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16(금) “히브리서 12:1-11” / 작성: 최형철
[본문] 히브리서 12:1-11
[찬송가] 369장 ‘죄짐 맡은 우리 구주’


앞서 우리는 히브리서 11장에서 믿음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믿음으로 살았던 믿음의 선진들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12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예수를 바라보자(1-3절)]
[(1a)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12장은 '이러므로'라는 중요한 단어로 시작합니다. 즉, 앞서 11장에서 살펴보았던 믿음의 선진들의 모범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데까지 이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의 기자는 당시 유대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정황을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 가운데 있음을 증거합니다. 만약 우리도 믿음의 걸음을 걷고 있다면 우리 자신을 이렇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모든 세대에 신실한 성도들이 가득 찬 거대한 경기장에서 그들이 보내는 칭찬과 격려의 소리에 맞춰 우리는 지금 믿음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히브리서의 기자는 앞서 11장에서 소개했던 믿음의 사람들을 단순히 기억해야 할 죽은 사람들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할 살아 있는 증인으로 보고 있습니다. 구약의 모든 성도가 서서 우리를 지켜보고, 우리가 소명에 맞게 살아가도록 격려하며 언제라도 박수갈채로 우리가 바르게 걷고 있음을 증언하려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그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것입니다.

[(1b)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또한, 1절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경주하도록 계획하셨음을 증거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에 경주로를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즉, 우리가 가야 할 장소와 해야 할 일, 직면해야 할 도전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경주로에서 언제 커브를 돌고, 언제 오르막길이 있으며, 내리막길은 언제 등장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이 경주로의 모든 코스를 아는 것이 우리의 소명은 아닙니다. 우리의 소명은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코스를 알기 위해 지나치게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디로 이끄시든지 믿음으로 인내하는 삶을 살아 가십시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썩지 아니할 승리자의 관을 얻기 위해 상을 받도록 달음질을 하라고 권면했습니다. 또한, 디모데후서에서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4:7)라고 고백하며, 자신의 삶을 달리기 경주로 표현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도 동일하게 우리에게 증거합니다. 먼저 옛 성도들로 가득찬 과중석이 있습니다. 그들은 단순한 관람객이 아닌 우리를 응원하기 위해 있는 것입니다. 이 응원석에는 진정한 제물에 대해 상기시키고 있는 아벨, 세상이 정죄를 받아도 구원의 방주가 있다고 외치는 노아, 아직 성취되지 않은 약속을 바라보는 자를 격려하는 아브라함, 주님을 따르기 위해 자신처럼 세상의 신분과 인기, 부와 지위를 벼려야 한다고 외치는 모세가 있습니다. 만약 이 사람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음을 믿음으로 보고 그들의 외침에 귀를 기울인다면, 우리는 경주에 있어서 홈 경기의 이점을 누릴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소명이 결코 쉬운 소명이 아님을 증거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열심히 훈련하는 운동선수처럼 훈련 지침을 지켜야 합니다. 그것은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활 방식을 한번 되돌아보십시다. 믿음의 경주를 하는데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 무거운 짐을 지고 있거나, 넘어지기 쉬운 죄악에 노출되어 있지는 않습니까? 죄는 우리를 걸려 넘어지게 합니다. 사무엘서에 등장하는 다윗은 누구보다 훌륭하게 믿음으로 달려가고 있었지만, 밧세바를 향한 정욕에 사로잡혔을 때 얼마나 심각하게 걸려 넘어졌는지 우리는 말씀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다는 것과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이라는 짧은 기간에 선을 그어 놓으신 경주로가 우리 앞에 있음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이 경주를 믿음으로 감당하는 것이 우리의 소명입니다.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이 말씀은 믿음의 경주를 나아가야 할 우리에게 큰 격려가 됩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과 어려움, 유혹을 겪을 때 의지할 만한 지침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큰 격려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를 유혹하고 위협하는 것이 있는 세상에 시선을 두지 말고, 하찮은 성공과 수많은 실패를 지닌 우리 자신도 바라보지 말고, 우리의 최고의 모범이시며, 믿음의 대상이실 뿐만 아니라, 믿음의 근원 되시는 예수님께 시선을 고정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믿음에 대한 최고의 모범이 되십니다. '주'라고 번역한 헬라어는 '선구자' 혹은 '개척자'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즉, 주님은 믿음의 길을 개척하고 장벽을 극복하기 위해 앞서 가신 분이시라는 뜻입니다. 또한, '온전하게 하시는 이'라는 단어도 예수님께서 믿음의 가장 완전한 모범이시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예수님의 믿음이 드러났던 절정의 순간은 주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셨을 때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고난과 수치를 모두 참아 내셨습니다. 당시 유대 그리스도인들 또한 참아 내기 힘든 고난과 수치로 뒷걸음칠 위험에 처해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내 힘으로 참아 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앞서가신 예수 그리스도께 믿음의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주께서 믿음으로 걸어가신 그 목적지가 어디인지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은 지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 믿음의 모범이 되실 뿐만 아니라 우리 믿음의 대상이십니다. 예수님은 결승선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는 지금 예수님을 향해, 예수님을 위해 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참고 인내하는 이유는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과 하나되며, 예수님의 구원의 복에 참여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예수님은 우리 믿음의 근원이 되시기에 예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예수님은 오래 전에 죽은 위인처럼 단순한 모범에 불과한 분이 아니십니다. 더욱이 사색적인 이상형에 불과한 믿음의 대상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믿음을 받으시는 분이실 뿐만 아니라 우리 안에 믿음을 일으키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시선을 예수님께 고정시킬 때, 예수님은 시험당하는 우리를 지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성령을 보내 그분의 능력으로 우리 안에서 일하십니다.

