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시편 30편 1-12절
찬송가 23장 '만 입이 내게 있으면'

표제어의 의미
시편 30편은 ‘다윗의 시, 곧 성전 낙성가’입니다. 표제어대로라면, 본 시편은 성전이 완공되어 하나님 앞에 봉헌하며 부른 찬송이라 추정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때에 성전을 짓고자 했지만, 열왕기상 5장5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너를 이어 네 자리에 오르게 할 네 아들, 즉 솔로몬이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는 역대상 22장에서 다윗이 장차 솔로몬이 지을 성전을 위해 많은 재료를 자신의 손으로 준비했던 것과 같이 언젠가 완공될 성전을 기대하며 쓴 ‘다윗의 시’라고 봐야합니다. 성전을 건축하고 싶었지만 하나님의 뜻 앞에 그럴 수 없었던 다윗이 마음으로 성전을 짓고 믿음의 눈으로 그 순간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찬송을 올려 드리는 ‘시’인 것입니다.

찬송의 이유이신 하나님(1-5절)
1-3절은 다윗이 하나님을 찬송하는 이유를 3가지로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첫 번째로 1절에서 하나님은 다윗을 끌어내어 원수들이 다윗의 처지를 보며 기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끌어낸다는 히브리어 동사 ‘달라’는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올리는 것을 묘사합니다. 깊은 우물 안에 있는 물은 스스로 우물 밖으로 나올 수 없습니다. 양동이 스스로 물을 길어 올릴 수도 없습니다. 누군가가 양동이를 사용하여 물을 길어 올릴 때에 비로소 물은 밖으로 나올 수 있습니다.

우리의 지난 삶을 반추해보면 때를 따라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했던 하나님의 은혜를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은혜가 없었다면 우리의 원수들은 좌절과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허우적대는 우리를 보며 비웃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당신의 힘으로 우리를 비웃음의 자리에서 끌어내어 주셨습니다. 고통의 자리에서, 아픔의 자리에서, 외로움의 자리에서, 답을 못 찾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자리에서, 다 소진된 인내심의 끝자리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끌어내어 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끌어내어 주는 은혜를 경험한 삶의 자리에 있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향한 찬송입니다.

두 번째로 2절에서 하나님은 다윗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그를 고쳐주셨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으로부터 고침을 받은 것이 신체적 질병인지, 영적 질병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다윗의 삶에 있는 어떤 연약함을 하나님이 고쳐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출애굽기 15장26절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는 어떤 연약함도, 어떤 질병도 치료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몸이든 마음이든 영적으로든 건강하지 않을 때에 최적의 방법으로 다시 건강을 되찾고자 합니다. 그런데 각자가 생각한 방법으로 건강을 회복했을 때 우리는 그 방법을 통하여 하나님이 나를 치료했다는 사실을 생각해내지 못합니다. 의사가 치료해 주었다고, 친구의 도움을 받았다고, 심지어 내가 말씀을 읽었고, 내가 기도해서 나았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를 참되게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주체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 앞에 모든 사람과 방법은 단지 치료하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치료하시는 은혜를 지금까지 입은 삶의 자리에 있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향한 찬송입니다.

세 번째로 3절에서 하나님은 다윗의 영혼을 스올에서 살리셨습니다. 스올은 죽은 자가 머무는 장소를 가리키는 구약의 일반적인 표현입니다. 스올은 하나님과의 단절, 생명으로부터의 단절을 의미합니다.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의 공격, 왕이 되려는 아들 압살롬의 반역 등 살아있음에도 죽음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스올을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스올의 자리에 있는 다윗을 살리셨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시고, 생명을 연장시켜주셨습니다.

궁극적으로 영원한 스올에 들어갈 것을 전제하며 살아야 할 다윗에게 영생을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의 영혼의 주인이 되어주셔서 그의 삶이 내세까지 지속되도록 은혜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살리시고 회복시키시는 은혜를 입은 삶의 자리에 있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향한 찬송입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다윗이 하나님을 찬송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문장의 동사 즉, 끌어내었다, 고치셨다, 살리셨다가 모두 과거형입니다. 다윗은 과거에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를 지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과거에 베풀어주신 은혜를 기억하며 지금 찬송하고 있습니다.

많은 경우에 있어 우리는 현재를 기준하여 감사하고 찬송합니다. 당장 내 눈앞에 찬송할 수 있는 이유나 경험이 있는 지를 찾습니다. 하지만 다윗의 시선은 현재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당장에는 찬송할 수 있는 이유나 경험이 없어도 마치 하박국 3장17절의 말씀처럼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다윗은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다윗은 과거에 자신의 삶에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의 신실함 안에서 찬송의 이유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신실하신 하나님, 언약의 하나님을 기억하며 함께 찬양하자고 주의 성도들에게 호소합니다.

