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시편 42편 1-11절
찬송가 488장 ‘이 몸의 소망 무언가’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갈망함(1-5)
시편 42편은 시편 5권중에서 2권의 첫 시편입니다. 2권은 전반적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과 돌보심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마소라 히브리어 성서에서는 42편과 43편이 하나로 묶여서 발견되기도 하였고 본문에도 42편 5절과 11절이 43편의 5절에 반복되어 나타난 것을 보면 두 시편이 하나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표제어를 보시면 ‘고라 자손의 마스길,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라고 되어 있습니다. 고라 자손은 민수기 16장에 모세와 아론을 거슬러 하나님 앞에 교만함으로 반역을 꾀하다 죽은 고라의 후손들입니다. 비록 그들의 조상인 고라는 반역으로 죽었지만 그 후손들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영광스러운 직분을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음의 박해자 사울을 복음의 전달자로 바꾸신 것처럼 반역의 아이콘이었던 고라의 후손들을 찬양의 도구로 삼아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보여주고 계십니다. 또한 시편 42편은 고난속에서 인생의 캄캄한 밤이 찾아올 때 하나님을 소망하라는 교훈을 주기 위해 기록한 마스길 곧 교훈의 시이며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입니다.

고난의 밤을 맞은 시편 기자는 자신의 마음 상태를 이야기합니다. 1-2절입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시편 기자는 극심한 갈증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 갈증이 얼마나 심하였던지 물이 없어 헐떡이며 죽어가는 사슴 같다고 합니다. 그 갈증은 무엇을 향한 갈증이었습니까? 바로 하나님을 향한 갈증이었습니다. 이 표현은 고난 속에서 세상의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찾는 시편 기자의 믿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시편 기자에게 찾아온 것은 자신이 그토록 찾고 있던 하나님의 응답이 아닌 사람들의 조롱소리였습니다. 3절입니다.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시편 기자가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라고 조롱했습니다. 이것은 자신의 고통을 비웃는 것뿐 아니라 자신이 섬기는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니가 믿는 하나님은 죽은 하나님이시냐? 니가 섬기는 하나님은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냐?’ 실제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고난이 다가오면 그 고난 자체의 아픔도 있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세상 사람들이 ‘니가 섬기는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왜 그런 힘든 일이 생겨?’라고 물어보는 질문과 조롱에 더 비참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것으로 인하여 시편의 기자는 입에 음식을 넘기지 못하고 마음이 상하여 주야로 흘리는 눈물만이 그의 음식이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사람들의 조롱 외에 시편 기자를 힘들게 한 것이 또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과거의 즐거운 기억'이었습니다. 4절입니다.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시편 기자는 절기를 지키는 무리들과 함께 기쁨과 감사의 노래를 부르며 하나님의 전으로 들어가던 과거의 영광을 떠올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전을 향하여 가던 그와 함께한 많은 사람들 속에는 큰 기쁨이 가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과거의 즐거웠던 기억이 현재의 비참함과 비교되어 그의 마음을 더욱 상하게 했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의 조롱과 과거와의 비교에서 오는 슬픔은 시편 기자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5절입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이것은 시편 기자가 자기 영혼에게 외치는 소리입니다.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마음속에 불청객처럼 낙심과 불안이 찾아왔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에 고난의 밤이 찾아오면 낙심하고 불안해합니다. 그렇다면 시편 기자는 어떻게 그 고난의 밤을 이겨냈을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소망한 것입니다.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낙담하고 불안해하는 자신의 영혼을 향하여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은 나타나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여기서 ‘도우심’이라는 의미의 히브리어는 ‘예수아’ 곧 구원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곤란 중에 건지시고 고난 속에서 피할 길을 내시는 구원자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파수꾼이 긴 밤을 견딜 수 있는 것은 동이 틀 것을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시편의 기자도 고난의 밤이 깊어가지만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그 소망으로 인하여 그 밤을 이겨내고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삶의 고난이 캄캄한 밤처럼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상황이고 또한 주위에 그것으로 인하여 수군대는 사람들이 있어 마음이 낙심되고 불안할 때에도 조용히 구원의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분을 소망할 때 우리는 고난의 밤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소망함(6-11)
계속해서 본문에 시편 기자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주를 기억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6절입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심이 되므로 내가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 산에서 주를 기억하나이다

