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22(목) “골로새서 1:15-23” / 작성: 김광욱
[본문] 골로새서 1:15-23
[찬송가] 96장 ‘예수님은 누구신가’

골로새서의 본론은 크게 두 부분, 교리적 설명과 실천적 권면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교리적 설명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탁월성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탁월성이란 인간의 능력이 아닌 신적 능력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 하나님의 아들이자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교리적 설명을 하게 된 또 다른 이유는 당시 골로새 교회를 위협하는 이단을 경계하도록 함입니다. 이단을 경계할 것을 바울이 가르칠 때, 이단들이 주장하는 항목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는 형식을 취하지 않고 오직 예수님의 탁월성을 강조함으로써 성도들이 이단 사상의 허무맹랑함을 알도록 하였습니다. 어제 본문의 13절과 14절은, 예수님께서 죄인들의 죄를 속량하시는 구속자로서 탁월하신 분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탁월성 세 가지를 더 증거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창조주이신 예수님입니다.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15-17절)]

[15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하나님은 ‘보이지 아니하는’, 영이신 하나님이십니다. 누구도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습니다(딤전6:16).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람의 눈에 보이는 형체로 나타나신 사건이 바로 성육신 사건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십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외적인 이미지를 가진 상태를 뜻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속성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속성을 가지신 예수님께서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라고 합니다. 이 설명을 근거로 ‘예수님은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지음을 받은 피조물’이라고 주장하는 ‘아리우스’라는 이단자가 기독교 역사 초기에 나타났습니다. ‘먼저 나신 이’에 해당하는 원어는 시간의 순서상 첫째 또는 지위의 서열상 첫째라는 의미가 있지만, 문맥상 또는 문법적으로 보면 모든 피조물과는 다른 이질성을 가진 존재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피조물과 다른 이질성을 가진 존재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창조주라는 뜻입니다. 16절에서 사도 바울이 ‘예수님은 창조주’이심을 설명합니다.

[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오늘날 신자들은 예수님께서 성자 하나님이심을 의심 없이 믿지만, 성육신하신 예수님을 한낱 인간으로 보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아주 좋게 보아도 선지자 정도로 여겼습니다. 교회 밖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처럼 많은 신들 가운데 하나도 아니고 만물을 창조하신 신이라는 말은 믿기 어려웠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당시 율법주의 유대인들과 이단들의 영향력을 받았다면 교회 안 사람들조차 믿음이 흔들릴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확고히 말합니다. ‘만물이 예수님에 의해 창조되었다.’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을 전부 예수님께서 창조하셨다’ ‘천사들을 포함해서 보이지 않는 것들도 예수님께서 창조하셨다’, ‘왕권들, 주권들, 통치자들, 권세들이 예수님의 손에서 창조되었고, 예수님을 위해 창조되었다’ 그러니까 바울의 설명은, 만물의 기원이 예수님께 있고 만물의 목적도 예수님께 있다는 말입니다. 만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존재합니다. 바울의 설명은 ‘예수님은 인성만을 가지신 분이 아니라 신적 능력의 탁월성을 지니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다’입니다. 17절 역시 예수님께서 창조주이심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예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셨다면 만물보다 먼저 계셨던 분임은 당연한 말입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만물보다 먼저 존재하셨다는 선재성(先在性)이라는 사실 자체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선재성을 통해 예수님의 탁월성을 전하고 있습니다. 즉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신 탁월하신 분이심을 강조합니다.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에서 ‘함께 섰느니라’는 ‘붙들고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만물을 붙들고 있다는 것은 만물을 다스리고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만물은 예수님의 손에 의해 움직입니다. 해와 달과 별과 지구에 모든 생물과 무생물 등 만물은 예수님의 손에 붙들린 바 되어 운행됩니다. 다음 18절과 19절은 예수님의 탁월성을 말하는 둘째로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입니다.

[교회의 머리시라(18-19절)]

[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교회는 주님의 몸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주님을 믿는 성도는 주님의 몸된 교회의 지체입니다. 바울이 주님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심을 강조한 이유는 당시 교회에서 주인 행세를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머리, 주인은 주님이십니다. 누가 주님의 몸된 교회를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주님을 교회의 머리로 인정하지 않음이요. 근본이시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고 만물의 으뜸이 되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부정하는 사람입니다. ‘근본’은 ‘시작’과 ‘처음’이라는 뜻으로,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 주님이심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는 신령한 육체로 부활할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는 뜻이며, ‘으뜸’ 역시 최상급을 나타내는 말로써 유일한 존재이신 하나님을 뜻합니다. 다음 구절은 예수님께서 성부 하나님과 어떤 관계이신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19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충만’이라는 단어는 잔이 차고 넘칠 정도로 부족함이 없는 상태를 뜻합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모든 충만으로 예수님 안에 거하신다는 것은 두 위격이신 하나님께서 완전한 일체를 이루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물론 성령 하나님께서도 한 위격으로서 일체를 이루고 계십니다. 바울은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심을 말함으로써 예수님은 부족함이 없으신 분이심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부족함이 없으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는 구원을 위하여 어떤 것도 행할 필요 없음을 역설합니다. 금욕도 필요 없고, 율법 준수도 필요 없고, 천사 숭배도 필요 없고, 그 어떤 것도 구원을 위한 인간이 할 일은 전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는 완전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20-22절은 예수님의 탁월성을 말하는 셋째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는 예수님입니다.

