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오바댜 1:1-21
찬송가 465장 ‘주 믿는 나 남 위해’



에돔에 대한 심판 예언(1-9절)
오바댜는 구약성경 39권 중에서 유일하게 1장으로 구성된 성경입니다. 신약성경에는 1장짜리가 4권, 빌레몬서, 요한이서, 요한삼서, 유다서가 있습니다.
오바댜 선지자가 어떤 인물이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오바댜’라는 인물이 성경에 몇 명 등장합니다. 아합왕 시대에 기근이 극심할 때에, 왕궁을 맡은 사람 중에 오바댜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하나님의 선지자 100명을 굴에 몰래 숨겨 두고, 빵과 물을 제공했습니다. 하지만 그 오바댜는 선지자가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시대적으로도 큰 차이가 있습니다. 요시야 왕 때 성전 수리에 동참했던 인물 중에 오바댜가 있었고, 바빌론 포로에서 돌아온 사람들 중에도 오바댜라는 인물이 있었지만, 선지자는 아니었습니다.
‘오바댜’의 뜻이 ‘여호와의 종’입니다. 또한 이 이름은 ‘에베드_예배하다, 경배하다’라는 동사에서 왔기 때문에, ‘여호와를 경배하는 사람’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그가 어떤 신분에 있었든지, 또 그가 무슨 일을 하고 있었든지 간에, 하나님의 종으로 신실하게 살았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삶을 살았던 인물이었습니다.

오바댜는 에돔에 대한 심판의 내용을 다루고 있는데, 1-9절은 에돔에게 심판이 내려질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오바댜의 묵시라 주 여호와께서 에돔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묵시(하존)’라는 말은 ‘계시’, ‘말씀’, ‘약속’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오바댜를 통해서 에돔에게 하시는 말씀이라”라는 의미입니다. 한 국가의 대사가 대통령의 명을 받고서 다른 나라에 가서 그것을 전하면, 그 말을 대사가 자기 입으로 말할지라도, 그 말은 대사의 말이 아니라 대통령의 말입니다. 선지자들이 전하는 말씀도 동일합니다. 선지자의 말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 됩니다. 선지자가 목이 터져라 외치면,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이 터지는 것입니다. 또 선지자가 눈물로 호소하면, 그것은 곧 하나님의 눈물의 호소가 됩니다.

(1-2) 오바댜의 묵시라 주 여호와께서 에돔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소식을 들었나니 곧 사자가 나라들 가운데에 보내심을 받고 이르기를 너희는 일어날지어다 우리가 일어나서 그와 싸우자 하는 것이니라 보라 내가 너를 나라들 가운데에 매우 작게 하였으므로 네가 크게 멸시를 받느니라

하나님께서 여러 민족에게 천사를 보내셔서 말씀하시기를 “일어나서 에돔을 쳐부수러 가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결과로 에돔은 아주 작게(보잘 것 없게) 될 것이고, 굉장히 경멸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에돔이 그렇게 되는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개입하였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세상의 역사, 한 나라의 흥망성쇠는 당시의 초강대국이 좌지우지하는 것 같고, 역량이 굉장히 뛰어난 최고 통치권자가 좌지우지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나온 인류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하나님의 역사와 섭리였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우리 개개인의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시에는 다른 사람들이 내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것 같고, 내 계획과 내 의지가 내 인생을 만들어가는 것 같이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하나님의 역사와 섭리였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에돔이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 그들의 문제를 이렇게 밝힙니다.
(3-4) 너의 마음의 교만이 너를 속였도다 바위틈에 거주하며 높은 곳에 사는 자여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누가 능히 나를 땅에 끌어내리겠느냐 하니 네가 독수리처럼 높이 오르며 별 사이에 깃들일지라도 내가 거기에서 너를 끌어내리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교만이었습니다. 에돔은 해발 1,500m 이상 되는 험준한 바위산에 요새를 건설하고 살았습니다. 서울에서 가장 높은 산이 북한산인데, 가장 높은 곳인 ‘백운대’가 해발 836m입니다. 평소 등산하지 않던 사람이 올라가려고 하면, 쉬운 높이가 결코 아닙니다. 그리고 산은 높을수록 올라가기는 더 힘듭니다. 에돔 사람들은 북한산 위에 또 북한산을 하나 더 올려놓은 정도 지점에서 살았기 때문에 지리적으로는 난공불락의 성과도 같았습니다. 그래서 에돔 사람들을 ‘독수리’에 비유합니다. 독수리는 새 중에서 가장 높은 곳, 바위틈에 둥지를 틀고 삽니다. 게다가 조류 중에서 가장 강합니다. 또한 시력도 좋아서 2,000m 상공에서 들판을 지나는 쥐를 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이처럼 독수리 둥지와 같은 곳에 요새를 만든 것과 같은 곳에 살았던 에돔 사람들은 그 누구도 자신들을 함락하지 못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끌어내릴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도둑이 남의 집 담을 넘어가 물건을 훔칠지라도 그 집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다 가져가지 않습니다. 아니 가져갈 수 없습니다. 자신이 가져가려고 했던 것만 가져가든지, 자신이 가져갈 수 있는 정도만 가져갑니다. 또 남의 포도밭에 들어가 서리를 할 때도 밭에 있는 포도를 전부 가져갈 수 없습니다. 가져갈 수 있을 정도만 갖고 갑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에돔에게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남긴 것이 없도록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심지어 깊이 감추어 둔 것까지 다 빼앗기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8-9)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날에 내가 에돔에서 지혜 있는 자를 멸하며 에서의 산에서 지각 있는 자를 멸하지 아니하겠느냐 드만아 네 용사들이 놀랄 것이라 이로 말미암아 에서의 산에 있는 사람은 다 죽임을 당하여 멸절되리라