요단 땅은 요단강 근처지역을 이야기하며 헤르몬은 이스라엘의 북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미살 산은 ‘작은 언덕’이라는 뜻으로 정확히 어떤 지역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은 이 세 곳이 예루살렘에서 떨어진 지역이라는 사실입니다. 시편 기자는 한 때 절기를 따라 즐겁게 찬양하며 예루살렘 성전에 갈 수 있었지만 현재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예루살렘을 갈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그래서 먼 곳에서 주를 기억하며 주의 성전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고난 속에서 주께 예배할 수도 없는 상황은 더 시편기자를 답답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시편 기자는 자신을 찾아온 고난을 폭포와 파도물결 같다고 고백합니다. 7절입니다.
주의 폭포 소리에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며 주의 모든 파도와 물결이 나를 휩쓸었나이다

‘폭포, 깊은 바다, 파도, 물결’ 이 단어들은 인간 스스로 이겨내거나 감당하기 힘든 고난을 빗대어 표현한 것입니다. 큰 고난들은 우리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성난 파도와도 같습니다. 우리가 그 속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고작 이리저리 밀려다니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시편 기자는 그 고난의 파도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도와 찬양으로 나아갑니다. 8-10절입니다.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의 인자하심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의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 내 반석이신 하나님께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나이까 하리로다 내 뼈를 찌르는 칼 같이 내 대적이 나를 비방하여 늘 내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도다

비록 그는 고난의 파도와 원수들의 압제와 비방을 멈추게 할 수는 없었지만 자신 안에 원통한 마음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으며 찬양과 기도로 나아갔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오늘 시편 기자와 같은 고난의 밤, 고난의 파도가 찾아 올 수 있습니다. 이미 찾아온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특히 가정에 이런 고난이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부부관계에 어려움이 생기기도 하고 부모와 자녀의 관계 속에서도 갈등의 골이 깊어지기도 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실망을 주고 고통을 줍니다. 어디서부터 바로 잡아야 할지 알 수 없는 엉킨 실타래 같은 관계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 우리의 가정들을 보면서 믿지 않는 사람들이 ‘너희 가정에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비방할 것만 같습니다. 한때 행복했던 시절, 단란한 가족의 모습을 떠올리며 눈물이 맺힐 때도 있을 것입니다. 다시 그날이 올 수 있을까 낙심되고 불안해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우리의 가정의 주인 되신 예수님이 계십니다. 우리의 가정과 자녀들을 내 욕심을 이루는 도구로서 이용하지 말고 주님의 손에 올려 드리십시다. 그럴 때 예수님께서 마치 귀신들려 희망 없어 보이는 아이를 고쳐주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나타나 도우심으로 가능성 없어 보이는 우리의 가정과 관계들을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가정은 믿음 없고 패역한 세대에 믿음과 순종의 본이 되는 가정이 될 것입니다. 아직도 마음이 낙심되고 두려우십니까? 11절 말씀을 기억 하십시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우리를 주님과 깊은 교제의 자리로 불러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의 인생의 여정을 따라 걷다보면 때로는 고난의 밤과 고통의 파도가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 힘으로 어찌할 수 없을 때가 많고 우리의 고난을 보며 원수들이 우리와 하나님의 이름을 비방하며 조롱할 때가 있습니다. 그 고난 속에서 우리의 중심을 붙드사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특히 우리의 가정들을 돌봐주셔서 가정에 찾아온 많은 어려움들을 기도로 주님 앞에 맡길 때 나타나 도우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오늘 본문에 고난을 만난 시편기자를 더욱 힘들게 했던 것들은 무엇이었는지 찾고 묵상하여 봅시다.
2. 최근에 내 삶에서 나 혼자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느꼈던 어려움이 있습니까? 있다면 무엇이며 그때 어떤 감정이 들었습니까?
3. 시편 기자가 낙심과 두려움 속에서도 하나님께 소망을 둘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묵상하여 봅시다.
4. 시편 기자가 사람들이 고난을 만난 자신을 조롱할 때 어떻게 그것을 이겨낼 수 있었는지 묵상하여 봅시다.

(작성: 강요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