[화평을 이루사(20-22절)]

[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죄에 빠진 인간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사역이 탁월하시다는 것을 바울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죄에 빠진 인간과 거룩하신 하나님과의 화목을 이루신 것뿐만 아니라 만물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심이라’는 것은 성부 하나님께서 인간 그리고 만물과 화목하게 되기를 간절히 원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심판하시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회개의 기회를 주시고 화목하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하나님과 화목이 필요하신 분은 주님 안으로 오십시오. 주님께서 기다리십니다. 어떠한 죄에 빠진 사람일지라도 예수님의 피로 죄사함을 받으면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주님의 피가 얼마나 놀랍고 탁월합니까? 다음은 하나님과 화목하기 전과 후의 상태를 알려줍니다.

[21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22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21절은 예수님의 피로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과 화목하기 전의 상태를 말하고, 22절은 화목한 이후의 상태를 말합니다. 과거 상태는 악한 행실로 하나님을 떠난 상태였습니다. 그리므로 당연히 하나님과 원수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는 삶은 하나님의 원수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 죄인임을 깨닫고 죄 사함을 받으면 하나님과 화목한 상태로 살아갑니다. 22절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으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첫째는 거룩해야 하고 둘째는 흠이 없어야 하고 셋째는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합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을 완벽히 갖춘 성도가 과연 존재하겠습니까? 바울이 이렇게 말한 것은, 성도가 이 땅에서 호흡이 끝날 때까지 거룩하고 흠이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정도에 이르기까지 성화의 삶을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라는 말은 ‘하나님 앞에 선다’는 뜻입니다. 훗날 하나님 앞에 설 때를 생각하며 현재 성화의 삶을 살라는 의미와 현재 매일 영과 진리로 하나님 앞에서 예배하는 삶을 살라는 의미입니다.

[터 위에 굳게 서서(23절)]

[23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본문의 마지막 구절은 바울이 이단들의 거짓 가르침에 흔들리는 사람들을 고려해서 한 권면입니다. ‘믿음에 거하라’에서 ‘거하라’는 어떤 장소에 ‘지속적으로 머문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믿음이라는 집에 지속적으로 머무르며 밖으로 나갈지 말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의 집 문밖에는 이단들이 유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터 위에 굳게 서라’, ‘흔들리지 말라’는 모두 거짓 가르침에 넘어가지 말라는 권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신적 능력을 가진 탁월하신 분이시기에,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 거하면, 순수한 기독교 진리에 불순한 거짓 요소를 섞는 종교적 혼합주의 등과 같은 거짓 가르침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구속자이시고, 창조주이시고, 교회의 머리이시고, 화목의 주님이시고, 탁월하신 예수님에 관한 복음은 당시 로마 제국의 통치를 받는 모든 지역에 전파되었습니다. 바울은 로마에 가택 연금된 상태에 이르기까지 복음의 일꾼으로 살았습니다. 천한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는데 큰 역할을 담당했던 사람, 복음의 일꾼으로서 바울이 강조하는 바는, 복음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는 탁월하시기에 예수님 외 어떤 것도 덧붙일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율법의 준수, 금욕, 천사 숭배, 지혜, 그 어떤 것도 필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완전하시기 때문입니다. 완전하시고 탁월하신 주님께 나의 생각을 첨가하여 다른 사람의 마음을 흔들지 마십시다. 오직 주님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하고 주님만을 의지하십시다.

우리는 완전하시고 탁월하신 주님을 믿기에 우리는 육체가 죽어도 실제로 죽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 겪는 어려움과 환난이 믿음의 집에 거하는 자, 주님 안에 있는 자를 죽이지 못합니다. 오늘도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 탁월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교회와 세상을 새롭게 하는 주님의 귀한 통로로 살아가십시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희에게 구속의 주님, 창조의 주님,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 화목의 주님을 믿고 의지할 수 있도록 은총을 베풀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예수님 이외에 어떤 행위나 사상이나 ‘자기의(義)’가 구원의 조건으로 편승되지 않도록, 완전하시고 탁월하신 예수님만을 믿고 의지하게 하시옵소서. 오늘도 주님의 십자가 피로 하나님과 화목을 이룬 자로서, 거룩하고 흠이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정도에 이르도록 성화의 삶을 살아가며,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위한 질문]
1. 주님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2.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는 무슨 뜻입니까?
3. 예수님의 피로 하나님과 화목하기 전과 후의 상태는 각각 어떻습니까?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4. 복음의 일꾼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5. 나에게 완전하시고 탁월하신 주님을 드러내지 못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작성: 김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