[(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히브리서 기자는 그리스도인이 때때로 피곤해지고 낙심하게 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며, 당연시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믿음 생활을 이어갈 때, 피곤하여 마음이 연약해지는 것은 결코 유별난 것이 아닙니다. 특히나 장기간 고난이나 시험에 직면하는 경우에는 누구나 영적인 침체를 경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히브리서 기자는 영적인 침체를 겪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세상의 반대와 싸우셨던 예수님을 생각하는 것이 이에 대한 치료제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앞서 2절에서 '바라보자'라는 표현은 시선을 돌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강조점은 주의를 이끄는 것에서 시선을 돌이켜 예수님께 눈을 고정하라는 것입니다. 3절에서의 '생각하라'라는 헬라어 단어는 '세다, 숙고하다'는 의미로서 회계와 관련된 용어입니다. 회계 장부를 기입할 때 하나하나 꼼꼼하게 비교하며 살펴보는 것처럼, 우리의 삶과 예수님의 삶을 비교해 보고,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에 대해 심사숙고하여 마음에 새기라는 의미입니다.
   피곤하여 낙심하는 자리에 있다면, 천천히 심사숙고하여 주님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기쁨과 확신으로 다시 일어나 걸어갈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4~11절)]
4~11절은 하나님의 징계에 대해 증거합니다. 즉 하나님은 삶의 고난과 어려움을 통해 자기 자녀를 징계하고 연단하신다는 것입니다.

[(4)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먼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않았다고 증거합니다. 앞서 소개한 믿음의 선진들이 고난을 당했던 정도로, 더 나아가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신 정도까지, 아직 고난 당하지 않았음을 상기시켜 줍니다.