혹 나라가 망하게 되더라도 ‘지혜로운 사람’과 ‘지식이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좀 더 빠른 시간에 재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에돔의 그런 사람들을 남기지 않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드만’은 에돔의 대표적인 도시를 뜻하거나, ‘에브라임’이 북이스라엘을 전제를 대표하듯이, 에돔 전체를 뜻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드만이 에돔을 대표하는 도시이든, 에돔 전체를 뜻하든, 군인들이 모두 멸절을 당한다는 것은 에돔이 회복 불능의 상태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에돔의 죄(10-14절)
10-14절은 에돔이 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는지, 그들이 저질렀던 죄에 대해 지적하고 있습니다.

(10) 네가 네 형제 야곱에게 행한 포학으로 말미암아 부끄러움을 당하고 영원히 멸절되리라

하나님께서 에돔을 심판하시는 이유를 ‘네 형제 야곱(이스라엘)에게 행한 포학으로 말미암아’라고 하십니다.
에돔은 야곱의 쌍둥이 형, ‘에서’의 후손입니다. 에서가 들판에 있다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몹시 피곤하고 배가 고팠습니다. 야곱이 팥죽을 쑤고 있었는데, 그 색깔이 붉었습니다. 에서가 야곱에게 그 죽을 좀 달라고 했더니, 야곱이 죽과 ‘장자의 명분’을 바꾸자고 했습니다. 에서는 말로만 하는 것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실제 장자의 명분이 넘어갈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죽과 장자의 명분을 바꾸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겼기 때문에 팔았다고 증언합니다. 그래서 붉은 팥죽으로 인해서 에서의 별명이 ‘에돔’이 되었고, 그 뜻이 ‘붉다’입니다.
에돔과 이스라엘은 모두 이삭과 리브가의 피를 이어받은 형제 국가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너는 에돔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 그는 너의 형제임이니라(신 23: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을 향할 때에 에돔 지역을 통과만 하게 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밭이 있는 지역이나, 포도원이 있는 지역은 결코 통과하지 않을 것이고, 우물물도 마시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며, 큰 길로만 지나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에돔의 대답은 “NO!”였습니다. 그럼에도 지나가겠다고 하면 무력으로 응징하겠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고, 그 이후 두 민족은 오랜 기간 적대적이었습니다.

(11) 네가 멀리 섰던 날 곧 이방인이 그의 재물을 빼앗아 가며 외국인이 그의 성문에 들어가서 예루살렘을 얻기 위하여 제비 뽑던 날에 너도 그들 중 한 사람 같았느니라

‘멀리 섰던 날’의 문자적인 뜻은 ‘반대편에 섰던 날’입니다. 즉 에돔은 B.C. 586년, 예루살렘이 멸망하던 날에 바빌로니아의 편에서 서서 함께 약탈을 자행했습니다. 그들은 바빌로니아 군대와 서로 지역을 나누어서 약탈했습니다.

(12) 네가 형제의 날 곧 그 재앙의 날에 방관할 것이 아니며 유다 자손이 패망하는 날에 기뻐할 것이 아니며 그 고난의 날에 네가 입을 크게 벌릴 것이 아니며

표현이 ‘현재, 부정형’으로 되어 있는데, ‘과거, 긍정형’으로 읽어야 합니다. 즉 ‘네가 형제의 날 곧 그 재앙의 날에 방관했으며, 유다 자손이 패망하는 날에 기뻐했으며, 그 고난의 날에 네가 입을 크게 벌렸으며’입니다. 과거 긍정형의 일을 현재 부정형으로 표현하는 것은 과거의 사실을 더욱더 생생하며 묘사하는 것입니다. 특히 ‘입을 크게 벌렸다’는 것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그만큼 통쾌하게 여겼다는 것입니다. 즉 손가락질하며 “쌤통이다!”, “고소한 참기름이다” 등등을 큰 소리로 말하며 비웃었다는 것입니다.