물론 찬송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에 늘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5절입니다.

'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때로는 우리의 찬송을 적극적으로 막는 고난과 아픔이 있고, 눈물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잠깐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에게 노하실 수 있지만 결코 그것으로 끝내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지속되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마치 칠흑 같은 어둠도 아침이 오면 사라지듯이 하나님의 노염은 잠시 통과하는 터널일 뿐입니다. 터널을 지나면 눈앞에 하나님이 허락하신 기쁨의 대로가 새롭게 펼쳐질 것입니다. 그 때를 생각하면 당면해있는 하나님의 노염 중에도, 고난과 눈물 중에도 우리는 찬송의 고백을 올려드릴 수 있습니다.

징계를 통하여 겸손케 하시는 하나님(6-7절)
6-7절에 보면 다윗은 자신이 누리고 있는 형통함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았습니다. 심지어 그것이 영원히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특별히 어떠한 실수를 범하지 않는 한 자신이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이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고 확신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이 얼굴을 가리시자, 하나님의 임재를 거두시고 그 은혜를 그치시자 다윗은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철옹성과 같은 자신의 형통함이 한 순간에 무너짐을 경험했습니다. 은혜가 없는 우리의 삶에는 근심만 남습니다. 그제야 다윗은 자신이 누리는 모든 것의 원인이 하나님 때문이었음을 깨닫습니다.

우리의 삶을 형통하게 하고 풍성하게 하는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 은혜를 늘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의존성이 약화되면 덩달아 하나님 중심적 사고가 희미해지고 반대로 자기중심성은 강화됩니다. 은혜를 잊으면 하나님도 잊혀지고 남는 것은 ‘나’ 자신뿐이라는 말입니다.

부르짖으며 바라보게 하시는 하나님(8-10절)
8-10절에 보면 자만심과 자기만족에 휩싸여 살았던 다윗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간구합니다. 마찬가지로 물질, 자리, 권력, 사람, 경험, 배경 등을 우리 삶의 형통함의 원인으로 생각하여 그것을 놓지 못하는 우리 각자의 민낯을 확인할 때에 우리도 하나님 앞에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도와 달라고 부르짖으며 간구해야 합니다. 이와 같은 부르짖음과 간구는 하나님께 의존된 삶을 살겠다는 결심이요 스스로 나의 삶을 책임질 수 없다는 나의 연약함에 대한 인정이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나의 삶은 요란한 빈 수레와 같다는 고백입니다.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객관화한 다윗은 11-12절 말씀에서 현재 자신의 삶에 깊은 슬픔과 아픔이 있더라도 자신에게 춤을 허락하실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다윗은 베옷을 입을 수밖에 없는 처참한 상황과 처지에도 평안과 기쁨을 주실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다윗은 찬송할만한 이유와 조건을 갖추었을 때에 찬송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조건을 갖추지 못해도, 마땅한 이유가 없어도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그에게는 하나님이 전부였기 때문입니다. 현재 우리의 찬송의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전히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무엇 때문에 찬송하고 있다면, 이제는 우리의 심령에 하나님으로 만족하고 하나님으로 기뻐하며 하나님으로 찬송하는 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 오직 우리 눈에 우리 예수님, 우리 하나님만 보이는 은혜가 우리 삶의 구석구석에 베풀어지기를 기원합니다.

기도
사랑하는 주님 찬송할만한 이유와 조건을 갖추는 일에 애쓰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나의 감정과 처한 상황을 넘어 하나님으로 만족하고 하나님으로 기뻐하며 하나님으로 찬송하게 하여 주십시오. 우리 눈에 다른 것들은 작게 보이고 하나님은 크게 보이는 은혜가 있게 하여 주십시오. 오늘 한 날도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향한 찬양의 소리가 끊이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다윗이 하나님을 찬양했던 3가지 이유는 무엇입니까?

2.나의 지난 삶을 반추할 때에 기억나는 하나님의 은혜는 무엇입니까?

3.하나님이 다윗에게 당신의 얼굴을 가리신 이유와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4.다윗은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부르짖으며 간구했습니다. 나는 무엇을 위해 부르짖으며 간구하고 있습니까?

5.이유와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 때문에 찬송할 수 있겠습니까? 없다면 이유는 무엇입니까?

(작성: 유석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