 이르시되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제자들과 함께 있던 예수님은 자신을 잡으러 온 군인들을 보고 앞으로 나아가 가장 먼저 대면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피하여 계시다가 군인들에 붙잡혀 끌려 가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자들보다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서 군인들을 만나셨고 그들과 직접 대화하셨습니다. 이것이 지금 눈앞에 닥친 위험을 대하는 예수님의 태도였습니다. 제자들의 무리 뒷편으로 뒷걸음치지도 않으셨고, 제자들속으로 숨어 자신의 신분을 감추지도 않으셨습니다. 앞으로 나아가 스스로 당당하게 묻고 또한 대답하셨습니다. 4-5절입니다. 예수께서 그 당할 일을 다 아시고 나아가 이르시되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대답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하시니라


1. 위험을 정면으로 마주하시는 예수님
예수님이 군인들의 무리를 피하지 않으신 것은 이것이 그가 반드시 걸어내야 할 길임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결코 피할 수 없는 일임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닥쳐오는 위험을 정면으로 대면하십니다. 전혀 회피하지 않으시고 부정하시도 않으십니다. 단순히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정도가 아니라 한걸음 앞으로 나가서 마주하십니다. 그들이 묻기도 전에 누구를 찾는가 먼저 물으시고 "내가 그니라" 자신의 신분을 밝히십니다. 이것이 죽음의 위험을 대하는 예수님의 태도입니다. 4절에 "당할 일을 다 아시고" 라는 문구에서 쓰인 단어 "당할" 의 헬라어 단어 "에르코메나"는 그 뜻이 오다, 가다, 나타나다 입니다. 그 단어의 원형이 "에르코마이"입니다. 그런데 "나아가 이르시되" 라는 다음 구절의 단어 "나아가"에서 다시 사용된 단어의 원형 또한 “에르코마이”입니다. "나아가" 라는 단어에서는 '앞으로' 라는 뜻의 전치사 "에크"가 첨부된 채로("엑셀덴") 말입니다."나아가"라는 헬라어 단어를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해 본다면 '앞으로 나아가 '입니다. 앞의 문장과 이어서 그 뜻을 살펴보면 그 "당할" 일 또는 "나아갈" 일을 다 아신 예수님이 앞으로 "나아가" 말씀하셨습니다. 똑같은 단어를 한 문장에서 두번이나 반복해서 사용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나아갈 길을 아셨기에 스스로 한 걸음 앞으로 나서신 것입니다.이렇듯 예수님은 수동적으로 잡혀 가신 것이 아닙니다. 그는 위험을 정면으로 마주하셨습니다. 오늘 이시대에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야 하는 주의 백성들이 어떠한 마음으로 일상의 삶을 살아가야 할 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우리에게 밀려올 위험과 고난을 절대로 수동적으로 피해서는 안됩니다. 주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려면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려면 위험을 정면으로 대면할 줄 알아야 합니다. 다가오는 풍랑을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정면으로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마주해야 합니다. 군중의 무리와 민회의 무리로서가 아니라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참된 엑클레시아의 일원으로 살아가기를 원한다면 예수님이 걸으신 것처럼, 우리에게 다가올 위험과 고난을 직시하고 앞으로 한걸음 나서 대면하여야 합니다. 고생을 마다해서는 안됩니다. 숨거나 회피하지 않는 주의 제자들이 오늘 이 시대에 예수의 제자들이요, 참된 엑클레시아의 사람입니다.

요즘 우리시대의 크리스쳔을 살펴보십시요. 조금만 힘든 일이 있으면 피하고 도망가버립니다. 부담 되는 일은 회피합니다. 부담없고 편리한 곳으로 몰려다니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조금만 고생스럽게 여겨지면 자신이 지켜야 할 자리를 지키지 않습니다. 한 걸음 앞으로 나서기는 커녕 뒷 걸음치고 도망하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참된 엑클레시아의 사람들은 다가올 고생을 알면서도, 맞게 될 어려움과 고난을 알면서도 당당하게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 그 모든 것을 묵묵히 이겨내는 소수의 사람들입니다. 고생과 역경을 무릎쓰고 그 모든 것을 견뎌낼 각오로 세상을 향하여 '너희들이 찾는 자가 바로 나다' 라고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그들이 가는 길에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는(마7:25) 믿음의 사람들이 바로 이런 사람들입니다.위험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시는 예수님의 위엄앞에 사람들이 땅에 엎드러집니다(6절). 우리에게 달려드는 위험과 위기를 피하거나 숨지않고 정면으로 대하는 믿음의 사람들앞에 세상사람들이 오히려 흔들릴 것입니다. 그 위엄앞에 엎드려지게 됩니다.


2. 제자들을 끝까지 보호하시는 예수님.
스스로 앞으로 나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드러내시고 위험을 정면으로 마주하신 예수님은 이제 군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8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에게 내가 그니라 하였으니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이 가는것은 용납하라 하시니
예수님 자신은 죽음의 길을 가게 되더라고 제자들은 끝까지 보호하십니다. "이 사람들이 가는 것은 용납하라" 말씀하십니다. 본인은 체포되더라도 제자들은 보호하시려는 주님의 마음입니다. 이것은 17장에서 예수님이 하셨던 기도의 내용이기도 했습니다(17:12) 비록 예수님이 붙잡혀가셔서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신 뒤 제자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졌지만 그들을 끝까지 보호하신 부활하신 예수님을 통해 그들은 다시 한번 제자로서의 새 삶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자신이 지켜주고 보호해주고 사랑을 베풀어준 사람이 그 은혜를 모르고 세번씩이나 예수를 부인한다고 할지라도 그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는 것 이것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의 삶입니다.
요13:1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제자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고 보호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은 한번 품으면 끝까지 품는 사랑입니다. 끝까지 품는 사랑은 위험도 대면하게 하고 죽음도 감수하게 합니다. 끝까지 품는 사랑은 위험앞에서 죽을 각오로 자신을 던져 사랑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입니다. 우리 또한 우리가 당하는 위험과 위기앞에서 끝까지 품는 사랑으로 자신을 던져 위험을 대면하는 참된 그리스도인, 참된 엑클레시아로 오늘 하루를 살아가십시다.


기도
하나님, 오늘 우리가 대면하는 위험과 위기, 역경과 고난의 폭풍우 앞에서 내 자신을 던질수 있는 참 사랑의 사람이 되게 해 주십시요. 주님을 향한 사랑으로, 그리고 주님이 내 곁에 허락하신 영혼을 향한 사랑으로 위험을 정면으로 직시할 줄 아는 용기를 주십시요. 오늘 하루 회피하지 않고 거룩한 주님의 사랑으로 하루의 삶을 직시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위한 질문
1.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11절)라고 하시며 십자가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렇다면 내 일생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무엇입니까?
2.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깨닫을 때 그 계획에 기꺼이 순종하시겠습니까?
3.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호하시고 끝까지 사랑하셨는데 그러면 내가 보호하고 끝까지 사랑해야 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4. 오늘 하루라는 시간내에 내 주위에 있는 사랑해야 할 사람에게 사랑을 구체적으로 표현해보십시다.

(작성: 김신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