(13-14) 내 백성이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성문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며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고난을 방관하지 않을 것이며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재물에 손을 대지 않을 것이며 네거리에 서서 그 도망하는 자를 막지 않을 것이며 고난의 날에 그 남은 자를 원수에게 넘기지 않을 것이니라

이 말씀도 ‘현재, 부정형’으로 된 것을 ‘과거, 긍정형’으로 읽어야 합니다. 에돔은 예루살렘이 침략을 당할 때 들어가지 말아야 할 성문으로 들어갔고, 고난을 덜어 주지 않고 방관했으며, 손대지 말아야 할 재물에 손을 댔고, 심지어 도망가는 사람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막아 도망가지 못하게 했고, 더 나아가 원수(바빌로니아)에게 넘겨주기까지 했습니다.
에돔의 이런 만행을 하나님께서 결코 모르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이 우상숭배하며 불순종할 때에, 바빌로니아를 통해서 징계하셨지만, 그렇다고 다른 나라 사람들이 자기 백성을 함부로 대하는 것을 방관하지 않으셨습니다.


에돔의 멸망과 이스라엘의 회복(15-21절)
15-21절은 세상에 대한 심판과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15) 여호와께서 만국을 벌할 날이 가까웠나니 네가 행한 대로 너도 받을 것인즉 네가 행한 것이 네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

온 세상의 통치자이신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실 때에, 에돔도 행한 대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에돔은 B.C. 322년에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의해 함락당하여, 수천 명의 지도자가 죽임을 당했고, 수만 명의 사람들이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그리고 A.D. 66-73년에 있었던 ‘제1차 유다-로마전쟁(First Jewish–Roman War)’ 또는 ‘유대독립전쟁’ 이후에는 역사의 뒤안길로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17-18) 오직 시온 산에서 피할 자가 있으리니 그 산이 거룩할 것이요 야곱 족속은 자기 기업을 누릴 것이며 야곱 족속은 불이 될 것이며 요셉 족속은 불꽃이 될 것이요 에서 족속은 지푸라기가 될 것이라 그들이 그들 위에 붙어서 그들을 불사를 것인즉 에서 족속에 남은 자가 없으리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음이라

에돔이 보기에 바빌로니아가 예루살렘을 짓밟을 때는 유다는 끝났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도 침략자의 편에서 함께 짓밟고 약탈했습니다. 그러나 불에 타 재가 된 것은 에서 족속(에돔)이고, 반면에 야곱 족속(남유다)과 요셉 족속(북이스라엘)은 불꽃처럼 되살아나 회복될 것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막이 내립니다.
(21) 구원 받은 자들이 시온 산에 올라와서 에서의 산을 심판하리니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리라

이것이 ‘오바댜’의 결론입니다. 스스로 난공불락이라 여기며 교만했던 에서의 산(에돔)은 심판을 당하게 될 것이며, 세상의 모든 나라가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천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에돔을 심판하시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이스라엘에 대한 박해였습니다. 에돔의 조상인 에서와 이스라엘의 조상인 야곱은 형제였습니다. 그것도 쌍둥이였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우리에게 적용하면, 가까운 사람(가족, 친척, 교우 등)에게 상처를 주거나 해를 끼치면, 그것이 징계의 이유가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서 자유인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거나 짓누르는 것인지, 반대로 대가를 지불하며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인지를 잘 살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고 짓누르는 삶은 당장은 이익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자기 삶을 무너지게 만드는 첩경입니다. 그러나 대가를 지불하며, 십자가를 지는 삶은 당장은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그것이 다른 사람은 물론 자신을 살리는 길입니다. 오늘 하루도 나와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대가를 지불하며 자기 십자가를 지는 한 날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기 도
하나님 아버지!
에서와 야곱은 쌍둥이 형제였습니다. 하지만 에서가 하나님의 향한 삶을 살지 않게 될 때에 그 후손들은 서로 원수가 되고 말았습니다.
에서의 후손인 에돔은 1,500m나 되는 곳, 바위틈에 요새와 같이 세워졌기 때문에 난공불락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예루살렘이 바빌로니아 제국에 의해 함락당할 때에 침략군의 편에서 하지 말아야 할 말과 행동을 자행했습니다.
바라옵나니 우리가 가족과 친척, 교우 등 우리와 가까운 사람들에게 더 바르게 행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지불해야 할 대가를 감당하게 하시고, 져야 할 자기 십자가를 외면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오늘 하루도 주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한 날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에돔은 해발고도가 높은 지역에 지어졌기 때문에 스스로 난공불락이라 여겨 교만했습니다. 당신의 삶에서 가장 높게 여기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오히려 그것 때문에 낭패를 당한 일은 없습니까?
2. 에돔은 같은 피를 이어받은 이스라엘에게 행한 포악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았습니다. 당신이 지금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을 대하는데 바꾸어야 할 태도는 무엇입니까?
3.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지만, 다시 회복되는 은총을 누렸습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은총으로 회복된 것은 무엇입니까? 이제는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4. 가까운 사람들에게부터 대가를 지불하는 삶과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아가며, 또 주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기 위하여 무엇을 결단하시겠습니까?


(작성 : 정한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