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시편 112:1-10
찬송가 204장 ‘주의 말씀 듣고서’



의인이 받을 복(1-4절)
시편 112편은 111편과 닮은 점이 많아 쌍둥이 시편이라 불립니다. 두 시편은 모두 ‘할렐루야’로 시작됩니다. 그래서 두 시편이 모두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깊이 그리고 높이 찬양하고 있습니다. 또한 두 시편은 모두 ‘알파벳 시편’ 또는 ‘답관체(acrostic)시편’이라고 불립니다. 히브리어 자음은 모두 22자인데, 두 시편이 모두, 1-8절까지는 히브리어 자음을 2개씩, 상반절과 하반절 머리글자에 사용하였고, 9-10절에는 3개씩, 상반절, 중반절, 하반절 머리글자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11편의 마지막 절인 10절에서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며, 그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모두 훌륭한 지각이 있는 사람’이라고 노래했는데, 112편 1절에서 그 내용을 거의 그대로 받아서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고 합니다. 마치 단어 끝말잇기처럼, ‘마지막 문장 잇기’와 같은 놀이를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역대하의 마지막 2절인, 역대하 36:22-23과 다음 권인 에스라서의 첫 시작인 에스라 1:1-3절이 거의 흡사하여, 에스라서와 역대기를 모두 에스라가 기록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 111편과 112편은 모두 표제어가 없어 누가 기록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한 사람이 기록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두 시편은 내용적으로는 다른데, 시편 111편은 하나님의 놀라운 행하심에 대한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감사예배시’인 반면에 112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의 삶과 성품, 그들이 받는 복에 대해서 교훈하여 주는 ‘지혜시’입니다.

(1)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인은 복이 있는 두 사람의 두 가지 특징을 제시하는데, 첫째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며, 둘째는 하나님의 계명(말씀)을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경외’의 문자적인 의미는 ‘두려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것이 하나님을 무조건 무서워하거나, 하나님에 대해 공포심을 느낀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이 두려움은 유한하고, 죄된 본성을 가진 인간과 영원하시고, 절대적으로 거룩하시며, 전지전능한 분이신 창조주와의 차이에서 느껴지는 감정입니다.
우리 주위에서 부담스러울 정도로 바르게 살며, 그러면서도 학문과 인생에 깊은 통찰력을 지니신 분이 있습니다. 게다가 영적으로도 깊습니다. 그 분 앞에 가기 전에 마음을 다시 가다듬게 되고, 그 앞에서는 행동거지를 조심스럽게 하게 됩니다. 그러한 모습을 무한대로 확대하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됩니다.
또한 사람들은 자신이 존경하는 사람의 말은 굉장히 귀담아 듣습니다. 해마다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인 워렌 버핏과 함께하는 점심식사 경매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그와 점심을 한 번 먹으려면, 수십 만 불을 지불해야 가능합니다. 사람들, 특히 기업을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비용을 감수하면서까지 그와 함께 밥을 먹으려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와 식사를 하면서 나누는 이야기를 듣고 잘 투자하면 더 많은 돈을 번다는 생각 때문일 것입니다. 투자에 관한 한, 워렌 버핏의 말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계명을 즐거워합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우리답게 만들어주고, 이 땅에서도 영원에 잇댄 삶을 살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계명(말씀)을 즐거워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했는데, 이것은 시인만의 고백이 아닙니다. 새신자반에서 배운 바와 같이 우리가 복을 받고 사는 것은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신명기 5:29) 다만 그들이 항상 이같은 마음을 품어 나를 경외하며 내 모든 명령을 지켜서 그들과 그 자손이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노라

신명기에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모든 명령(말씀)을 지켜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복을 받기를 원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 자손들이, 당신의 백성들이 복을 받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함’과 ‘하나님의 말씀을 지킴’은 복을 받는 통로와도 같습니다.

(2-3) 그의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한 자들의 후손에게 복이 있으리로다 부와 재물이 그의 집에 있음이여 그의 공의가 영구히 서 있으리로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고 말한 시인은 이제는 그 복이 후손에까지 이어질 것임을 노래합니다.
우리로 인해서 우리의 자녀들과 손자손녀들, 그리고 후손들에게까지 복이 있고, 부와 재물이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고대에 부와 재물을 가짐은 하나님께 복을 받은 것의 증거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러나 많은 재물 자체가 복은 결코 아닙니다. 솔로몬은 이스라엘 전 역사상 가장 큰 부자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재물로 인해서 하나님을 경외함과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함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함에도 잘 자라는 백합화를 가리키며,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굉장히 놀랍고 충격이 되는 말씀입니다. 솔로몬의 모든 영화와 꽃 한 송이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데, 예수님께서는 꽃의 손을 들어주셨습니다. 인생 후반의 솔로몬에게는 하나님을 경외함도 없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함도 없었지만, 들의 백합화는 오직 하나님만 보고 자라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복된 인생이 되는 것은 조상들도 하나님을 경외함과 하나님의 말씀을 기뻐하는 것을 통해서 가능하고, 후손들도 동일하게 하나님을 경외함과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는 것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4) 정직한 자들에게는 흑암 중에 빛이 일어나나니 그는 자비롭고 긍휼이 많으며 의로운 이로다

