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시편 35:1-28
찬송가 400장 험한 시험 물 속에서

다윗의 탄원시
시편은 '찬양의 책'이면서 동시에 '기도의 책'입니다. 시편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이 하신 일을 찬양하는 '찬양시' 이기도 하지만, 또 실패와 아픔, 좌절과 낙심 가득한 현실 가운데 인간의 신음과 탄식을 토로하는 '탄원시'이기도 합니다. 우리 인생이 그렇듯, 시편 안에는 '탄원시'가 더 많습니다. '탄원시'에는 전형적인 양식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을 부릅니다. "하나님!" 둘째, 불평과 탄식으로 자신의 사정을 하나님께 아룁니다. "제가 죽을 것 같아요." 셋째,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합니다. "제발 저 좀 도와주세요." 넷째,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확신합니다. "그렇게 해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다섯째, 찬양을 맹세합니다. "종일토록 주를 찬송하겠습니다." 이 다섯가지가 탄원시의 전형적인 요소이나, 때론 한 두가지가 생략이 되기도 하고 순서가 뒤섞여지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의 '탄원시'입니다. 다윗은 왕권 유지에 급급했던 사울과 그 추종세력에 의해 좇기는 도망자 신세가 됩니다. 다윗은 그 억울하고 척박한 도피 생활에 중에 자신의 기막힌 처지를 하나님께 토로하며 탄원합니다. 그것이 오늘 시35편 입니다. 시35편은 세 단락의 탄원(1~10절, 11~18절, 19~28절)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탄원시의 전형적인 양식대로 각각의 세 단락의 탄원은 찬양으로 끝맺습니다(9-10절, 18절, 27-28절).

탄원1: 나를 도우소서 (1-10절)
다윗은 먼저 하나님을 부릅니다. "여호와여"(1절). 그리고 구체적인 불평과 탄식 없이 하나님의 이름만 부르고 바로 이어서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만큼 다윗이 처한 상황의 긴박성을 강조해주고 있습니다. 1-2절입니다. 여호와여 나와 다투는 자와 다투시고 나와 싸우는 자와 싸우소서 방패와 손 방패를 잡으시고 일어나 나를 도우소서 이 뿐만이 아닙니다. 다윗은 거친 단어를 연거푸 반복하며 대적자들을 망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요청합니다. 4절에 ‘낭패를 당하게 하소서’, 5절에 ‘몰아내소서’, 8절에 '멸망이 닥치게 하시며' ‘떨어지게 하소서’. 다윗은 대적자들을 '바람 앞에 겨'(5절)와 같게 해달라고까지 하나님께 토로합니다. 악인들은 '바람에 나는 겨'(시1:4)와 같기 때문입니다. 대적자들은 지금 다윗의 생명을 노리고 있습니다. 다윗의 생명을 해하려고 혈안입니다(4절). 다윗을 잡기 위해 함정을 파고, 그물을 칩니다(7-8절). 다윗은 절체절명의 위기입니다. 죽음이 눈 앞에 있습니다. 하지만 다윗이 할 수 있는게 없습니다. 하나님을 부르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할 뿐입니다. "하나님, 나를 도우소서"(2절)

그런데 1-8절의 탄식조가 9-10절에 들어서면서 찬양의 분위기로 갑자기 변합니다. 반전입니다. 9절입니다. 내 영혼이 여호와를 즐거워함이여 그의 구원을 기뻐하리로다 '내 영혼이'로 번역된 '(웨)나프쉬'는 '(그러나) 내 영혼이' 입니다. 개역성경에는 '그러나(웨)'(반의(反意) 접속사)가 생략되었습니다. 이 '그러나'의 반전은 탄원시의 절정입니다. 불평과 탄원의 상황은 처절한 현실이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애타고, 절박하게 구할 수 밖에 없는 비루한 처지이지만,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불안과 초조함을 떨쳐내고 오히려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뻐합니다. 다윗은 대적자들의 공격과 절망의 순간에서도 눈을 들어 구원하시고 건지시는 하나님을 향하며 오히려 찬양합니다. 다윗은 버려진 상황에서 오히려 하나님의 품에 자신을 던지고 있는 것입니다.