[(5-6)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끊이지 않는 고난을 겪다 보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지 않는다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우리가 시험당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잊어버리셨거나 배반하셨다고 결론짓는 것보다 더 위험한 일은 없습니다.
   그렇기에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참 아버지 되심을 기억하며, 잠언 말씀을 통해 사랑하는 자녀에게 징계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기억할 것을 권면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시험당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보호하실 능력이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든 시험에서 우리를 지키실 수 있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삶을 주관하고 계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당하는 시험을 허락하셨고, 심지어는 그 일을 정하셨다는 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선하신 목적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징계는 아들 됨, 즉 하나님의 자녀라는 징표가 됩니다.
[(7-8)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아버지가 자녀를 징계하지 않는 것은 애정의 표시가 아니라 무관심이나 거부의 표시입니다. 아버지의 사랑과 징계는 서로 조화되며, 이런 인식은 시험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생각을 바르게 변화시킵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를 바르게 양육하고 계십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징계'라는 단어의 헬라어는 '파이듀오'로 '어린이'를 의미하는 '파이스'에서 나왔으며 자녀 양육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부모가 자녀로 하여금 교육 과정을 밟게 합니다. 성장을 자극하기 위해 마련한 힘든 경험도 겪게 합니다. 우리의 참 부모 되신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양육하고 계십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채찍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가 됩니다.
   C.S 루이스는 그의 책 <고통의 문제>에서 고통에 대해서 이렇게 전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즐거움 속에서 속삭이시고, 우리의 양심을 통해 말씀하시지만 우리의 고통을 통해서는 외치신다. 고통은 귀먹은 세상을 깨우는 하나님의 확성기다“

[(9-10)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징계하시는 아버지 아래에서 자녀의 마땅한 태도는 순종입니다. 육신의 아버지는 자신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대로 자녀를 징계합니다. 그래서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고, 잘못된 동기로 결정을 내리기도 하여 자녀에게 잘못을 범합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자녀에게 존경을 받으며, 심지어 나쁜 아버지도 종종 그가 행하는 징계를 통해 자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경우 우리가 극복해야 할 그런 문제가 조금도 없으십니다. 협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은 징계는 거룩하며, 의도는 순수하고 선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결론을 짓습니다.
[(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당연히 당시에는 징계가 결코 즐겁지 않고 슬프며, 고통스럽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징계로 인해 찾아오는 슬픔과 고통에 우리의 관심을 쏟을 때가 참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에 잇대어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삶의 지평선에 시선을 두고 그리스도인의 시험의 끝에 상급이 있다는 것, 즉 현재의 고통 때문에 얻는 유익이 있다는 것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것을 '의와 평강의 열매'로 소개합니다.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지금의 고통을 향한 시선에서 잠시 벗어나 이 고통을 통해 주께서 우리의 삶에 어떤 열매를 맺어가시는지 돌이켜 보시기 바랍니다. 만약 우리가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로서 믿음의 경주를 이어가며, 죄와 싸우며 거룩하게 되기를 원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난에 들어가게 하실 때 겁을 내지 않고, 우리의 삶에 맺히는 거룩한 열매로 인해 감사하며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고난 가운데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음으로 흑암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빛이 되는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믿음의 선진들에게 구름 같이 둘러싸여 날마다 그들의 응원과 격려를 받으며 살아가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바라보며, 주님을 생각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지금 당하는 고난이 우리에게 참 버겁고 슬프며, 고통스럽습니다. 주님의 손길이 우리의 삶에 떠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때마다 우리에게 믿음을 허락해 주셔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기억하게 하시고, 영원의 시선으로 잠깐의 고난을 바라보며, 연단을 통해 우리의 삶에 나타난 거룩함으로 인해 감사하고 기뻐하는 주님의 참 자녀가 되게 하옵소서. 오늘도 우리를 선하신 길로 인도하시며 양육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위한 질문]
1.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 중에 나의 귀에 가장 많이 들리는 성경 인물은 누구입니까?
2. 믿음의 경주를 하기 위해 벗어버려야 할 무거운 짐과 죄악은 무엇인지 묵상해 봅시다.
3. 히브리서 기자는 왜 예수님을 바라보자고 권면하였습니까?
4. 지금 겪고 있는 고난을 통해 어떤 거룩한 열매를 맺어가고 있는지 묵상해 봅시다.

(작성: 최형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