‘정직하다’는 것은 단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라기보다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즐거워하여, 악함에 불의에 치우치지 않고 하나님을 향하는 태도입니다. 그런 태도를 가진 사람이 빛이 없는 터널 속을 걸을지라도 빛이 일어나는 것은 빛이신 하나님께서 동행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빛의 조명을 받게 되면,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바르게 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의인이 나누는 복(5-10절)

(5) 은혜를 베풀며 꾸어 주는 자는 잘 되나니 그 일을 정의로 행하리로다
(9) 그가 재물을 흩어 빈궁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구히 있고 그의 뿔이 영광 중에 들리리로다

하나님을 향해 정직한 사람은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눌 줄 알며, 치우침이 없이 판단할 줄 압니다. 그러한 사람을 하나님께서 높여주신다고 하십니다.
이런 사람을 지금의 표현으로 하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른 사람은 사람과의 관계도 바릅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바르다고 하면서, 사람과의 관계가 바르지 못하다면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다는 것이 사실이 아니거나,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른 것에 대한 의미를 오해하고 있는 것일 것입니다.

(6) 그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함이여 의인은 영원히 기억되리로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뻐하는 사람, 의인은 영원히 기억된다고 합니다. 표범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을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름을 누가 기억해 줍니까? 전 세계 곳곳에 거대 무덤인 피라미드들이 있습니다. 이집트에 있는 것만 해도 138기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 그 피라미드가 누구의 무덤인지 그 주인을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습니다. 파라오들이 자신들의 이름을 남겨, 영원히 기억되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무덤을 크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피라미드를 보고서, 거기에 묻힌 사람의 위대함보다 인생무상을 더욱 진하게 느낍니다.
우리들의 이름도 잊힐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것은 우리의 이름이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영원하신 분이시기에 하나님께 새겨진 우리의 이름도 영원합니다.

(7-8) 그는 흉한 소문을 두려워하지 아니함이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그의 마음을 굳게 정하였도다 그의 마음이 견고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그의 대적들이 받는 보응을 마침내 보리로다

하나님께 기억되는 인생은 아무리 흉한 소식을 들을지라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인생이 영원하신 하나님의 손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마침표를 찍습니다.
(10) 악인은 이를 보고 한탄하여 이를 갈면서 소멸되리니 악인들의 욕망은 사라지리로다

악인들의 이러한 모습은 시편 1편에 나오는 악인들의 모습과 흡사합니다.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시 1:4-5)” 사실 악인들이 본질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에 늘 비슷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마지막에 악인들이 분노하면서 의인의 모습을 보고서, 이를 “뽀드득”하고 갈지라도, 악인들의 소원이 성취되지 못할 것이라고 합니다. 즉 악인들이 분노하면서 의인들을 부러워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부러워하면 지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악인이 큰 분노를 낼지라도 의인을 결코 이길 수 없음은, 하나님께서 편들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는 사람이 ‘예배의 생활화’를 이루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날줄의 삶을 살며, 그가 또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삶과 정의를 행함으로 ‘생활의 예배화’를 이루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씨줄의 삶을 삽니다. 복 있는 사람의 인생은 예배의 날줄과 섬김의 씨줄의 교직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기억됩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심어주신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는 날줄의 삶과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람들을 섬기는 씨줄의 삶을 살아, 복 있는 사람의 하루를 살아가십시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 영원히 기억되는 사람이 되는 은총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기 도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는 것 자체가 복임을 잊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이 땅에서 마지막 숨을 내어 쉬는 순간까지, 오직 하나님만을 경외하는 삶을 살게 하시고 다른 것들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이 땅에서 마지막 잠자리에 드는 순간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깊게 그리고 넓게, 높게 즐거워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하나님께 받은 복을 쌓아두는 저장고가 아니라 나누는 통로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심어주신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향한 날줄의 삶과 사람들을 향한 씨줄의 삶이 교직하여, 하나님께서 만들어 가시는 작품의 하루를 살게 하시고, 그런 매일 매일이 모여 우리 인생 전체가 하나님께서 만들어 오신 그리고 만들어 가실 하나님의 작품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함이 당신의 삶에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습니까?
2.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함으로 인해서 당신에게 주어진 복은 무엇이었습니까? 혹 당신이 지금 하나님을 경외하지 못함과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3. 하나님께 받은 복과 은총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나누어지고 있습니까?
4. 오늘도 하나님께서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심어 주신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기 위해서 무엇을 결단하시겠습니까?


(작성 : 정한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