탄원2: 건지소서 (11~18절)
두 번째 단락의 탄원에서 다윗은 자신을 향해 거짓 고소하는 대적자들을 고발하며 탄원합니다. 12-13절입니다. 내게 선을 악으로 갚아 나의 영혼을 외롭게 하나 나는 그들이 병 들었을 때에 굵은 베 옷을 입으며 금식하여 내 영혼을 괴롭게 하였더니 내 기도가 내 품으로 돌아왔도다 다윗은 저들에게 선을 베풀었는데, 저들은 선을 악으로 갚고 있습니다. 다윗은 저들이 병 들었을 때 정성껏 기도해 주었고, 저들이 환난에 처했을 때 마치 다윗 자신의 일처럼 함께 아파하고 위로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다윗을 치며 찢기를 마지아니하고, 다윗을 조롱하고 다윗을 향해 이를 갑니다'(15-16절). 다윗은 탄식합니다. 17절입니다. 주여 어느 때까지 관망하시려 하나이까 내 영혼을 저 멸망자에게서 구원하시며 내 유일한 것을 사자들에게서 건지소서

그러나 어김없이 반전의 찬양이 고백됩니다. 18절입니다. 내가 대회 중에서 주께 감사하며 많은 백성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그러나 내가' 주를 찬송하리이다! 외롭고, 화가 치밀고, 억울하고, 두렵고, 불안한 상황이 현실 맞지만, '그러나 내가' 주님을 바라며 찬양합니다!

탄원3: 찬송하리이다(19~28절)
세 번째 단락의 탄원에서 다윗은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고 대적자들의 악행을 고발합니다. 마치 법정에서 판사에게 자신을 변론하는 모습입니다. 21-24절을 새번역 성경으로 읽겠습니다.

21 그들은 입을 크게 벌려 "하하!" 하고 웃으면서 "우리가 두 눈으로 그가 저지르는 잘못을 똑똑히 보았다" 하고 위증합니다.
22 주님, 주님께서 친히 보셨으니, 가만히 계시지 마십시오. 주님, 나를 멀리하지 마십시오.
23 나의 하나님, 나의 주님, 분발하여 일어나셔서, 재판을 여시고 시비를 가려 주십시오.
24 주님, 나의 하나님, 주님의 공의로 나에게 공정한 판결을 내려 주십시오. 그들이 나를 이겼다고 하면서 기뻐하지 못하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세번째 단락의 탄원 역시도 찬양으로 끝맺음을 합니다. 28절입니다. 나의 혀가 주의 의를 말하며 종일토록 주를 찬송하리이다

교우님, 불평과 탄원할 수 밖에 없는 서글픈 치지와 형편이 어찌 다윗만의 일이겠습니까? 답답하여 미칠 일이 하나 둘 뿐이겠습니까? 신음과 한숨없는 날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모질고 서러운 현실로 인해 비명과 눈물의 시간이 우리에게 제법 많습니다. 우리에게 시편을 기록하라하면 우리 역시도 '탄원시'가 휠씬 더 많을 것이 분명합니다. 기억하십시다. '탄원시'는 탄원으로 끝맺지 않습니다. '그러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탄원으로 시작해서 찬양으로 끝을 맺습니다. 막막하고 절망적인 탄원의 자리에서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보십시다. 어떤 절망적인 상황보다 더 절망적인 것은, 아니 어떤 비참한 현실보다 더 비참한 것은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오직 하나님만, 오직 예수만 바라보며, 우리에게 허락된 오늘의 삶의 걸음을, 비록 척박한 길일지라도 기꺼이 감수하며 찬양하며 걸어가십시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시42:5)


기도
하나님,
서글프고 가련한 인생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보다, 할 수 없음이 더 크고,
그리고 조금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신음과 한숨, 탄식의 외침이 전부입니다.
사투일 수밖에 없는 인생살이를 사는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내게 주어진 처지와 형편에서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며 찬양하게 해주십시오.
무력한 인생을 향해 은혜로 일하시는 그 하나님의 선하심을 보며,
오늘을 살 소망과 힘을 덧입혀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최근 나의 삶의 자리에서 탄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은 무엇입니까?
2.다윗은 탄식의 자리에서 '그러나'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시니까?
3. 하나님께서 심어 주신 삶의 자리에서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며 찬양하고 살아가시기 위해 무엇을 결단하시겠습니까?

(작성: 임용완)