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28(화) “요한계시록 1:1-8” / 작성: 김지현
[본문] 요한계시록 1:1-8
[찬송가] 183장 ‘빈들에 마른 풀같이’


요한계시록은 사도 요한이 밧모 섬에 유배되었을 때 주님께서 그에게 계시로 보여주신 일들을 쓴 편지입니다. 요한은 스스로를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자’로 표현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 믿음으로 살았고, 그분의 사랑 안에 거하기를 즐거워하였습니다. 요한은 초대교회 당시 네로의 그리스도인 박해에도, 또한 도미시안의 박해 가운데서도 신실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살아왔습니다. 그가 이 편지를 쓰고 있는 가운데 그리스도인들의 상황을 알고 있었고, 같은 상황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형편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계시를 통한 예언의 말씀이면서도 또한 동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을 향한 위로와 격려, 응원의 서신이기도 합니다.

요한계시록은 예수님의 1세대 제자들 이후로 신비로 덮여져 왔습니다. 그 이해의 간극이 크기 때문에 요한계시록에 대한 온갖 해석들이 시도되었고, 수많은 이단 교파들이 본문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며 말씀을 왜곡하는 일에 사용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이 비록 어려워 보이기는 하지만, 그 목적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능력, 그리고 하나님과 선의 궁극적인 승리입니다. 지금은 비록 어둡고 비참해 보일지라도, 최후의 그 순간에 마침내 진정한 왕이 나타나셔서 영광스럽고 찬란한 승리의 빛을 우리에게 비춰주실 것입니다. 소설로 쓰여져 영화화까지 된 J.R.R. 톨킨의 반지의 제왕이 이와 비슷합니다. 종말의 시대에 있을 전투의 절정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비록 악이 선을 삼키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결국에는 어둠이 빛으로 변합니다. 그리고 진정한 왕이 나타납니다. 반지의 제왕이 이것을 소설적인 요소를 사용하여 극적으로 표현하였다면, 요한계시록은 더욱 실질적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마침내 선이 악을 이기고 우리에게 찬란한 영광의 빛을 비출 것입니다. 이 땅 가운데 종말은 반드시 올 것이고, 종말이 와야만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새 나라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자만이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종말이 와야 새로운 역사가 시작됩니다. 그렇다면 종말은 우리에게 기다림의 시간일 것이고, 단순히 죽음에서 건져진다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하는 새로운 역사에 동참하게 된다는 기쁨의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때가 가까움이라(1-3)]
[(1-2)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하였느니라]

그리스도 외에 그 누구라도 이 계시를 소유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 계시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주님은 이 계시를 우리에게 보이시기 원하셨고, 요한을 기자로 택하여 알리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이것은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이었습니다. 천 년이 하루 같으신 하나님의 관점에서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사건들이 단지 인간의 관점에서 하루 이틀을 의미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한결 같으시고, 지금도 여전히 속히 행하실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요한의 역할은 단순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천사를 통해 알게 하신 것을 증거하는 증인의 역할입니다. 요한은 이것을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기록한 책’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하였음을 언급합니다. 자신이 지금 이곳 밧모섬에 유배되어 있는 것도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였기 때문입니다. 여러 박해에도 불구하고 신앙을 잃지 않는 것, 그리스도의 신앙에서 결코 흔들리지 않는 것, 복음을 위하여 목숨까지도 아까워하지 않는 것. 바로 그것이 순교자들의 정신이었고, 이곳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안장된 선교사들이 가지고 있던 정신이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사명은 ‘본 것을 다 증언하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우리가 본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경험한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무엇입니까? 주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신앙의 공간, 믿음의 공간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으십니까? 이 길 위에서 매순간 하나님을 기억하고 생각하며, 주님의 사람들로 살아가기를 소망하는 이들에게 주님께서는 요한을 통해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읽는 자와 듣는 자, 그리고 그 가운데에 기록된 것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복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가 이미 가까웠다고 말합니다. 요한계시록에는 복을 일곱 번 언급합니다. 그중 첫 번째가 여기 3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를 위하여 세 가지 행동, 즉 읽고 듣고 마음에 새겨 지키는 것이 권장됩니다. 왜냐하면 이 사건들이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이기 때문에 때가 가까이 왔기 때문입니다. 종말에 때에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방법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일이 우리에게 절박합니다. 말씀으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날마다 삶 속에서 말씀을 읊조리고 지키며 살아가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4-8)]
[(4)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와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이 편지를 보냅니다. 7은 온전한 수이며, 충족의 수입니다. 성경 전체적으로나 요한계시록에서 자주 등장하는 중요한 의미의 수입니다. 일곱 교회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지금의 터키 지역에는 그 일곱 교회의 터전과 흔적이 있습니다. 현실 역사 속 실재했던 교회라는 것입니다. 각각의 교회가 가지고 있었던 대표적인 특징이 있었기 때문에 기자는 이 일곱 교회에 편지하였습니다. 또한 이 일곱 교회는 상징적인 의미도 지니고 있습니다. 모든 세대, 모든 교회를 망라하는 교회입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에도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 일곱 교회들에 대해서는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 걸쳐서 등장할 것입니다.

요한의 인사말에는 독특한 면이 있습니다. 바울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을 구하는 인사말을 자주 언급하였던 반면, 요한은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오실 이’라는 말로 편지의 인사말을 시작합니다. 물론 이어지는 5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언급하고 은혜와 평강을 구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바울과 비슷한 듯 하지만 다른 표현으로 성부 하나님을 설명합니다. 현재는 물론, 과거와 미래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는 그 하나님을 언급한 것입니다.

[(5a)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 모두가 복음의 증인입니다. 또한 주님께서도 누구보다도 ‘충성된 증인’이십니다. 주님은 자기 목숨을 내어놓으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충성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삶으로 말씀을 살아내셨습니다. 그분은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셨습니다.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이제 장차 오실 분, 바로 그분이 영광스럽고 찬란한 승리의 빛 가운데 지금 우리 가운데 오고 계십니다.

[(5b-6)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십자가에 피 흘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우리의 힘으로 도저히 어찌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주님께서 대신 피 흘려 죽으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비록 죄의 비참함 가운데 빠진 연약한 인간이지만, 신랑 되신 예수님께서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부활의 첫 열매 되신 그분이 우리의 왕이 되셔서 찬란한 부활의 영광으로 함께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안위를 얻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고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사 영원토록 우리 곁에서 지켜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두려움에 빠질 이유가 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떠올리며, 증인으로 살아가도록 노력하여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살아갈 때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은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교회 교우님이 아닐 수도 있고, 어느 분의 차량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주일예배 안내를 위하여 3별관을 가는 길목에서 꼭 만나는 주차된 차량이 있습니다. 그 차량에 전면 유리에 붙여진 연락처에는 정체성에 관한 글귀가 함께 있었습니다. 정확한 글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대략 이런 내용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인임을 부끄러워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성경구절이 있었습니다.

[(로마서 1:16a)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어쩌면 그리스도인이라고 당당히 밝히는 것이 부끄러운 요즈음입니다. 또한 내가 그리스도인임을 당당하게 밝힌다는 것은 세상 가운데 누가 보기에도 부끄럽지 않게 살겠노라는 나 자신과의 약속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의 정체성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교회에서는 물론, 세상 가운데에서도 그리스도인이어야 합니다. 예배의 생활화와 생활의 예배화를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그저 우리끼리 그리스도인들끼리 아등바등 모여서 잘 살다가 주님을 만나는 것이 결코 우리의 목표가 아닙니다. 우리의 가정과 세상 가운데 나아가 바르게 살기 위한 힘을 얻고, 복음과 성령의 능력으로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만 하겠습니다. 그래서 세상이 우리를 보며 그리스도인이 누구인지를, 복음이 무엇인지를, 주님을 따르는 자의 삶의 모습이 어떠한지를 경험하고, 그래서 나도 그 주님을 따르겠노라는 고백이 나올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과연 우리 삶의 공간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처음과 끝이 되시고,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 그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넉넉히 승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죄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저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주님의 피로 저희를 해방시켜 주시고, 하나님을 위하여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시고, 전에도 계셨고, 또한 우리를 향하여 오고 계신 그 주님과 함께 날마다 동행하게 하여 주옵시고,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살아가기에 부족함이 없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어진 삶의 공간에서 하나님을 기억하고 생각하는 가운데 주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오늘 이 하루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위한 질문]
1. 우리가 종말을 기대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영광스러운 종말을 위하여 내 삶에 구체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결단은 무엇이 있습니까?
2. 복음에 충성된 증인이 되기 위하여 나에게 주어진 공간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습니까?
3. 우리는 비록 연약하지만 신랑되신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그 구원을 반드시 이루어내십니다. 이것이 나에게 어떤 위로를 주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4.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으로 인해 기뻐하며, 또한 영과 진리의 삶을 살아가기 위하여 무엇을 결단하시겠습니까?


(작성: 김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